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0.04.05 간미봉 능선

지리99 수야 2020. 4. 5. 15:41
간미봉 능선

 

독오당 106차 정기산행

일시:2020년 4월 5일 (일요일)

산행자:에스테야, 귀소본능, 수야 (3명)

걸어간 길: 천은사-천은사골-861번 국도-시암재휴게소- 시암재-간미봉능선-간미봉-간미봉남능-천은사

산행시간:08시 13분~17시 36분 (09시간 22분) 14.10km

 

2020-04-05 간미봉.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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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라는 별 이상한 놈에게 빼앗겨 버린 봄이지만, 계절은 예정한 대로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그렇게 피어난 4월은 어느 사이 벌써 잔인하게 흩날리며 깊어만 가고 있었다.

살아 있으니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계절의 순환과도 같이 당연하고도 지당한 일처럼

산으로 향하는 일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아침 달리는 차에서 속도를 조금 줄였지만, 운전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동시에 찍어대는

귀소본능의 뛰어난 혼합 기술을 감상하는 우리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손잡이를 꽉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그 어렵고 예민한 기술이 끝났을 때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사진:귀소본능>




8시 13분.

천은사 주차장에서 배낭을 메고 오룩스 맵 트랙 기록을 시작했다.

아침 기온은 많이 쌀쌀했다.

이를 앙다물 만큼 몸이 떨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제법 걷고 나서야 체온은 정상상태로 돌아왔다.

에스테야 형님과 둘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따라 냅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난 뒤,

돌아보니 아직 본능은 저 멀리서 보이지 않았다.

바지도 갈아입고 사진도 찍고 할 건 다 하고 한참 뒤에 본능은 늘 그렇듯이 나타났다.

천은사를 좌측에 두고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산행을 시작한 초반 예의 바르게 반듯한 산길은 산만할 틈도 없이 머리를 맑게 했다.

오직 이 길 하나만 주어진 단순함은 명료하고 깔끔했다.

깔끔한 이런 단순함이 주는 안정감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했다.

 

아주 좋은 산책로 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거의 무념무상과도 비슷한 그런 경우에 가까웠다 볼 수 있겠다.​

길 앞에는 계곡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목책이 나타났다.

앞장서서 용감하고 패기 있게 당당하게 넘어 들어가는 에스테야 형을 따라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목책을 넘고 계곡을 건너갔다.

늦게 따라붙은 귀소본능이 stop을 외치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 에스테야 형은 내게 참으로 우직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길이 처음이지만, 내가 빠진 독오당 산행에서 이미 형은 한 번 이 길을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헛갈리거나, 옆으로 빠지거나 할 만한 그런 길도 당연히 아니고

차가 다녀도 충분한 넓은 길이 아니던가.

앞장선 형을 믿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였다.

계곡을 건너지 않는다는 귀소본능의 말에 따라 확인 해 보니

아주 대로로 쭉 뻗어 있는 길을 이미 지나 전혀, 정말, 이해 1도 되지 않는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하아 ~ ~

내가 잘못했네.

아무 생각 없이 형 뒤만 쫄래쫄래 따라간 내가 잘못이지

무작정 앞으로만 돌진하는 형이 뭔 잘못이겠소.

내 잘못했구마, 마이 잘 못했어.

​한동안 형은 아무 말 없이 우리 뒤에서 따라 걷기만 했다.

 

다시 돌아 나와 천은사 골을 따라 걸었다.

이 통나무 다리를 보고 에스테야 형님은 여기를 건너갔었던 기억이 이제야 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억도 나는 의문스럽기만 했다.

정말 기억은 난 걸까?

요즘 들어서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고, 특히 사람 이름이나, 단어 이런 게 빨리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형은 자기는 그리 된 지 벌써 오래되었다고 했었거든.​



표주박 용도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어떤 염원을 담아 달아 둔 것인가 보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계시며 설법하시는 부처님의 이름이다.

"나무"란 범어로 귀의한다는 말이요.

"아미타"는 영원하다는 말이요.

"불"이란 깨달은 이, 눈 뜬 어른이란 말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영원한 지혜의 눈을 뜨신 어른께 귀의한다'는 말이다.

​그런 말이란다.

 

 

 

가파르지도 힘들지도 않은 산길은 편안했다.

손끝이 시렸던 추위는 진작에 달아났고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몸도 풀렸다.

 

생각보다 계곡은 짧았다.

셋이서 주고받은 대화가 그리 길지 않았는데

861번 국도가 나타났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상선암으로 가는 길이 마주했다.

"좋은 길로 좋게 가자.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개고생을 할라카노."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시암재까지 걷는 것에 대한 의견 일치는 빠르게 합의되었다.

