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0.03.24 덕두산

지리99 수야 2020. 3. 24. 19:48

덕두산

 

일시:2020년 3월 24일 화요일

산행자:금농님, 수야

걸어간 길:구인월-흥부골자연휴양림-휴양림골-덕두산-바래봉-덕두산-태극능선길-구인월

산행시간:08시 27분~14시 40분 (6시간 12분) 10.1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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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 19라는 놈으로 인해

눈을 뜬 채로 나쁜 꿈을 길게 꾸는 것 만 같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닐진대 힘든 날​이 계속되니 답답해져만 간다.

​헬스장도 문을 닫았다.

날마다 동네 앞산 뒷산을 걸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걷고 걸었다.

그런다고 뭐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지만 걷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은 차분해지더라.

금농 선생님과 지리산을 같이 가기로 했다.

어차피 매일 걷는 거 이왕이면 지리산이면 좋지.

지리산 태극종주 시작점이자 종점인 구인월에서 덕두산 코스를 말씀하시길래

아직 가보지 않은 코스라 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다.

 

 

흥부골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 꽃들은 팝콘이 터지듯이 펑펑 피어나고 있었다.

겨울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벌써 봄은 이만큼 와 있었다.

빠르게만 느껴지는 세월에 항상 마음만 종종걸음으로 마냥 바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같은 나무이지만 가지마다 꽃 색깔이 달라서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구분이 되질 않았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예전 둘레길을 걸어 내려오든 그 길이다.

휴양림에 접어들자 기억은 더욱 선명하게 떠올라 누구와 같이 걸었는지도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도 다 생각이 났다.

그날은 4년 만에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는 날이었다.

함께 걸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깊었든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맙고 감사한 일들은 참 빠르게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 살아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둘레길과 잠시 만나는 이곳에서 휴양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옥 모양의 휴양림 펜션들은 각각 지리산 봉우리 이름들을 따다 붙여 놓았다.

 

 

계곡을 옆에 끼고 도로를 따라 마지막 펜션이 좌측에 있는 저곳에서 계곡 방향으로 들어갔다.

 

 

앞에서 길을 잡고 나가는 금농 선생님은 이곳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덕두산을 오르는 것이 처음이었다.

서북능선 중 유일하게 밟아 보지 못한 곳이었다.

 

 

길은 우락부락하지 않았고, 거칠지 않은 산죽을 잠시 동안 만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 동안 계속 들리든 물소리가 사라진 걸 한참 후에 알았다.

딱 한 번 휴식을 가지며 과일 몇 조각을 먹었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덕두봉까지 올라 버렸다.

 

 

미세먼지로 먼 곳의 조망은 확보되지 않았다.

주능선 상봉이 희미하게 좌우로 능선을 펼치며 멀리 있었다.

 

 

지리산 전체의 봉우리 중 나는 유일하게 천왕봉의 높이만을 알고 있다.

다른 봉우리들의 높이에 그렇게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필요할 때 그때 잠시 찾아보고 나면 곧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덕두봉의 높이가 1150m나 되는 줄 처음 알았다.

서북능선 끝자락 자그마한 봉우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어 그랬을까.

혼자 오셨다면 여기서 그냥 하산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바래봉까지 갔다 올래?라고 물어보셨고

지리산에 들어 이렇게 빨리 하산을 한 적이 없는 나는 당연히 갔다 오자고 했다.

바래봉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14분밖에 되지 않았고 산행을 시작한 지

고작 두 시간도 안된 시간이었다.

 

 

덕두봉에서 바래봉까지 왕복은 3km가 채 되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땀이 삐질삐질 나지도 않았다.

세상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한적한 산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쉼 없이 출처도 근본도 없는 무수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의지가 있을 때 성립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면 대화가 아니다.

대화가 아닌 공해는 시끄러울 뿐이다.

결코 시끄럽지 않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야말로 길동무로 걸었다.

 

 

올해 들어 바래봉은 처음이었다.

눈이 오면 무조건 가자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겨울이 다 가도록 올해는 바래봉을 와보지 못했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바래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조망은 언제나 좋았다.

바래봉 동능이 발아래에서 굽이쳐 내리고, 더 멀리 상봉과 중봉 하봉 그 능선이 선명한 선을 그어내고 있었다.

 

 

팔랑재 부운치를 지나 세걸산 고리봉으로 만복대로 뻗어가는 서북능선이 여기서 보면 언제나 좋았다.

 

 

평일이라 더더욱 그렇겠지만 산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한 탓에 멀리서 바라보는 세상마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해 보였다.

 

 

가야 할 명확한 방향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게 가장 잘 맞고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셀카 기능을 놓고 둘이 같이 한 번 찍었다.

선생님과 나는 16년의 나이차가 난다.

