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3 황장동
황장동
독오당 89차 정기산행
일시:2017년 12월 3일(일요일)
산행자: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4명)
걸어간 길:용강마을-황장동-황장등-황장산 능선-812.1봉 -521봉 -머구내-임도-판교마을
산행시간:07시 49분 ~16시 09분 (8시간 20분, 휴식 식사 포함) 오룩스맵 기록 11km
독오당 송년산행이다.
우여곡절 끝에 황장산이다. (우여곡절[
하동을 들어서면서 최근에는 연속 이쪽으로 오게 된다고 말을 한다.
다들 아무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것은 생각 중이다는 의미다)
지난번에 어디를 갔지? (대장님이 묻는다)
다들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것은 생각 중이라는 뜻이다)
어디를 갔더라? (대장님은 기억이 안 난다. 바보1)
다들 말이 없고 눈만 껌벅거리는데 차는 빠르게 달린다 (기억 안 나는 나머지 바보 1.2.3.)
분명 이 쪽으로 오긴 왔는데 기억이 안 난다.
...........
면바위골!!
갑자기 생각이 난 내 말에
아! 아! 아!
바보 도(道) 터지는 소리가 연발한다.
독오당이 집단지성인 줄 알았더니 집단 바보가 되어간다.
술을 끊어야 될랑가.
새로운 인재를 영입 해야 될랑가.
<사진:귀소본능>
용강마을 주차하기 좋은 위치까지 차를 올려놓고 산행을 시작한다.
움츠러드는 냉기가 느껴지지만 그리 대단치 않은 차가움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몇 발자국 옮겨 놓자마자 사잇길로 들어서고 길은 산으로 열린다.
차 밭을 끼고 오른다.
날씨가 추운 날에는 대장님은 사정없이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오늘은 느긋하게
의료상담까지 해주며 걷는다. (그리 춥지 않다는 뜻이다)
<사진:귀소본능>
용강마을 앞 화개천으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녹차 밭이 한 운치를 더해 잠시 감상에 젖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대장님 산행기에 연인들이 손잡고 데이트할 만한 길이라 하더니 과히 그렇다.
(사진:귀소본능)
지리산 주능선이 아니면 지리산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에스테야 형님은
황장산에 오게 된 것은 대장님의 어떤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대장님 뒤를 잘도 따라 다닌다. (바보 2는 바보 1을 굳건히 믿는다)
황장산은 지리산 주능선 삼도봉에서 남으로 줄기를 뻗어 불무장등으로 이어진다.
1,441m 불무장등의 그 능선은 남으로 고도를 낮추며 길게 통꼭봉으로 내 달린다.
통꼭봉을 지나 당재를 넘고 황장산으로 다시 고도를 내리는 산맥은 화개 섬진강으로 닿는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입각한 확실한 지리산 능선이다. (바보 2는 알아 들었제!)
녹차 밭을 좌측에 두고 고사리밭을 지나며 빤한 길을 버리고 우측 비탈로 대장님이 안내한다.
그 비탈 밤나무 가지를 내리고 독오당 표지기를 단단히 매달아 둔다.
(이때 바보 2는 좋은 길 놔두고 험한 길 간다고 궁시렁댐)
비탈을 치고 오르다 보면 저절로 왜 이 길인지 이해가 된다.
그 길가에서 우측으로 눈길을 돌리니 주능선이 다가온다.
덕평봉이다.(바보 3이 바보4에게 물어보고 확인함)
(사진:귀소본능)
폭신하고 단조로운 산길이 놓인다.
전기가 흐른다는 짐승퇴치용 전깃줄이 길을 따라 한동안 이어진다.
(진짜 전기가 흐르는지 항상 궁금하여 건들여 봄. 전기 안 흐름)
길을 막아놓고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된 것으로 보아
저곳으로 가면 저렇게 막아 놓을 만큼 중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암으로 가는 길이라 대장님이 일러준다.
(여기서 바보 3과4는 오줌을 눔 감시 카메라를 처다보면서)
하산길이라면 분명히 그 호기심 때문에 슬쩍 들어갔을 것만 같다.
인간의 욕망은 금지된 것을 더 욕망하게 되어 있지 않는가.
계곡을 만나고부터는 돌 축대가 고도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넓고, 길고 방대한 마을터와 경작지의 흔적이다.
폭포도 아닌 것이 폭포인 양 폭포 흉내를 내는 소폭을 지나 배낭을 내리고 옷을 벗는다.
돌아서서, 멀리 가서, 각자 자세를 잡고 볼 일도 본다.
황장동을 5번 오르내린 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설렁설렁 읽은 산행기를
이제 자세히 다시 읽어 봐야겠다 생각한다.
어떤 길이든 찾겠다 생각하면 몇 번이고 같은 곳을 오르내리는 열정과 집념은 참으로 존경이다.
황장산의 산길은 대부분 대장의 그 열정으로 지리산길 지도 위에 그려졌다.
