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조개골
조개골
행동팀114-지리88
중경팀 10월 정기산행
일시:2020년 10월 25일
산행자:연하,최옥희,황순진,김은의,최정남,성주숙,수야 (7명)
걸어간 길:윗새재-철모3거리-조개골-치밭목 대피소-무재치기폭포-심밭골-윗새재
산행시간:07시03분~15시 20분(8시간 17분)9.8km
윗새재, 오전 7시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걸음을 바삐 옮겼다.
마음에 불편함이 없는 안전한 것이 제일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색은 이제 산의 아래까지 완전히 내려와 있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겉옷을 입었다.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열을 빨리 끌어올려야 했다.
내가 느끼는 체감보다 한 발 앞서 계절은 성큼성큼 앞서 가고 있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자연이나 세상의 변화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기만 하다.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깨우칠 때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이제 어쩔 수 없이 많이도 무디고 둔해진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 가을이 좀 서글프고 쓸쓸하고 슬프다.
좌측으로 길을 꺾기 전, 붉은 색깔을 뿜어내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단풍이 아름다운 이유는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자신만을 색깔을 마지막으로 품어 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을 어디에서 주워 들었다.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항상 멋있어 보였다.
그리 살고 싶었고, 그리 살고 싶다.
중경팀 정기산행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
팀장마저 부상으로 불참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저런 사정들이 생겼다.
코로나 19의 위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고, 그 여파는 일상의 모든 것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산으로 산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든 가을 산행의 발길마저 한적하게 만들어 놓았다.
인원은 줄었으나 밝은 미소와 언제나 굳건히 걸어내는 의지들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더 나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라 했다.
아직은 멈출 때가 아니므로 중경팀 산행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될 것이다.
산에만 들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하루 종일 웃는 사람들, 같이 하는 나도 일주일 중 가장 많이 덩달아 웃게 된다.
철모 삼거리에서 배낭을 메고 잠시 서서 쉬었다.
이제 산 위는 앙상한 허허함으로 바람이 차갑고 공허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매번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고 하든 아줌마들이 이제는
저 윗 쪽이 어디인지 먼저 설명하고 그곳에 갔을 때를 이야기한다.
철모 삼거리에서 잠시 쉬는 동안 후미로 뚝 떨어져 있든 연하 형님이 최정석 형님과 함께 올라왔다.
정석 형님은 중경팀 산행 날짜와 코스를 미리 알고 있었다.
같이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를 몰라 시간이 되면 따라붙겠다 하더니
이렇게 바로 따라잡는 걸음은 역시 날렵하고 빨랐다.
지인 한 분과 진주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온 형님은 우리가 아침을 먹는 동안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 후 기어코 먼저 올라갔다.
천천히 걸어가겠다며 대피소 도착 전에 만나자고 했다. 점심은 같이 먹기로 했다.
그러나 치밭목 대피소에서 다시 만났을 때 형님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내려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한 발 앞서간 정석 형님은
우리가 윗새재에 도착했을 땐 덕산에서 목욕까지 하고 창원으로 출발한다고 했다.
산에서 만나는 형님은 여전히 빨랐고 강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석 형님이 먼저 떠나고 난 뒤 든든하게 아침을 먹었고
느긋한 걸음으로 조개골로 깊이 들어갔다.
골을 따라 조금 오르든 길은 이내 계곡을 건너 산길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량이 없는 계곡은 무미했고 건조해 보였다.
보이지 않는 한 분
중경팀 산행 대장인 이 양반은 오늘도 혼자 바쁘다.
꼭 뒤늦게 나타나거나, 혼자 내 빼거나, 아예 저 뒤에 있었다.
모여서 단체로 사진을 찍고 흩어지려 하면 불쑥 나타나 다시 찍자고 했다.
은의 님은 저만큼 앞서서 걸었다.
사뿐사뿐한 걸음은 그녀가 지리산에 들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하였다.
트랙을 잠시 벗어나 계곡을 그대로 밟고 올랐다.
어린애 오줌발 같은 물줄기와 달리 저 위 쪽에서는 좀 더 우렁찬 변강쇠 오줌 빨 같은 소리가 들렸기에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저 한 분을 분실했는지, 그 한 명인 산행대장이 우리를 통째 분실했는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그분은
저 뒤에서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말이 많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보이면 된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건 내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든든한 힘이다.
발길을 이끈 폭포 소리의 그곳에는
여름철 수량이 넘쳐나는 웅장한 모습의 폭포는 아니지만 가을 산에 적절하며 바람직하게 어울리는
마땅히 아담한 곳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사진을 단체로, 짝지캉, 개인별로 골고루 당연하게 찍어 주어야 예의에 맞는 것이라 카더라꼬.
작은 폭포를 지나고 트랙에 충실히 맞게 본래의 길을 따랐다.
10시 28분
계곡을 횡단하여 건너고 난 뒤, 계곡과는 점점 멀어지면서 산길로 들어갔다.
계곡 횡단
계곡을 건너가며
주능선 중봉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 계곡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푸르고 높아 시원하고 깔끔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을 하늘은 공활하였다.
