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1 밤머리재-웅석봉
밤머리재-웅석봉
105차 독오당 정기산행
일시:2020년 3월 1일 (일요일)
산행자:독오당과 산우들, 그 산우의 친구들 (총11명)
걸어간 길:밤머리재-왕재-웅석봉-달뜨기능선-큰등날봉-사방댐-동촌 근로복지시설
산행시간:08시 20분~15시 35분 (7시간 14분 ) 10.3km
지리산 동부 능선이 하봉, 쑥밭재, 왕등재, 깃대봉을 거치며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내려앉은 이곳에서
힘을 다시 모으고 난 뒤 웅석봉으로 불끈 그 기운을 뻗쳐 올린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홍계리와 산청군 금서면 지막리를 연결하는 59번 국도의 고개로
대원사, 덕산에서 산청읍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이곳은
주능선에서 달려온 산줄기가 도토리봉에서 높이를 툭 내려놓아 해발고도 600m가 조금 안 되는 밤머리재이다.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춥지는 않으나 날씨는 화창하지 못하다.
따라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시원스러운 조망의 기대는 일치감치 접는다.
한 대의 차는 하산 할 홍계리 동촌마을에 가져다 놓는다.
산행 채비를 하며 걸어가야 할 저 앞의 달뜨기 능선을 눈으로 먼저 담는다.
독오당원 보다 더 많은 손님이 함께 하니 이건 연합 산행이라 해야겠다.
연속으로 당수님이 함께 하는 독오당 정기 산행에, 의령팀도 연속 같이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렇게 저렇게 인연이 닿고, 함께 산길을 걷게 된 인연들이다.
나로서는 처음 뵙게 되는 분도 있고, 얼굴만 스치듯 한 번 보게 된 분도 있다.
지리산은 그 어떤 차별이나, 선입견 없이 모두를 다 이렇게 함께 받아들인다.
가장 평등하고, 공평한 세상, 그 산으로 독오당 백 다섯 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천천히 오르는 산길
서서히 몸이 풀린다
경직된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걸음은 차츰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것은 걸음 만이 아니다.
산에 들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집어던지듯이 털어버린 머릿속도 한결 가볍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화 역시, 오름길이지만 호흡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가뿐하다.
첫 번째 휴식이다.
겉옷을 벗고 나니 가벼운 마음처럼 몸도 조금 가벼워진다.
이 놈의 몹쓸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물러가야 할 텐데 정말 큰일이다.
요즘 같은 때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심각한 상황의 나를 비슷한 상황의 에스테야 형이 위로한다.
형의 위로와 걱정에는 그저 그런 대충의 건성이나,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인간다움이 있다.
사람은 급한 위기나 궁지에 몰렸을 때, 또는 진짜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사람은 그래서 내게 영원한 형이다.
진심이란 것은 이렇다 저렇다 털어놓기도 전에 상대에게 먼저 전달되는 법이다.
에스테야 형님의 진심은 언제나 정답이다.
조망이 멀리까지 트이지 않아 앞에 산들이 겨우 흐리게 보인다.
밤머리재에서부터 왕재에 이르는 이 길을 나는 처음 걷는다.
그래서일까.
그 처음이라는 생소함과 신선함으로,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으로 능선길은 전혀 지겹지 않고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막연한 어떤 설레는 기대감으로 산 길을 걷게 된다.
왕재에 도착한다.
이 곳에서부터의 길은 몇 번 걸어 본 길이다.
걸어 보았다고 이 길 전체를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웅석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조금 숨이 찰 정도로 힘들었다는
기억 정도가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왕재를 지나 오름길을 계속 오른다.
삼거리에 선다.
웅석봉에서 돌아 나와 가야 할 큰등날봉과 올라 온 왕재, 그리고 웅석봉 헬기장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헬기장으로 내려서며 올려다보니 웅석봉이 저 앞에 저렇게 놓인다.
운무가 살짝 벗겨지면서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헬기장으로 내려간다.
이 길은 다시 올라가야 할 길이다.
헬기장 옆 점심을 먹을 자리에 배낭은 벗어 놓고 웅석봉을 빈 몸으로 잠깐 다녀오기로 한다.
배낭 없이 오르는 오름길이 오르막 같지가 않다.
뒷짐을 지고 산책하듯, 스님들 포행하듯 걸어 오른다.
2009년 겨울이었다.
곰골은 얼어붙어 미끄럽고 추웠다.
산나그네 당수님과 웅석봉 곰골을 같이 올랐다.
처음으로 같이 한 산행이었다.
그날 저녁 귀소본능과도 처음 만났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웅석봉을 같이 오른 그날 선생님은
내게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책 한 권을 주셨다.
어제 일처럼 기억은 아주 선명하고 생생한데 시간은 너무도 빠르다.
여기서 바라보는 사방 곳곳은
이제 대부분 눈에 익어 알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조망되지 않는 주능선은 이후로도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멀리 왕산과 필봉도 오랫동안 구름 속에 가려 있었다.
'나쁜 놈'의 어원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데서 왔다고 한다.
