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7.07.11 생이바위골

지리99 수야 2017. 7. 14. 15:30

생이바위골-벽소령

 

일시:2017년 7월 11일~12일

산행자:산들강부부,수야부부 (4명)

걸어간 길:음정-생이바위골-벽소령 대피소-작전도로-음정

2017-07-11 지리산 생이바위골.gpx

 

 

나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다.

갖추지 않아도 좋을 무모함도 넘친다.

그래서 종종 갑자기 저질러 버리는 일이 많다.

산에 가는 일 예외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불쑥 산으로 갈 때가 있었다.

따라가겠단다.

벽소령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는 나의 즉흥적 충동에

이 사람들이 불쑥 밀고 들어오며 같이 가자고 한다.

나야 좋은 일이다.

평일에 두 집이 가게 문을 닫는다.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거는 바보들이다.

 

 

음정 백두대간 표지석 아래 주차하고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양정교를 건너 마천 삼정교회 방향 도로를 따른다.

건너편 자연 휴양림 매표소를 피하기 위해서다.

매표소를 마주 보며 계곡을 사이에 두고 끝까지 올라간다

자연휴양림 맨 끝에 사람들이 나와 무슨 일인가를 하며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잠시 서서 눈치를 살피다 빠른 걸음으로 계곡 옆길로 들어간다.

오늘은 생이바위골을 오를 것이다.

오래전부터 남겨 둔 숙제다.

 

비가 내린 뒤 계곡 수량이 많아 소리도 웅장하다.

쏟아지는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한동안 빠르게 걷고 계곡과 만나는 지점에서

배낭을 내린다.

계곡 옆에서 선선한 시원함을 한껏 누린다.

여름의 지겨움이 떨어져 빠른 계곡물에 흘러간다.

달고 온 잡념이 많아 앉아 있는 시간도 길다.

나는 내 방식대로 즐기지만, 저 바보들은 무언지 모르겠다.

하루 가게를 벗어나 산바람이라도 쐬면 그저 좋단다.

안다, 답답했을 것이다.

짐작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연륜이다.

같이 살아온 세월이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니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을 왜 모르겠는가.

미안함보다 안쓰러움이 앞선다.

 

잃을 염려 없이 부자바위골 합수부까지 길은 선명하다.

수량이 풍부해진 골은 더없이 시원하고 청량하다.

더딘 걸음으로 계곡을 오를 것이다.

천천히 갈 것이고 많이 쉴 것이다.

빠르게만 가려 한 내 모든 것에 속도를 늦춘다.

발목이 아프고 난 이후 비로소 깨달은 것은

빨라서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더라.

좀 천천히 가면 어떻고 늦으면 어떤가

 

 

 

음달기미골로 표기된 지형도의 생이바위골은 나에게 미답이다.

2014년 가을 아내와 둘이 부자바위골을 올랐었다.

그때도 숙제로 남겨 두었던 계곡이다.

두 부부가 올라가는 계곡은 조용하다.

말로서 의사소통하는 단계를 넘어 섰거나,

소통되어야 할 의사가 이미 다 소통되어 버려

말이 필요 없는지 알 수 없다.

이유를 분석해보려 하지만 부질없는 답이다. 

숲의 본래 모습은 푸른 숲이거나 앙상함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시각각 계절에 따라 다른 그 모습 모두가 다 본래의 모습이다.

그것처럼 화내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는 모든 모습이 또한 본래의 모습이다.

우리 부부가, 저 부부가 말이 없는 것도 곧 본래의 모습이다. 

본래 부부는 그런 것이다.

아니라고?

우리는 그렇다.

그러니 토 달지 말라.

 

맨 위에서 혼자 떨어져 길을 찾다가 발아래서 꿈틀대는 이놈을 만난다.

이놈 말고도 두 번을 더 보게 된다.

뱀 소리에도 놀라는 사람이 있어 만일 이것을 보았다면 기절초풍을 했을 것이다.

조심하라는 말만 계속한다.

 

길이라 할 만한 곳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계곡을 벗어났다가

다시 계곡에 붙기를 반복한다.

 

계곡을 계속 오른다.

미끄러운 길이라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럽다.

무릎이 불편한 산들강 형님이 걱정이지만 다행히 이상 없다.

 

 

울창한 녹음이 하늘을 가리고 원시의 이끼가 태초의 모습처럼 펼쳐진 계곡이 이제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다.

쉬고, 오르고, 쉬고를 계속한다.

안 그래도 말이 없는 사람들인데 점점 더 말이 없어진다.

이 사람들이 말이 없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아무 말 대잔치를 해 댄다.

억지웃음이라도 유발해야 한다.

