2020.11.08 남북종주 5차 (한벗샘-세석)
한벗샘-세석 대피소
행동팀115-지리89
일시:2020년 11월 8일
산행자:연하,권영구,죄옥희,최정남,황순진,김은의,성주숙,수야 (8명)
걸어간 길:거림-자빠진골-남부능선-세석대피소-거림골-거림
산행시간:07시 48분~17시 12분 (9시간 24분) 13.6km
1차:3월08일 외둔-원강재
2차:4월12일 원강재-상불재
3차:5월10일 상불재-삼신봉
4차:7월12일 삼신봉-한벗샘
5차:11월8일 한벗샘-세석
걸어야 할 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고 아득하였지만, 가야 할 길에 대하여 조급해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다면 서두르지 않을 것이었다.
준마의 주춤거림은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다 하였다. (騏驥之跼躅(기기지국촉), 不如駑馬之安歩(불여노마지안보)
어떤 일이든 가장 경계 해야 할 것은 멈추는 것이다.
함께 끝까지 가겠다는 그들의 멈추지 않는 의지는 훌륭하였다.
그런 그들과 함께라 이 산길에 오르면 나는 늘 감동스러웠다.
거림의 산길 초입은 벌써 겨울처럼 인적이 고요하여 썰렁하게 느껴졌다.
인원 제한을 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07시 56분 매표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림 매표소를 지나자 나무계단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것이었다.
너무나 갖고 싶던 물건을 샀다.
새 것이라 행여나 흠집 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루고 아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지자 물건이 점점 불편해졌다.
새 차도, 새 옷도, 새 전화기도 새 것은 늘 그랬다.
소중히 여기다 보니 내가 이 물건을 쓰는 게 아니라 이 물건이 나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
사람도 그렇다.
시간을 함께 나누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땐 턱도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어떤 땐 내가 먼저 빈틈을 보이기도 한다.
나를 보여 주지 않는데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 수는 없는 것이다.
빈틈없이 매사 완벽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은 불편한 새 것 같다.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가까운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산행기 상으로 받은 새 등산화를 아끼지 않고 냅다 바로 신었다.
아끼다 뭐 된다.
좋은 것, 좋은 음식, 좋은 어떤 것이든 아끼지 않고 바로 사용하고, 바로 가 보고, 해보자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빨리 익숙해지고 이 등산화 신고 걷는 동안 다치지 말라는 뜻이라며, 새 계단 테크에서 새 등산화를 서로 밟아 주겠다고 어수선하였다.
쌀쌀함이 몸을 움츠리게 하였다.
걷는 시간만큼 몸에 열이 올라올 것이기에 느리지만 쉬지 않고 천천히 계속 걸어 올랐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는 산은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있었다.
만지거나 기대지 마시라 손도 버리고 옷도 다 버린다.
겉옷을 벗었다.
몸은 정직하게 움직인 만큼 반응하였다.
03-03 구조목을 지나고 10여 m를 더 올라 좌측으로 자빠진골 들머리를 찾아들어 가야 한다.
자빠진골을 여러 차례 올랐지만 누군가와 같이 동행을 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8시 35분 계곡을 건너고 들머리로 접어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햇볕이 고루 펴져 내리는 능선이 잡힐 듯이 가까워 보였다.
저 위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라고 말했다가 늘, 그렇게 말한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골은 메말라 있었고 메마른 돌 들위에 낙엽이 덮여 있었다.
낙엽은 발 밑에서 부서지며 바스락거렸다.
메마른 골을 올라서는 분주한 걸음은 바싹한 소리들로 다시 귓가에 내려앉았다.
때때로 후미를 기다리며 앞선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보조를 맞추었다.
척박한 돌 틈을 비집고 각각 다른 세 종류의 나무가 상생의 조화를 이루었다.
나무 아래에 앉아 쉬는 동안 저 나무들을 바라보며 <숲에서 길을 묻다 -김용규->에서 읽었든 한 부분을 생각했다.
상생(相生)을 한자로 써보면 '서로를 살린다'는 뜻이다.
상생이라는 단어에서 서로를 뜻하는 상(相) 자는 '나무(木)와 눈(目)'이 합쳐져 그 뜻을 이룬 글자이다.
木과目의 합침, 나무에 올라 멀리 바라볼 때 저쪽에서도 마주 바라본다 하여 '서로'의 뜻이 된 글자.
상생은 마주 바라보며 같이 서로 사는 길이다.
우리는 여태 누군가의 이익을 빼앗고, 상대를 누르는 것으로 승리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배우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타자를 휘감아 오름으로써 내 삶을 꽃피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산재한 여러 갈래의 흔적은 다 길이면서 길이 아니었다.
옳은 길은 없었다.
같은 곳을 지나간 사람이 많을수록 뚜렷하였고 그것이 더 선명한 길이 되었다.
그것이 길이었고,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었다.
흩어지는 것은 반드시 다시 모이고,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
영원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70년 전 살상의 의도로 날아온 이것이 불발로 섬찟하게 녹슬어 있었다.
건들지 않았다.
오랜 세월 문제없었듯이 별 문제없겠지?
신고를 해야 하나?
대한민국의 어마 무시한 국가보안법에는 '찬양, 고무, 동조, 기타의 방법으로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이 법으로 처벌받는다 하였는데
불발탄을 신고 하지 않는 것이 설마 '기타의 방법으로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는 아니겠지?
한벗 샘에 도착하였다.