(좋은 말로 열정이고, 달리 말하면 미친 거지 뭐)
고도 360m 부근을 지나며 창고인지 저장고인지 모를 건물을 우측에 두고
비탈의 사면길은 계속된다.
대장님이 배낭을 내리고 옷을 벗는다.
쉬어 가자며 배낭을 내리라고 한다.
그때 본능 눈이 빛나면서 뭔가를 발견한다.
대장님은 같은 나무 반대편에서 여기도 있다며 찜을 한다.
(지들끼리 다 나눠 가져감)
배낭을 벗어 두고
황장산은 지리산이 아니라고 하든 에스테야 형님과 대장님이 트랙을 따러 가고
젊은 우리는 한동안 탱자탱자 놀고먹는다.
대장님은 다 같이 갔다 오자고 했으나 귀소본능이 나서서
수야 햄은 발목이 안 좋고 자기는 컨디션이 안 좋다며
두 분이 다녀오라고 기다리겠다는 뻔히 보이는 구라를 쳤다.
(이 안 바보 4의 훌륭하기 그지없는 말이 얼마나 감동이든지)
그것이 먹힌다. (바보 2는 이것들이요 하면서도 대장을 따라 감)
귀소본능은 그 어려운 것을 자꾸 해낸다.(바보 3은 바보4를 막 존경하고 싶어진다)
얼마나 내 맘에 쏙 드는 적절한 대처능력이든지
상황버섯은 지가 발견하고 지가 딴 거지만
저 다 하라고 했다. (바보 4는 술로 맹글어서 나누어 먹자고 제안을 한다-이런 훌륭한 넘)
걷다가 쉬는 시간이 길어지니 쌀쌀함이 밀려온다.
기다림이 슬슬 지겨워 질 때쯤
늙은이 욕보인다며 투덜대는 에스테야 형님과 대장이 내려온다.
춥지 않더냐고 묻는 대장은 따뜻한 바보다.
젊은것들이 춥기는 뭐가 춥냐며 바보 2는 대장과
다시 앞서서 길을 걷는다.
트랙을 따러 간 길과 지금 경로는 다시 만난다고 대장님이 알려준다.
그러니까 두 길이 있고 그 길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과 곧 하나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두 길을 다 확인하고 싶은 대장은 그래서 배낭을 내리고 갔다 온 것이다.
계곡 쪽으로 이동된 경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낙엽으로 약간 미끄러웠으나 진행을 방해받지는 않는다.
중경팀 전속 사회자 연하님이 건배 제의를 할 때면
선창으로 <쪽! 쪽!>이라 하고 나머지는 합창으로 <빨자!>라고 외친다.
쪽쪽 빨자!
고로쇠 수액을 채취 하기 위해 한 나무에다 저렇게 많은 호스를 꼽고 쪽쪽 빨아 버리면 저 나무는 살까?
술잔을 쪽쪽 빨아도 다음날 머리가 아픈데...?
<사진:귀소본능>
표지기를 달면서 장난을 한다.
(바보 2가 뭘 했길래 저리 웃는지 바보3은 궁금했다. 그러나 바보 4는 웃을 뿐 말해 주지 않았다)
<사진:귀소본능>
황장동
[황장동(黃獐洞)이 아니라 항장동(項長洞)이 원지명이다.
산길을 따르다 보면 고도 600m에서 작은 지계곡을 건너자마자 황장동터가 나타나는데
산길과 접한 규모있는 석축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처음은 아래에서 본 석축 규모가 마치 성이라도 쌓아 올린듯 으리으리해 놀라고,
두 번째는 막상 석축 위를 올라보면 면적이 쟁기조차 들어갈 수 없는 따비밭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땅뙈기를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얼마나 신산하고 힘든 노동을 바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1970년대 독가촌 철거로 폐동이 되었다]-다우님 산행기에서 발췌
<사진:귀소본능>
성벽 같은 거대 석축의 그 규모와 견고함에 한동안 감탄한다.
샘은 말라 물은 보이지 않고 흔적만 남았다.
황장동을 지나 움막으로 표기된 장소에 선다.
내려앉은 텐트의 잔해가 방치되어 있다.
움막 터를 지나 황장등으로 올라간다.
황장등은
[모암에서 구례 토지면 평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갯마루까지 길고도 힘든 고개라는 의미의 항장(項長)이 원래 지명이며
황장산, 황장동은 모두 항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잘못된 지명들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 누런 노루의 황장(黃獐)으로
바꾸었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다우님 산행기에서 발췌
<사진:귀소본능>
황장등에 올라서고
좌측으로 둥그스름한 왕시루봉을 보며 능선을 오른다.
882봉을 지나자 넓고 평평한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의 끝자락을 따라 돌로 경계를 표시하듯 길고 촘촘히 돌이 일렬로 놓여있다.
누군가 정성 들여 쌓은 것은 분명하나 어떤 용도인지는 가늠되지 않는다.
점심을 먹기로 한다.
딱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장소에서 1시간 20분의 식사는 과식을 유발한다.
바보 1의 의상은 다른 바보들의 부러움이 되었다.