 

 

상부로 갈수록 물길은 약해지며

좁아지는 계곡을 오른다.

계곡 옆길이 제법 또렷해졌다가 사라진다.

 

 

원시미가 넘치는 이끼는 내린 비로 그 풋풋한 싱그러움이 한창이다.

 

물길이 끊어지기 직전 땀을 식히며 씻고 가기로 한다.

올라오는 길에 여자들은 한 번씩 심하게 계곡에서 뒹굴었다.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갔더니 얼얼하다.

 

하늘이 보일 듯 밝아 오는 위를 향해 힘을 낸다

작전도로 벽소령 대피소 안내판 2m 전으로 올라선다

갑자기 열린 하늘이 반갑다.

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이 이제 장난처럼 느껴진다.

 

 

 

 

물에 젖은 등산화를 벗었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지리산은 운무가 춤을 춘다.

이 순간이 정말 좋다.

아시는가 이 기분은 꼭 술이 없어도 취한다는 것을.

 

종주하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 온다.

일찍 자리를 잡고 물을 뜨려 내려가 거의 목욕에 가깝게 씻고 온다.

배가 고프니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맛있다.

카톡으로 중경팀을 약 올린다.

 

벽소령 달밤을 기대했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살짝 올라온 술기운으로 대피소 산책을 나선다.

꼭 말을 안 해도 부부는 이런 것이다.

부부는 본래 그렇다.

아니라고?

이 집하고 우리 집은 그렇다는데 왜?

 

 

삼정산 능선 넘어 해가 넘어간다.

그 마지막 모습도 구름에 가려진다.

화려한 일몰의 기대는 무너지지만, 실망은 없다.

여기는 지리산이니까.

 

오가는 사람도 없다.

시간에 구애 없는 산행이 이렇게 좋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이완이 가져다주는 이것이 휴식이다.

 

 

 

조용하게 어두움이 내린다.

산은 밤에 순응한다.

소박하게 꿈을 가지면 이루기가 쉽다.

나의 꿈들은 소박하여 멀지 않다.

오히려 가까워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이룰 참이다.

벽소령에서 하룻밤을 자 보겠다는 꿈을 나는 이룬다.

 

인생이라는 길은

원래 평탄한 길도 걷다 굴곡진 길도 걸어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오며 느낀 점이다.

그러니 힘들어하지도 말고

잠시 이참에 쉬었다 가자.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반드시 다시 웃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우리가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중-

 

 

잠이 쉽게 들었다.

새벽 두 시쯤이다.

밖에 나가 본 하늘에 잠시 달빛이 내린다

벽소명월의 밝음이 아니라도 마냥 좋다.

술 마시지 않아도 취하는 밤을 나는 놀아난다.

 

나는

삶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해 지고 싶었다.

그때마다 지리산으로 향해 왔었다.

화답하듯이 그때 지리산은 화사했었다.

내가 가팔랐던 것처럼 산도 가팔랐다.

육체의 한계에 다 달았을 때 그것이 주는 자유는

중독으로 옮아 왔었다.

 

밤이 그랬듯이 아침도 소리 없이 밀려왔다.

세상을 깨우는 빛은 침묵처럼 벌써 왔다.

자욱이 피어나는 안개가 흩어지며 산맥들이 드러나는 지리산의 아침은 아침다웠다.

 

 

안개 자욱한 가운데 일출은 일출답지 못하다.

덕평봉 넘어 붉은 기운이 잠시 감돈다.

아침을 끼니로 넘겨도 만족한다.

만족함이 넘치니 마음이 흡족함으로 가득하다.

내려갈 준비를 마친다.

작전도로를 따라 음정으로 내려갈 것이다.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은 우리가 선택한 최적의 하산길이다.

 

아직도 시간이 이르다.

아니 이것이 여유다.

숲속 파고드는 햇살조차 마시고 싶다.

 

작전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보겠다는 생각을 이룬다.

벽소령에서 자 보겠다는 희망을 이룬다.

생이바위골 숙제를 해결한다.

지리산에서 해 보고 싶은 것들과 가보고 싶은 곳이 아직 많다.

빠르게, 많이, 길게,욕심을 버리니 그것들이 한결 편하게 이루어진다.

동행한 모두가 지리산에서의 행복감에 만족하니 나의 만족은 더 만족한다.

주차한 곳에 도착하고 전화를 받는다.

함안의 모모님이다.

함안으로 오라 한다.

복날이라 음식점에 예약까지 했단다.

부담스러울 만큼 대접받았는데 선물까지 안겨준다.

이런 경우없는 경우를 대처하지 못하고 한 아름 빚을 진다.

 

2017-07-11 지리산 생이바위골.gpx
0.06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