정치적 이념이나 생각은 전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나는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꼰대 같은 느낌을 나는 받고,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으로 선생님은

때로는 나를 볼 때도 있을 것이다.(물어본 적은 없지만, 순전히 내 생각으로)

이런 식으로 어울리지 못할 이유를 든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과 나는 제법 잘 어울린다.

맞지 않는 이유를 들어 서로 가까이하지 않기보다는 서로 잘 맞는 것을 먼저 찾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동향의 비슷한 정서를 기본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그럭저럭 대화가 잘 통한다.

언제나 술을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지리산 좋아하고

지리산의 감정교류 코드도 잘 맞는다.

내가 5살 때 선생님은 지리산을 초등 했다.

인생 경험치 만으로도 나를 어쩌면 예측 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먼저 이해해 주시고 품어 주시는 것이다.

안 되는 것보다는 되는 것,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해보는 것.

금농 선생님에게서 나는 긍정적인 삶과 낙천적 인생관을 배운다.

 

 

다시 덕두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태극종주길 덕두봉에서 구인월로 가는 길에 들기 전

삼거리 작은 공터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먹고는 가야지

한국 사람은 밥으로 다 통하지 않는가.

우리는 안부를 물을 때도 '밥은 먹었냐?'고 묻고

인사도 '식사하셨습니까?'라고 하며

한심해 보일 때도 '그래서 밥이라도 벌어먹겠냐'라고 한다.

하물며 심각한 상황일 때조차 '지금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냐?'고 하지 않는가

나쁜 짓을 하면 그렇게도 말한다 '그러다 콩밥 먹는다.'

혼자라면 간단하게 먹고 말았을 점심이지만 반주를 곁들인 오붓한 식사는 매우 즐거웠다.

"그래도 밥 먹고 사는데 큰 문제없는데 뭔 걱정 이겠나,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나."

배가 든든하고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아직도 나는 이런 용기가 막 생겨난다.

하산길은 급하지 않았다.

산길이 쏟아지듯 급하지 않았고 느긋한 걸음이 또 그러했다.

 

 

뒤 돌아보니 지나온 봉우리가 뒤에서 우뚝하고 우람했다.

선생님은 지난시절 삶에서 마주한 어려웠든 때를 이야기해 주셨다.

힘든 시절을 견뎌오면서도 누구도 원망해 본 적도 없고, 탓 해 본 적도 없다 하셨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으면 되었다고 했다.

언제나 소탈하고 긍정적인 그리고 항상 즐겁게 임하는 삶에 대한 자세를 나는 존경했다. 

 

 

한 뿌리에서 올라왔지만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친 나무를 만났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는 나무이다.

 

 

도근점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삼각점은 알겠는데 이건 뭐지?

그래서 찾아보았다.

도근점:지형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점이 부족할 때, 보조로 설치하는 기준점.

 

 

벌목으로 인해 눈 앞에 휑하니 산이 썰렁한 곳이 나타났다.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저 아래 당도할 곳이 눈으로 먼저 확인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서 줄 곧 걸었다.

걸음은 힘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호흡은 오르막에서 조차 나보다 훨씬 고르고 안정적이었다.

쉬지 않고 꾸준하게 걷는 산행 스타일의 체력은 뛰어났고 우수했다.

선생님 연세에 지리산을 이처럼 누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른 것으로는 모르겠으나 선생님은 지리산에서 만큼은 대한민국 같은 연배에서 상위 0.1%안에

들 거라고 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니었다.

정말 대단한 할배다.

 

 

이제는 기운이 다하여 가는 듯 노쇠한 오래된 세 그루의 서어나무가 길을 지키고 있었다.

한때 그 단단하고 육감적이었을 근육질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이 세상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는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었다.

영원한 것은 결코 없는 법이다.

오죽했으면 있을 때 잘하라고 했을까.

잘하자.

누구 탓도 말고, 원망도 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먼 날을 위해, 오늘 죽어 내일을 살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오늘 지금,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진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멧돼지를 잡는 포획틀인가 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구경을 하며 문이 닫히게 되는 원리를 파악해 냈다.

먹이도 없는데 과연 어떤 멍청한 놈이 저 안으로 들어갈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산길은 여기서 끝이 났다.

거리는 적당했다.

산행시간도 바람직했다.

충분히 즐거웠다.

지금 이곳에서 뿌듯함 가득 행복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차를 세워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주 강 씨 인월 종중 제실 건립 기념비를 살피는 금농님은 같은 강 씨 집안임을 확인하신다.

제실 안과 바깥에 놓아둔 벌통에서 벌들이 웅웅 거리며 날아다녔다.

꽃을 찾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봄날 벌들처럼 하루빨리 세상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마을회관에 도착 산행은 최종 종료되었다.

평일 산행도 오랜만에 해 보았지만

사람 많지 않은 단 둘만의 산행도 참 오랜만에 해 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만 그 때문에 평일에 둘이서 산행을 할 수 있었다는 말씀에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긍정이 되는 것을 배웠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가 그랬다고 한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죽은 자와 바보만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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