'나뿐', '나뿐만'을 생각하는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인 것이다.
산꾼은 나쁜 놈이 없다 했다.
헬기장으로 내려와 물을 뜨고 점심을 먹는다.
에스테야 형님과 귀소본능은 물통을 모아 들고 물을 받으러 갔다.
모두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샘까지 오르내리며 물을 받아오는 그들은
나만을 위하지 않고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뿐'만을 생각하는 '나쁜 놈'이 아닌 아주 '좋은 놈'들인 것이다.
밥은 삶이다.
밥이 위협받을 때 삶은 가장 크게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배가 고프면 나처럼 모두가 공격성을 나타는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밥 먹는 개를 건드려 보라
가장 쉽고 빠르게 이해되리라.
나의 공격성은 배 부러고 등 따뜻하면 없다.
개 맨치로.
점심을 먹는 동안
막걸리 잔이 돌았다. 소주 잔도 돌았다.
돌고 돌더니 급기야 양주 잔도 돌았다.
수작은 본래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수(酬):술을 따라주는 것. 작(酌):술을 받는 것.
잔을 건네고 술잔을 따르면서 친분을 나누 것이다.
"어디서 수작이야?" 이 말은 술잔을 건넬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친한 척할 때 하는 말이다.
이 사람들 오늘 처음 만났는데 뭔 수작들인지....
헬기장에서 30분을 내려오면 이 전망대에 선다.
산나그네 선생님은 혼자 이 길을 걷든 어느 날 여기서 눈물이 났었다고 했다.
아버지 생각에 그랬다고 했다.
이곳에서 왜, 무엇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났는지는 여쭙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느끼는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은, 그리고 생각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것이 각자의 삶이다.
당수님이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어떤 노래 한 곡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그 노래를 산행기에 깔았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능선길을 내려간다.
하산길 내내 이런 낙엽길은 오래 계속되었다.
간혹 다시 오름길이 나타났지만 아주 짧았다.
대체로 능선은 그 높낮이로 걸음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이 길은 달뜨기 능선으로 불린다.
달뜨기 능선은 지리산 치밭목 쪽에서 쳐다보면 달이 뜨는 능선이라고 해서 빨치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웅석봉에서 감투봉까지의 능선을 일컫는다.
이태의 수기 ‘남부군’과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소개돼 많이 알려졌다.
앞서 걷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보고 감격 어린 소리로 외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것이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1천4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시퍼런 연봉을 응시하며 ‘아아!’하는 탄성이 조용히 일었다. …
이현상이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고 했던 빨치산의 메카 대 지리산에 우리는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이태가 ‘남부군’에서 지리산과의 첫 대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그 달뜨기 능선이 바로 이 길이다.
큰등날봉으로 가는 길을 따른다.
큰 등에 있는 날봉이라는 말이겠지?
한 차례 휴식을 하고 난 뒤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낙엽이 쌓이고 경사가 급해 길이 많이 미끄러우니 주의하라고 한다.
이 길을 이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 본 모양이다.
아무도 먼저 앞에 가지 않는다.
맨 먼저 내려간다.
아주 오래전 독오당 표지기다.
표지기만큼 오래된 기억이다 빨리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 이 길을 올라왔었지 아마...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오다가 일행을 기다리며 지나 온 능선길을 뒤돌아 보았다.
지치는 날도 가끔은 있다.
버거운 날도 있다.
이게 뭐 하자는 것인가 싶고 막막할 때도 있다.
또다시 시작될 내일에 대한 불안에 잠들 수 없었든 날들.
그래도 그런 날도 여태 잘 견디고 지나왔다.
살다 보면 어찌 또 살아지겠지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다 보면 흐리고 비 오는 날 보다는
맑은 날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 카더라.
이 오르막 힘들게 오르고 나면, 조금은 편한 내리막도 나오겠지.
장군바위라는 이름은 하산 후 알게 되었다.
어디서 어떤 이유로 장군바위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내표지판에 이 바위 이름이
장군바위로 나오더라.
무릎 높이 까지 낙엽이 쌓였다.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며 하산길은 경사가 급한 만큼 빠르게 이루어진다.
밤머리재에 있는 차를 회수하기 위해 몇 사람만 먼저 속도를 내어 내려간다.
사방댐으로 귀소본능이 가장 먼저 내려선다.
홍계 사방댐
약초를 재배하는 하는 개인 사유지 산약초 농장의 철문을 지나면 딱바실골 계곡과 만난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기억 해 두었든 악대실골이 이 부근인 것 같다.
지도를 열고 살펴보니 역시 그렇다.
다시 한번 더 기억을 저장해 둔다.
딱바실골을 따라 내려오자 펜션인지 뭔지 정학한 이름이나 간판도 없는,
지도에는 공무원 근로복지시설로 표기된 건물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의 종점이다.
내려온 산을 깊이 돌아보았다.
확실하거나 분명한 것,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인가 하나를 이룬 것 같은 충족감이 들었다.
그 뿌듯한 마음,
그것 때문에 아마 나는 이 곳을 다시 기웃거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