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8.12.30 바래봉

지리99 수야 2018. 12. 30. 20:39

바래봉


일시: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산행자:연하님, 노을님, 수야, 수야 딸 (4명)

걸어간 길:운자사-바래봉-운지사




딸아이와 함께 2018년을 딱 하루 남겨두고 바래봉을 올랐습니다.

'딸과 함께 지리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라.'는 내 말에

무슨 큰 인심이라도 쓰듯 아빠가 그리 원하니 '한번 같이 가 준다.'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게 훤히 보이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바래봉은 눈이 없지만, 거리가 짧고 완만하여 선택했습니다.

다녀온 소감을 글로 적어 보라 했더니 귀찮아하면서도 마지 못해 내놓았습니다.



나는 글솜씨가 그리 뛰어나지 않다.

어릴 때부터 글 잘 쓴다는 얘기도 몇 번 들었고, 고등학교 와서 상도 많이 받아봤기는 한데,

그래도 나는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분수에 맞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은 내 분수에 맞는 작은 글이다.

글도 그렇듯, 산타기도 뛰어나지 않다. 뛰어나긴 개뿔, 형편없다.

나는 내 글짓기처럼 모든 것에 겁을 먹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본다.

한마디로 등산에는 최악인 성격이다. 이 말이다.

아빠 닮아 좀 사람이 겁도 없고 우직하게 걸어야 멋이라도 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런 내가 아빠를 따라 산에 갔다.

지리산에 올라가는 순간 속으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괜히 따라왔다고 우는 소리를 얼마나 냈는지.

그래서 종합적으로 봤을 때, 글쓰기처럼 내 등산 실력은 내 분수에 딱 맞다.

어릴 적 나는 아빠가 지리산을 밥 먹듯 가는 게 너무나 이상했다.

산이 뭐라고, 그놈의 산이 뭐라고. 몇 년 전에는 질투심이라도 났는지 그냥 지리산 가서 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냥 산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책장에도 지리산, 블로그에도 지리산, 노트북 화면에도 지리산, 얘기를 하면 주제는 지리산.

이러다 술안주도 지리산 사진 켜 놓고 하겠다 생각했는데, 가게 벽에 이미 지리산이 액자 안에서 웃고 있었다.

정철이 자연 경관을 구경하면서 관동별곡을 써 낸 것처럼 아빠는 지리산을 두고 몇 편의 글을 써냈다.

대단한 마음도 들었지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다른 소리지만, 나는 그렇게 보면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나도 음식이든 책이든 뭐든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중학생 때 심리학과를 결정했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진학에 성공했다.

그렇게 원하던 학과에 합격 후에 기쁜 마음으로 아빠 소원을 한 번 이루어 주겠다며

지리산 등반을 같이 가겠다고 입으로 망언을 내질렀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후회했다.

지금에서야 편하게 침대 안이니 그 때는 그랬지 하하하고 웃고 말지만 정말 많이 후회했다.

그 때 교훈 하나 얻었다.

기분이 좋을수록 입을 조심하자고.

서론이 길었지만 드디어 산행기로 들어가자면 아침에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옷을 껴입고 차에 올라탔다.

가다보니 잠도 깨고 설레어서 노래도 좀 뽑아주고 했더니 아빠가 들뜬 목소리로 저게 지리산이란다.

그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구나 하고 가서 밥 먹고 드디어 올라가자고 등산화를 신었다.

차에서 내렸을 때는 너무 추워서 아빠 패딩도 뺏어 입고 핫팩을 두 손에 꼭 쥐었었다.

한 다섯 겹 정도 입은 것 같은데,

올라가다 덥다고 중간 중간 계속 벗어내서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부피가 줄고 옷 색도 달라졌다.

아빠가 어린애 데리고 온 것 같다고 짜증냈는데 나는 그냥 웃겼다.

나름 지리산과의 첫 만남인데 어리숙한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원래 처음은 전부 어색해야 맞다.

길은 굉장히 미끄러웠고 숨도 찼다.

아저씨들이랑 아빠는 고개 들어보면 저 멀리서 가고 있었다.

매순간 엄마가 보고 싶었다. 중간 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는 (입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감탄이 나왔다.

숨을 고르고 정신없이 서 있다가 밑을 쳐다봤는데 눈에 보이는 모습들이 신기했다.

탁 트인 파란 하늘과 끝없는 초록 산봉우리들이 조화로웠고 사진을 찍는 족족 예쁘게 나왔다.

속이 시원해지는 경치였다.

올라온 노고가 있다고 생각했다. 표현력의 한계로 더 쓰지는 못 하지만 청량감만은 확실했다.

올라가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나 보다.

분명 아빠가 내려가는 데에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난생 그런 길은 처음 가 봤다.

너무 미끄럽고 무서워서 아기 걸음마보다 더 보폭을 좁게 했더니 아빠가 한심해 했다.

몇 번 넘어질 때마다 서러워서 가자미눈을 하고 아빠를 봤더니 아빠가 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서글프다.