과식하지 않는 대장님은 볼일을 보러 갔다.
우리들은 정말 바보처럼 남김없이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다.
조금 남은 음식은 3등분으로 나누어 각자 배당으로 또 먹는다.
이를 지켜본 대장님은
사람 같지 않다는 표정이다.
아마 내 기억으로도 이렇게 많이 먹기는 처음인 것 같다.
대장이 놀랄만하다.
결국, 오르막이 나오면 숨을 쉬지 못할 만큼 힘이 들었다.
이럴 때 우리 동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짜구난다!)
<사진:귀소본능>
농평마을과 주능선으로 통꼭봉 삼도봉 반야봉이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별 관심 없는 듯 보이는 바보 2는 그래도 사진은 자꾸 찍어 댄다.
낙엽진 산길을 느긋하고 품위 있게 걸어가며
소화를 시키려 노력한다.
이 수고로움을 결코 이해 못 하는 대장은 저만큼 앞서서
바라보며 말은 안 해도 속으로 그럴 것이다.
바보들.
<사진:귀소본능>
목통과 칠불사가 산자락을 따라 움직이는 눈에 들어온다.
칠불사 위로 토끼봉과 주능의 조망도 깨끗하다.
배가 불러 바보 2를 상대로 장난 할 마음도 없다.
짜구가 난 것 같다.
칠불사를 당겨 본다.
주차장의 모습까지 선명히 쑥 당겨온다.
<사진:귀소본능>
촛대봉
길은 평탄하여 걷기에 적절하다.
812봉을 지나자 좌측 당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당재로 가는 길로 무심코 들어섰다 다시 올라온다.
지리산 길 지도에는 없는 길이다.
우측을 잘 살펴 대장님이 앞장서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한동안 심하게 고도를 급히 낮추며 아래로 향한다.
앞에 넘어지고 뒤에서 넘어지고 낙엽으로 인해 미끄러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 낸다. (앞뒤 누가 넘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씀)
521봉을 지나 커다란 고로쇠 집수통을 만난다.
여기까지 이걸 어떻게 운반했을까?
대장님이 궁금해했고
에스테야 형님은 헬기로라는 짧은 영혼도 없고 자신도 없는 대답을 한다.
비탈길을 잠시 치고 내려 임도를 만난다.
머구네 독가
머구가 많아 머구네라 했든 거 같다.
기억력이 딸리는 요즘은 즉시 산행기를 쓰지 않으면 많은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바보가 되어 간다는 소리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반드시 이 집을 거쳐야만 한다.
길을 막아선 문을 통과하기 위해 주인에게 양해를 구했고 흔쾌히
승낙을 받고 문을 열고 나온다.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한다.
그사이 대장님은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아직도 배가 부런 바보 2,3,4는 걷기에도 바쁘다.
넘어 지나온 산과 고불고불 임도가 선명하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에 바라본 주능선
영신봉 촛대봉 남부능선
아래로 신흥마을
판교마을로 가는 포장도로는 오름길로 길고 먼 길이다.
두 영감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멀리 앞서간다.
무슨 걸음이 저리도 빠를까.
뒤에서 품위 있게 걷는 본능과 나는 아직도 배가 불러 숨이 많이 차다.
내 다시는 산에서 과식하지 않으리라 명세를 한다.
<사진:귀소본능>
옛날 판자 다리가 있었기에 판교(板橋)가 된 곳이다.
개소리는 들리지만, 사람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사진:귀소본능>
판교마을에서 건너다본 저 능선이 어딘지 모르겠다.
마을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임도가 끝이 난다.
그곳은 트랙은 있으나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는 길이다.
수풀이 우거져 뚫을 방법이 없다.
이 길이 판교골이며 곧장 내려가면 신흥과 모암 사이 1023 지방도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앞서 내려간 대장님은 어떻게든 진행을 해 보려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판교골은 사실상 소멸한 길이다.
더는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를 가겠다 꿈도 꾸지 말일이다.(진짜 바보된다)
<사진:귀소본능>
길이 없어진 곳에서 돌아 올라온다.
대장님은 더이상 바보가 아니다
아주 올바르게, 바람직하게, 똑똑하게, 현명하게
택시를 콜 한다.
존경받아 마땅한 바람직한 처사에 바보들은
바보처럼 감동한다.
마을 입구에서 옷을 털고 기다리자 택시가 온다.
하동에서 국수를 또 먹는다.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구경만 한다.
대장과 본능은 배가 고파서 먹었고
에스테야 형님은 그냥 또 먹었다.
독오당 송년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앞으로도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공감과 다른 느낌들이 또한 계속 될 것이다.
최단거리
인생에 있어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만이 아니다.
멀리 돌아갈수록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직선이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 경로인 것은 맞지만
인생에 직선 코스란 별로 없다.
꼬불꼬불한 역경의 길을 갈 때 우리는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한다.
험하고 멀게 돌아가는 것이 나중에는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힘든 인생의 한때를 넘는 최단 코스일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리산을 오르며 여전히 인생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