사진은 천은사 골에서 861번 도로에 나오는 지점을 돌아본 것이다.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종석대가 빤히 건너다 보였다.

 

변경하기 전 예정했던 코스를 도로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이 길로 걷게 된 것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하며 탁월한 선택이라고 서로 엄지를 세웠다.

천은사에서 천은사 골로 올라 국도를 만나고 상선암 앞 계곡을 따라 시암재 휴게소까지 째고 올라갈 계획이었다.

 

 

에스테야 형은 본능의 요구대로 다시 걸어오라면 그렇게 했고 천천히 걸어라 하면 그렇게 했다.

자세가 매우, 무척, 고고하고 꼿꼿하여 마치 기품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다 연출이다.



이 사진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차량의 번호판까지 가려 주는 이 꼼꼼하고 치밀한 편집은 귀소본능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사진:귀소본능>

 

 

시암재 휴게소는 멀리 있었다.

벌써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종류의 사진은 다 귀소본능이 찍은 것이다. <사진:귀소본능>​

 

상선암은 더 멀리 있었고, 상선암 아래에서 시암재까지 째고 갈 길을 가늠해 볼수록 도로를 따라 걷기로 한 우리의 선택은

훌륭하기 한량없었다.

 

쫘악 댕겨 본 상선암     <사진:귀소본능>

 

50M 간격으로 고도를 표시한 표지판이 보이고 땀이 조금씩 날 기미가 보일 때쯤

커브길을 돌며 지리산의 서북능선이 눈 앞으로 훅 들어왔다.

 

만복대와 고리봉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

 

차 소리와 사람 소리가 썩여 다 들리는 저 위 성삼재 휴게소가 빤히 가까웠다.

 

 

시암재 휴게소에 들여 잠시 쉬었다.

짠 국물조차도 남기지 않고 어묵을 몇 개씩 먹었다. 

물을 뜨고, 음악소리 요란한 주차장을 지나 올라 온 길을 다시 내려가다 간미봉 능선으로 들어갔다. <사진:귀소본능>



후다닥 건너뛰듯이 간미봉 능선으로 옮겨 탔다.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전 앉아 있었던 시암재를 건너다보았다.

휴게소 앞 도로가 크게 굽어지는 저곳으로 들어왔다.

 

간미봉 방향으로 걸어 갈수록
종석대와 시암재는 건너편 뒤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초 예정한 대로 계곡을 째고 올라왔다면 시암재 휴게소 아래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진 도로 저곳으로 올라야 했을 것이다.



이 사진은 전혀 연출하지 않았다.

만복대를 뒤 배경으로 깐 에스 형의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었다.

형님 모르게 얼른 찍었다.​

때로 가끔 겁나 멋있을 때가 있다.

 


차일봉 능선과 마주 보며 좀처럼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 본능이 어쩐 일로 자처해서 자세를 잡았다.

그려, 세상이나 사람이나 살다 보면 변하는 겨.

 

만들어 달아 놓은 정성과 노력에 비해 새는 여기에 살 생각이 없었나 보다.

미분양 사태가 오래된 듯하였다.

 

예전 딱 한 번 이 능선을 끝까지 타고 내려 간 적이 있었다.

간미봉과 지초봉을 지나 까치절산을 넘어 구만 저수지까지 갔었다.

그때와 달리 산길은 성가신 잡목과 잔가지들이 자주 몸을 후려치기도 하고

옷깃을 잡아채기도 했다. <사진:귀소본능>


잎이 무성 해지는 계절에는 이 길을 걷기에는 상당히 힘들 것 같았다.

발길이 뜸해지는 산길은 여지없이 묵어가고 있었다.


몇 번 잔가지에 얻어맞는 바람에 얼굴이 얼얼했다.

아마 맞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회초리처럼 착착 감기는 그 따끔함뒤의 아린 긴 여운을 말이다.

오른쪽에서는 끊임없이 찬바람이 불어 올라왔다.

바람이 불지 않는 왼쪽 아래 길로 내려 설 때면 따뜻함이,

오른쪽으로 난 길로 따라 걸을 땐 온몸에 서늘함이 느껴졌다

능선을 걷는 동안에는 오른쪽은 차갑고, 왼쪽은 따뜻했다.

냉온이 동시에 존재하는 길은 그러나 그리 길지 않았다.​

국립공원 경계 표지석이 능선을 따라 계속되었다.

한 발만 오른쪽으로 넘어가면 국립공원이 아니라는 말이렷다.​



어떤 어리바리한 공룡이 흘리고 간 알 인가했네.

 

지루하지 않게 한 번씩은 급하게 굽이쳐 내리는 길과 약간의 높이가 있는 곳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산에는 피어나야 할 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봄이 아주 감동스럽게 깊어 가고 있었다.