그 탓에 마음도 덩달아 텅 비고 매우 넓어 더없이 무척 넉넉해지는 듯하였다.
치밭목 대피소가 건너편으로 보였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은 불법이다.
불법을 단속하는 물건이 있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편법으로 대처하였다.
대처 방법은 위 지도를 자세히 살피면 알 수 있겠다.
햇볕이 안온하게 비치는 따뜻한 자리에는 먼저 오신 정석 형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롭게 단장을 한 이후 처음으로 온 치밭목 대피소다.
몇 번을 계획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이곳과의 인연은 자꾸 어긋나기만 했었다.
새 건물은 깔끔하고 넓어져 예전의 모습은 1도 찾을 수 없었다.
예전의 대피소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 사람은 그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빨치도 없고 격렬한 오르막이나 산죽도 없는 산행이라 좀 밋밋했지만
먹는 일에서 만큼은 치열했든 어떤 산행 때와도 같이 마땅히 같았다.
예전 대피소에 있었든 지리산 산장 표지석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꼭, 있다. 이런 사람.
다른 사람 배낭 메고 내려갈 준비 다 했는데 아직도 혼자 등산화 끈을 묶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아직 할 말을 다 못 했는지 자꾸 말 만하고 단체사진 찍자고 몇 번을 말해도 못 듣고 있는 분.
큰소리로 불러다 사진을 찍었다.
등산화 묶다가 온 발은 좀 숨기든가 안 하고 무슨 자랑이라고 앞으로 내놓고 있는지.
다들 저 대장을 챙기며 한 마디씩 했다.
"손이 마이 간다. 차아 암 손이 마이 가."
(언제나 연하 형님의 장비가 가장 많고, 커피까지 끓이고 나면 다른 사람보다 항상 늦게 챙길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양보의 시간이 많다는 말이다. 위 글에 대한 다른 오해의 시각이 없기를.)
또 분실할까싶어 돌아보니 걱정하지 말고 가자네.
걱정은 무슨, 지가 대장인데....
무재치기 폭포 전망대에 섰다.
딱 일주일 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붉게 물들었든 산맥은 이제 한 계절을 지나며 다음 계절을 채비하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같은 곳에서 바라보는 그곳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땅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어떤 마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산도, 사람도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무재치기란 이름은 여러 갈래로 넓게 퍼져 흘러내리는 폭포수에 무지개가 어린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드물게 1천 m가 넘는 높은 고도에 위치한다.
왼편에는 까마득하게 깎아지른 암벽, 바른편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원시림이 싸고 있는 이 폭포는 40여 m의 거대한 암벽이 3단으로 이뤄져 있다.
물줄기는 1단에서는 세 가닥으로 갈라지고, 2단에서는 여덟 가닥으로 흩어졌다가 3단에선 다시 두 가닥으로
모여 쏟아져 내리는 절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내 마음 가는 편한 사람이 좋더라
복잡한 세상살이 겪어보니
그저 옆자리 한편 쉬이 내어 주는
마음 편한 사람이 좋더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자기 돈 자랑하는 사람
자기 배운 것 많다 으스대는 사람 제쳐 두고
내 마음 가는 편한 사람이 좋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데 있어
겸손하고 계산하지 않으며
조건 없이 나를 대하고
한결같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내 삶 흔들리지 않더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숨 한 번 고를 수 있게
그늘이 되어 주는
그런 마음 편한 사람이 좋더라
그렇게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좋더라.
-전승환/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 중에서-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
치열하게 살아 내며 응결된 자기만의 색깔을 마지막으로 밀어낸 단풍도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파리 낙엽 하나하나 상처 투성이고 흠집 없는 것이 별로 없더라
사람과 비슷하더라는 것이지
멀리서 볼 땐 상처 하나 없이 밝은 사람
여럿이 어울려 있을 때는 외로운 기색 없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흔적이나 아무런 상처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주에 지나갔든 그 길을 걷고 있는데 그 길이 그 길과 달리 느껴졌다.
비슷비슷하고 그날이 그날 같은 삶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난 뒤 잠시 일을 하러 다닐 때였다.
같이 일을 했든 어떤 어르신이 점심시간이면 만사를 제쳐 두고 식사를 하시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 이 밥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밥이다"
지나간 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딱, 한 번뿐인 것들이 매일, 매시간, 그렇게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글이든 말이든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틀어 가장 슬픈 말은 "아, 그때 해볼 걸!"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고자 할 때는 갈 수 없다.
윗새재까지는 걸어온 길 보다 더 여유 있고 느긋하게 걸었다.
다시 오르기 위해 내려가는 길
아래쪽에 남아 있는 단풍을 만날 때마다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그러면 어떠한가 한 번뿐인 모습을 더 오래 보고자 함인데.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윗새재에 도착하였다.
다시 또 오를 것을 생각하며 지리산을 가슴에 켜 둔 체 차에 올랐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지리산을 다시 오기 위하여 돌아가야 한다는 말 역시, 내게는 언제나 참으로 그럴듯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