더 이상 못 내려갈 것 같아서 19짜리한테 꽃길만 걷게 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이런 험난한 길을 걷게 하냐고 지리산 한복판에서 소리쳤다.

차라리 수능을 다시 보겠다는 나름 무시무시한 말도 꺼냈는데,

아빠가 너무 좋아하면서 산에 오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속으로 욕했는데 아마 표정으로 태가 났을 듯하다.

미끄러워서 더딘 걸음으로 무섭다고 염불을 외우니 아빠가 명언 한 마디를 남겼다.

일단 올라왔으니 내려오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며 누구도 도와주지 못 한다고.

산에 왔으면 어떻게든 해내야한다고 했다.

인생살이가 더 힘들다고도 했다.

그 당시는 위로도 안 되고 힘들어 죽겠다고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내가 대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고,

고난도 몇 번 찾아올 텐데 그 때마다 무섭다고 버겁다고 징징거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하기로 한 일에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일이 그렇다.

명언을 뒤로 하고 내려가다가 아빠가 아이젠을 신겨주었는데 그 때부터는 그나마 전보다는 잘 내려갔다.

역시 초보자는 보조기구가 있어야하지 않겠나.

진작 신겨주지 라는 마음을 숨기고 가다보니 어느새 등산을 마친 후였다.

아저씨가 소고기를 사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당시에 지리산보다 소고기가 더 잔상이 깊게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입은 행복했다.

돌아와서 보니 나름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재미도 있었다.

좋게 생각해보면 산에 가 봄으로써 내가 모르던 내 모습도 알게 된 것이다.

아빠랑 유대감도 쌓을 수 있었고 살면서 더 높은 산도 한 번 가봐야 할 텐데 미리 체험도 했다.

더불어 아빠는 딸과 지리산에 올라가고 싶다는

소원도 이루었으니(아빠는 자기 소원 아니라고 우기지만) 자식의 도리도 지켰다.

내 몸은 아팠지만 건강증진에 분명히 도움이 되었으리라 자부한다.

눈도 입도 폐도 마음도 건강해졌으니 득만 남은 등산이다.

다음에 또 가자고 꼬드기면 고민은 많이 해봐야겠다만,

아빠가 데려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애를 데리고 뭘 하겠냐는 말을 몇 번 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기대감은 줄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속상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즐거웠고 배운 것도 있었으니 아빠가 사랑하는 지리산을 한 번 밟은 것에 감사해야겠다.

끝.




연하 형님과 노을 형님이 함께 걸어 주셨습니다.


길이 얼어 미끄러지지 않을까 신경을 바싹 씁니다.

하도 추워하길래 제 옷까지 입힙니다.


예전에 보지 못한 안전쉼터가 올라가는 길 곳곳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법 눈이 쌓인 곳이 나타나고 뽀드득거리며 눈을 밟는 기분을 느낍니다.

생각보다는 그런대로 딸아이가 잘 걸어 주었습니다.


내 눈에는 아직 어린애로만 보이는데 내일 하루만 지나면 성인이 된다고 어른 대접을 하랍니다.


날씨가 맑아 운봉이 깔끔하게 보입니다.

딸아이는 나름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꾸준히 잘 따라옵니다.



바래봉 샘을 지나고 바래봉 정상으로 오르는 오르막에서는 나를 앞서 걸어갑니다.


나는 딸아이가 언제나 당당하고, 밝고, 넓은 마음으로 지금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삽니다.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며 아빠보다는 훨씬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시험 날 시험장에 태워 주며 손편지를 짧게 써서 주었습니다.

아빠는 너의 어떤 선택과 결정도 존중하고 지지한다.

아빠가 살아 보니 인생이란 게 썩 괜찮을 때도 참 많다.

네가 아빠 딸로 와 준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아빠에게는 충분하다.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하며 살면 된다.


형님들은 구미에 맞지도 않고, 짧고 별 재미도 없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같이 걸어주셨습니다.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형님들의 마음을 저는 잘 압니다.


아침도, 저녁도 두 분 형님들이 사 먹였습니다.

딸이 읽어 보라고 추천해 준 책에 그런 글이 있었습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당신을 만난 것을 축복한다>

저에게는 축복인 좋은 인연이 참 많습니다.

감사하고,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선명한 날씨로 저 멀리 산들이 또렷합니다.

삼봉산 넘어 황매산과 왕산 지리 주능까지 조망됩니다.




아빠를 이해해 보려 하는 딸아이가 대견합니다.


거리를 줄여 보려 능선을 따라 하산을 합니다.


몇 번을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걸음이 한없이 더딥니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달래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철망을 넘고 딸아이 가 묻더군요.

엄마 데리고 산에 가면 항상 이런 길로 다니냐고.


산을 오르는 거나 인생을 사는 거나 비슷하다.

오르는 것도 내려오는 것도 모두 자신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만 그리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쩌면 팔불출 같은 짓인 것만 같아 이 산행기는 생략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저 좋은 모습으로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또 같이 산을 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18년 마지막 산행을 딸과 함께 한 저는 그저 행복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