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9 삼봉산-백운산-금대산
금대산
일시:2018년 12월 09일 (일요일)
산행자: 행동팀3명+연하님, 노을님, 최옥희님 (총 6명)
걸어간 길: 오도재-오도봉-삼봉산-등구재-백운산-금대산-금대암
산행시간:08시 24분~16시 38분 (8시간 14분) 9.6km
산행트랙: 2018-12-09 삼봉산.gpx
오도재(悟道峙)라는 이름은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靑梅) 인오조사(印悟祖師·1548∼1623·서산대사의 제자)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한 연유로 얻었다고 전한다.
고개는 옛날 남해·하동 등지의 해산물이 전북·경북·충청 지역으로 운송되는 육상교역로였단다.
오도재 주차장에서 산행채비를 하는 동안 손끝이 아리는 차가움이 엄습해 왔다.
금대암까지는 물을 뜰 수 있는 곳이 없어 식수를 미리 준비했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서둘러 산길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출발 전 사진 한 장을 찍는 것도 빨리 찍으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야 했다.
산신각 바로 아래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손끝이 하도 시려 손을 집어넣고 불을 쬐었다.
촛불은 여러 개가 한꺼번에 켜져 있어 의외로 따스하게 느껴졌다.
촛불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킨 이야기가 튀어나오려 했으나 속으로 눌러 앉혔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다녀오게 해 달라고 머리를 숙여 기도했다.
다른 몇 사람은 기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속으로 했다고들 했다.
몸에 열이 올라오기까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걸었다.
너무 빨리 걷는다고 뒤에서 뭐라고 하는 말이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얼얼한 차가움이 조금 걷고 나자 서서히 줄어들었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서자 주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서서 쉬는 동안 추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은 것에 대한 질책과 잔소리를 한참 들었다.
내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한 연하 형님은 이쪽도 저쪽도 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5대1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터득한 바에 따르면
이럴 땐 무조건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간혹 어떤 대상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멀리 두고 바라보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지리산을 멀리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여러 곳 중에 삼봉산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06년과 2010년에 이 코스를 똑같이 걸었다.
처음은 혼자였고 두 번째는 독오당이었다.
같은 산길이지만 그때마다 느낌은 달랐다.
누구와 어떤 인연을 맺는가에 따라 사람의 운명도 바뀐다고 하더라.
인생에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지리산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가정을 해 보았을 때
현재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지금 보다 더 진보하거나 나은 삶이었을 거라 나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름길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서 잠시 쉬는 동안 모두가 감탄할 만큼 주능은 시선을 빼앗아 갔다.
주능선의 봉우리들과 골짜기들이 불끈거리는 힘줄처럼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온 반야봉과 삼정산 능선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곳저곳을 이야기했다.
산을 오르는 기쁨 중에는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이런 조망을 보기 위함이 어쩌면 가장 으뜸인지 모르겠다.
더없이 넓게 펼쳐지는 조망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힘들어도 그것조차 모두 즐김으로 여길 만하다고 생각했다.
빨간 글씨로 새긴 오도봉 정상에 도착했다.
기껏 2km 남짓 올라온 길이지만 한 봉우리를 올랐다는 성취감은 걸어온 짧은 거리와는 무관했다.
만족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남부러울 정도로 이루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릇이 작아 그런지 몰라도 나는 주어진 내 것에 만족하며 살고자 하는 편이다.
몸이 풀리니 입도 풀렸는지 요구사항은 많아지고 말이 다음 말을 끌어오는 말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 말들이 대부분은 나를 성토하는 것들이다.
듣고도 못 들은 것이 군자의 행동이므로 나는 무시할 것은 적당히 무시했다.
두 최 여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손이 시리지만 요구대로 카메라를 조준했다.
오도봉에서 오두방정을 뜨는 형님들도 놓치지 않았다.
오래된 고목 위로 하늘은 푸르게 차가웠다.
시퍼런 차가움은 맑았다.
콕 찌르면 쨍하고 금이 갈 것 같은 맑음이 꼭 내 마음 같다는 말은 누구도 응답하지 않은 채 산산이 부서져
처절하게 무시를 당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괘념치 않았다.
또렷하고 선명한 산길이 반듯하게 주어졌다.
반듯한 산길은 반듯하게 걸어주어야 경우에 맞는 경우다.