그 작은 얼굴에 가까이 가고 싶어 바짝 다가가 보았다.​

 

능선길을 한참 걷다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은 저수지가 살짝 보였다.

오른쪽 저 어딘가로 내려가게 되리라.

 

바람이 적당히 막히는 곳을 찾았다.

밥을 먹었다.

당나라 때 백장선사는 그리 말씀하셨다더라.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단순한 직역의 뜻 이상 심오한 의미가 있겠으나,

그런 거는 모르겠고 여기 이 자리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오늘 해야 할 일이니 즐거이 먹었다.

먹고 다시 걷는 길은 한동안 아딸딸하고 흥겨웠다.

약간 즐거움이 지나친 경향이 있었으나 일일부작에 부듯함이라 여겼다.

우째, 저 아저씨 다리가 풀린 거 같지?



아무렇게나 넘어진 길 위의 큰 나무를 밟고 넘어갔다.

길에 쓰러진 나무는 그 길 위에서 그대로 길이 되었다.​

 

 

전남 곡성에서 흘러 들어오는 섬진강이 아스라이 저 멀리로 보였다.



아직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달래는 피어나고 있었다.

진달래 고운 산길을 걷는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죽이 아주 잘 맞는 사람들과 느긋하게 걷는 산길에서 나는 만족하였고 마음은 매우 흐뭇하였다.

 

섹쉬하게 궁둥이를 치켜든 이 자세를 내가 놓칠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염하게 엎드렸구나.

 

우아하게 겸손하게 왜 이 딴 행사를 하냐고?



다 이 아이 때문이다.

솜털이 송송한 이 아이의 이름은 노루귀라 했었지.​



간미봉에 도착했다.  <사진:귀소본능>

왜? 뭐 땜시?

우리는 같이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바라보았든 조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노고단과 종석대 고리봉 만복대

테크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는 감회는 전에 느꼈든 것과는 달리 김이 빠진 사이다 맛 같았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테크가 있었던 자리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걸음은 이제 천은사 남능을 향해 빨라졌다.

무턱대고 자주 앞으로 나가는 관성대로 에스테야 형님은 자주 앞에 섰다.

그리고 곧 스스로 검열을 자주 하는 듯 맨 앞에서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곤 했다.

색깔이 유독 붉은 진달래와 물이 들다만 것 같은 연한 진달래가 여기저기서 바람에 흔들렸다.



국립공원 표지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든 모양이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왜 진달래가 흰색이지? 했고, 흰 진달래도 있나?

진달래가 아닌 거 아이가?라고도 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왜? 모르니까.

그게 진달래인지 아닌지 지금까지 나는 모른다.

아마 같이 간 두 사람도 모를 것이다.

이게 철쭉이라면,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다르지?



귀소본능이 앞서 내려가는 나와 에스테야 형님을 불러 세웠고,

내려가야 할 능선을 놓치고 줄곧 직진으로 내려가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경우 같지 않은 경우가 생겼네.

이번에는 내가 우겨서 이 길이 맞다고 했었고,

똑똑하고 영민한 귀소본능은 같이 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올라오는 나를, 내가 에스테야 형님이 길을 놓쳤을 때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한다?

'아, 그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사아람아!'

 

한번 방향을 크게 꺾인 길은 이내 하산해야 할 천은사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천은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저 능선 날머리로 내려서고 그곳으로 오지 않은 것처럼 시침을 뚝 때고

후다닥 내려설 때와는 달리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걸었다.


저수지 방향으로 먼저 들어간 귀소본능은 지 혼자서 한참을 놀다가 왔다.

 

그곳에서 이딴 사진을 찍어 내놓았다.

보름이 가까웠는지 낮 달이 선명하였는데 우리는 보지 못하였다. <사진 귀소본능>


<사진:귀소본능>



뒤늦게 활짝 핀 벚꽃을 각자 떨어져서 감상했다.

왜?

시꺼먼 사내들끼리 꽃구경하는 꼴이 좀 그랬는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뚝뚝 떨어져서 서로 모르는 사람 마냥 그랬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 천은사 저수지는 고요함이 깊이 담겨 잔잔해 보였다.

웬만한 것에는 흔들리지 않고 세상사에 고요하게 대면하면서 살 나이도 되었건만

마른 볏짚에 불붙듯 화락 타오르는 내 성깔머리는 아직도 18살 철부지 마냥 그때랑 똑같다.

사람 잘 안 변한다는 말

살아 볼수록 정답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라 했다.

산속을 헤매고 다닌 이 하루, 내 마음은 만족하였고 흐뭇하기만 하였다.

그럼 된 것이다.

2020년 4월 첫 주 106차 독오당 정기 산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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