흐르는 샘의 물줄기는 미약하였다.
간식을 나누어 먹었고 더 많이 걷기 위해 힘을 모았다.
약간의 산죽을 헤쳐 뚫고 나가자 곧 능선에 당도하였다.
10시 18분
지난 7월 이후 이어지지 못하고 잠시 미루어 두었든 길을 이곳에서 다시 이어 가게 된다.
단천 지능으로 하산을 하며 이곳으로 다시 올 것이라 미리 말해 두었든 곳이었다.
하동의 섬진강가에서부터 거쳐온 남부 능선을 따라 걸어온 걸음이 이제 주능선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주능선과 중북부의 먼 길이 남아 있지만 서둘러 빨리 끝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남부 능선의 이 길은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을에 걷는 맛이 제대로였었다.
그 강렬한 기억이 좋아 몇 번을 혼자서 걷곤 하였다.
단풍이 다 져버리고 난 뒤라 조금 아쉽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이 길을 걷는 것이 나는 좋았다.
주능선의 상봉과 촛대봉이 낙엽을 털어낸 나뭇가지 사이로 또렷이 보였다.
오르락내리락 길은 지루하지도, 그리 험하지도 않으면서 간혹은 숨이 차오르게도 하였다.
뒤를 돌아보자 지나온 삼신봉과 남부 능선이 굽이쳐 보였다.
능선에서 가지를 뻗어 내린 단천 지능이 비 오는 날 걸어 내린 기억을 생생하게 끄집어 올렸다.
주능선의 반야봉과 우람한 왕시루봉 능선이 멀리 앞에 보였다.
올라 온 자빠진골과 거림골, 능선의 좌측으로는 단천골과 수곡골,큰세개골 그리고 대성골을 이 능선이 품고 있는 것이다.
좁은 전망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며 즐기는 조망의 시간은 빈번하였다.
멀어만 보이든 촛대봉과 그 아래 세석평전이 걸어가는 동안 조금씩 가까워져 왔다.
11시 15분 이제 세석까지 3.3km가 남아 있었다.
음양수 샘에서 창불대를 지나고 영신봉으로 가야 할 것이지만 창불대 방향을 버리고 세석 대피소로 가기로 하였다.
모두가 가 본 길이기도 하지만 불편한 조우를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산의 어디서건 서 있는 나무를 보라, 홀로 살지 않는 나무가 없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주변과 함께,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나무가 없다.
홀로 숲을 이룰 수 있는 나무는 없다.<숲에서 길을 묻다>
아직은 뒤돌아 보며 깊은 회한에 잠길 때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그럭저럭 잘 견디고 잘 살아 내고 있다고 엷게 웃어보기도 한다.
한숨 깊은 후회도 있다. 가슴 먹먹한 아픔도 품고 살아가는 중이다.
더 다정하게 대해 주지 못했고, 살갑지 못해 미안하고, 고쳐지지 않는 내 나쁜 것들이 끝내 안타깝기도 하다.
남아 있는 내 삶의 길 위에서 지금 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모습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지리산이라는 큰 산을 만나고도 그 산을 앞만 보고 오르고 걸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이제 한 번씩은 뒤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뒤돌아볼 때마다 이제야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11시 59분에 석문을 통과하였다.
나는 장군의 늠름한 기운이 느껴지는 형상으로 보인다 하였다.
연하 형님은 남녀가 어깨에 손을 얹고 춤을 추는 모습의 뭐라고 하였다.
걸음이 빠른 영구 형님은 한 번씩 앞서 나갔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전망대에 올라서서 사색을 즐겼다.
그는 담대하고 묵묵한 산꾼이었다.
그의 무게감은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 겸손함을 함께 지녔다.
사람과 사람이 좋아지는데 굳이 이유를 찾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12시 40분
음양수 샘에 도착하였다.
13시 05분
세석 대피소에 들어가기 전 물을 받았다.
13시 20분
점심시간은 길고 푸짐하고 넉넉함으로 호화로웠다.
배부르고 등 따듯하니 세상이 내 것 같다는 연하 형님은 곡차 한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알딸딸한 나와 비슷하였다.
내려가야 할 시간
또, 이 분께서는
아직도 등산화 끈을 묶고 있었다.
대피소에 계산할 것도 없는데 신발끈을 왜 저리 오랫동안 묶고 있는겨.
모두 출발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는데 신발끈은 더디게 묶였다.
그것을 모두는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어라, 오른쪽 끈을 다 묶고 왼발로 바꿀 땐 밥 할 때 뜸 들이듯이 허리 한 번 펴고 뜸까지 들이네 그랴.
기다리는 자들은 더욱 바빴고, 바빠야 할 자는 더욱더 느긋하였다.
결국 성질 급한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지만 결코 그런 것에 반응하는 그런 미미한 분이 아니셨다.
느긋한 분과 바쁜 사람들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가르침은 말로 들여주는 것이 아니라 등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 보다 보여주는 것만큼 큰 가르침은 없다고 하였다.
내 등 뒤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16시 57분
드디어 저 소나무가 보였다.
거림골 하산 때 저 소나무는 늘 반가웠다.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고,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바람이 불 듯
내 삶도 보이지 않지만,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길은 어디에든 있는 거라고, 너는 잘해 내고 있다고,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말라고, 스스로를 믿어 보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홀로 숲을 이루는 나무가 없듯이 사람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곳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나는 좋다.
17시 10분 산행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