내린 잔설을 밟으며 올해 첫 눈 밟음을 기뻐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의 처음이라는 것은 설렘이고, 두근거림이고, 부푼 희망이더라.
처음 가는 길, 처음 하는 일, 처음 만나는 사람, 두렵기조차 한 처음이라는 희망과 기대.
그래서 그 설레는 처음이 나는 좋다.
나는 내가 아직도 해 보지 않은 많은 그 처음들을 여전히 희망하고 꿈꾼다.
물론, 항상 한결같은, 그래서 한 몸 같은 오래될수록 좋은 것도 많기는 하다.
이 높은 곳까지 장비가 올라와 있었다.
두 사람이 들고 이동하기 쉽도록 만든 것 같은데, 어디에 쓰는 기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체 나무는 온몸으로 겨울을 받아내고 있었다.
진수성찬 앞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마른 떡 한 조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신체로 살아 있고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음이 무한 감사하다.
추운 겨울조차 소중한 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잠시 생각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반복되었다.
이제 추위가 거의 걷히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도 웃음소리가 많아졌다.
나무계단에 얼어붙은 얼음 때문에 조심해서 내려갔다.
앞선 내가 미끄러지지 않으면 모두 따라서 왔다.
현명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계속 반복되었다.
오래전 걸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밧줄이 있었던 곳을 우회하여 계단이 놓여있었다.
삼봉산 정상까지 쉼 없이 올랐다.
낙엽 위로 내린 눈이 생각보다는 미끄럽지 않아 몸이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맨 앞의 내가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나로 인해 다른 누구도 미끄러지지 않았으니
가치 있는 넘어짐이라고 위로하며 쪽팔림을 덮었다.
삼봉산에 도착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마천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산.
올라온 반대편 서쪽 능선을 따라가면 투구봉과 서룡산을 거처 수청봉으로 이어진다.
그 능선에 서진암과 금강대 백장암이 자리를 잡고 있다.
투구봉에서 갈리는 팔령재 방향길을 외면하고 금대암으로 길을 잡아갔다.
내려가면 등구재를 지날 것이다.
인월 중군리 방향으로 능선이 구불거리며 내렸고 사방을 둘러 조망을 살폈다.
산행 시작 때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스가 많이 차 있었다.
함양 방향의 여러 산을 둘러 보았고, 지나온 길 넘어 왕산과 황매산도 또렷이 보였다.
삼봉산을 내려가며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지 의논했다.
등구재를 내려서기 전 적당한 곳이 나오면 밥을 먹기로 했다.
삼봉산에서 등구재 방향으로 고도가 급하게 떨어지자.
이 길을 처음 걷는 아줌마들의 걱정이 격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도를 이리 낮추면 얼마나 다시 올라가야 하느냐고 했다.
그냥 적당한 곳에서 밥 먹고 등구재에서 하산하자고도 했다.
이럴 땐 빨리 내빼는 게 상책이다.
등구재로 내려오는 산길에 우뚝 선 바위 하나가 무수한 말을 만들게 했다.
빨딱 바위니, 벌떡 바위니, 우뚝 바위니 모두가 지어낸 우리들끼리의 잡담이지만 한참을 웃게 했다.
아주 적당한 곳에서 적당한 점심을 먹었다.
배가 불러야 마음에 여유도 생기는 법이다.
풍족한 포만감이 들었을 때 금대암까지 가자고 말했다.
등구재에 내려서자 마음이 바뀐 반동들이 생겨났다.
딱 여기까지가 좋다는 말은 못 들은 척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금대산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하지 않았다.
별로 멀지 않다고 구라를 쳤고, 앞서서 빨리 걸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말들에 답하지 않았다.
금대산 방향 백운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간벌작업으로 잘린 나무가 뒹굴고 있었다.
길을 가로막은 쓰러진 나무를 지나가는 방법과 자세는 사람마다 달랐다.
처음부터 아주 낮게 엎드려 지나는가 하면 배낭이 걸리고 나서 자세를 낮추는 사람도 있었다.
정답이 없는 인생처럼 서로 다를 뿐 누가 옳고 틀린 것이 있겠는가.
어떤 상항이든 사람은 그 상황을 살아내는 생각과 방법이 제각각 다를 뿐이다.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어떠한 자유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책에도 나오더라.
그래서
"뒤에서 어떻게 넘어 가노?" 묻길래
"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했다.
또 잔소리를 들었다.
땀이 날 정도로 올라온 오르막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요. 내가 산을 만든 것도 아닌데...."
그래도 재미있지 않냐고 달래야 했다.
항개도 재미없다는 말이 바로 따라왔다.
얼굴에 힘든 표정이 드러났다.
표정만큼 원망은 내 몫이 되어갔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래도 웃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 증거 사진이다.
과일을 나눠 먹고 쉬었다.
금대산으로 향했다.
천왕봉은 얼굴 방향을 바꾸어 보여주었다.
이 바위를 나는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이곳에 올라서서 건너 금대산을 보았다.
설마 저길 또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고 물어왔다.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다음에 들려올 말들이 대충은 상상이 되리라.
알고 보면 나는 이 하루 저 사람들의 밥이었다.
한 비탈 더 힘든 오름 짓을 하고 난 후 금대산에 올라섰다.
산불감시초소에서 감시원이 나와 반갑게 반겨주었다.
아래 마천 방향의 마을들과 삼봉산에서보다 훨씬 가까워진 지리산이 눈에 들어찼다.
지금까지 투덜거리든 불만은 일시에 사라졌다.
심지어는 이 방향에서 저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금대산에서 바라본 오도재 방향과 오른쪽 법화산
공사가 중단된 석불 조성지역은 산이 파헤쳐진 체 흉물스러웠다.
오른쪽으로 왕산과 독바위와 새봉, 상내봉이 가까이 조망되었다.
산불방지초소 감시원께서 단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가까워진 상봉을 바라보며 잔소리를 하든 아줌마들도 "디기 좋다!"를 연발했다.
금대암으로 가는 임도에 금방 도착했다.
포장길을 따라 금대암으로 갔다.
길에서 바라본 독바위와 솔봉
처음엔 오기로 올랐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막막하고 답답할 때마다 올랐었다.
서러움과 분노를 모두 토해내듯 헉헉거리며 죽기 살기로 오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언제부터 인가 저 산은 위안으로 내게 왔다.
첫눈이 오듯이 설렘과 부푼 마음의 기대로 내게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저리로 이끌고 싶었다.
또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이 목전에 오는 그 순간까지 나는 저곳에 가고 싶다.
내가 저 산으로 간 것인지, 저 산이 내게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 산이 내게 왔듯이, 나도 그렇게 가고 싶다.
금대암에 들어갔다.
여기저기를 둘러 보았다.
마천까지 걸어가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택시를 불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 욕망이 있다.
인정받고 싶다는 건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다.
'나'를 알아봐 준다는 건
'나'와 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호 인정이 가장 아름답다,
내가 인정하는 주체가
나를 주체로서 인정하는 것
그것은 단지 자신을 과시하고 싶다는 것과
전혀 다른 욕망이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나는 그대를 인정하고 싶고 만나고 싶다.
어째, 그대도 나를 인정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시는가?
오도재에서 시작해 오도봉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금대암에서 산행을 마쳤다.
고작 한 달에 한 번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멀고 힘든 길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햇볕도 없는 건물 속에서 일만 하다 이렇게라도 산바람을 쐬고 나면 사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세월은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하루를 24시간, 1년을 365일로 정해져 있다.
하루는 둥근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말한다.
지구의 지름이 약 12,000km, 지구의 둘레 = 지름 × π = 12,000 × π = 약 37,680km
37,860km ÷ 24시간 ÷ 60분 ÷ 60초 = 약 430m
그러므로 지구의 자전 속도는 1초에 약 430m를 돌고 있다.
세월은 1초에 430m를 흘러간다는 말이다.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말하는데, 365일이 걸린다.
365일 동안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려면 1초에 30km를 달려야 한다.
즉, 지구의 공전 속도는 1초에 30km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1년이란 세월은 1초에 30km란 속도로 지구가 365일 우주공간을 날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 공전의 속도는 승용차가 100km로 달릴 때 보다 16배 빠르고,
KTX가 300km로 달릴 때 보다 5배나 빠르다.
우리 눈 앞에서 KTX보다 5배나 빠른 물체가 지나갔다고 생각해 보면
그 빠른 속도가 바로 세월이라는 것이다.
뒤돌아보니 일년이 휙 지나갔다.
겁나게 빠른 세월을 붙잡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의 세월을 어떻게 살까 생각 해 보았다.
적어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인상쓰고 고민하고 화내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좋은사람들과 좋은일로 즐겁게 웃고만 살아도 모자라는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