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8 만복대
만복대
일시:2017년 5월 28일 일요일
산행자:행동팀(5명)+모모님,전수배님,비천무님,해품삼님 (총 9명)
걸어간 길:정령치-만복대샘
蓬生痲中 不扶直(봉생마중 불부직)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라 한다.
삼은 키가 크고 곧게 자라는 식물인데,
꾸불꾸불 자라는 쑥도 삼밭 속에서 자라게 되면
삼의 영향을 받아 곧게 자라게 된다.
옆으로 퍼져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부축해 주지 않아도 똑바로 자라게 된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연을 낳고,
좋은 인연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
일요일 새벽 롯지로 간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좋은 인연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옆으로 자주 삐져나가는 내 삐딱한 영혼을
곧은 삼밭 같은 지리산 선후배님들과 만남인 산정무한
그 끝 무렵에라도 잠시 머물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외로움은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로 채우거나 대체 할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절절한 사람이거나 그 대상이 아니면 결코 채울 수 없다.
그리운 사람들,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그리운 지리산.
그리운 친구가 달려 나와 주었고, 그리운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잡아주었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아직은 무리일 수밖에 없는 산행이지만
걱정과 염려의 충고를 뒤로 한 채 아주 짧게라도 지리산 속으로 걸어간다.
사전 계획에 없던 롯지에서의 합류 인원과 함께 9명이 발을 맞추게 된다.
지리 산꾼에게 어울리지 않는 왕복 4km의 짧은 거리를 걷는다.
이건 온전히 나를 위해 희생하며 동행해 준 마음이라는걸 잘 안다.
살아 갈수록 마음의 부채(負債)는 복리로 늘어만 간다.
마산의 전설적인 산꾼 전수배님과 비천무님 해품삼님이
전혀 그들의 스타일과 다른 행동팀과 만복대로 향한다.
언제 생겼는지 터널과 그 위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산짐승을 위한 통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200에 가까운 고도를 이미 차로 올라왔으니 만복대 길은 그야말로 산책길이다.
2km의 짧은 거리.
행동팀은 만복대를 지리산 이곳저곳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곳이다.
그 동경의 갈증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산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옥타브 올라간 흥분의 목소리로 "좋다!."를 연발하는 일행들이다.
미안함이 조금은 희석되는 듯 하여 고마울 따름이다.
천천히 걷는다고는 하지만 습관처럼 길든 산꾼의 걸음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천천히 가자고 해도 맨 뒤에서 따라잡기에는 숨이 차다.
성큼성큼 걷다 돌아서며 기다리는 전수배님을 결국 맨 뒤로 보낸다.
아무리 짧아도 산행은 산행이니 미리 쉬고, 미리 먹어야 한다.
과묵하기만 한 줄 알았던 전수배님의 농담이 모두를 파안대소케 한다.
산길의 휴식은 짧아서 달다.
벌써 올라선 능선에서 바라다보이는 만복대가 우릴 향해 복을 뿌려댄다.
땀이 식는 시원한 바람이 꼭 그러한 것 같다.
걸을 수 있으니 복이요, 바라볼 수 있으니 복이다.
작은 들풀 하나에도 엎드려 인사하는 모모님은 꽃과 식물에 그 이름들을 막힘없이 불러준다.
감탄하며 자세히 바라보는 여유가 그에게도 복 받은 날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함께 가자고 불러들인 내가 또한 복 받는 일이 되기에...
금강애기나리 (사진:모모님)
서북 능선이 굽이쳐 내려간 인월 방향으로 고리봉 세걸산 바래봉이 신록에 눈부시다.
전망 좋은 조망터에서 한 사람씩 사진을 찍는다.
비천무님.
함안의 모모님.
가운데 전수배님.
바람을 받으며 걷는 산길에는 아직 연한 철쭉이 바쁘지 않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또한 깊어진다는 것이다.
만복대는 풍수지리적으로 지리산의 많은 복을 입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검색된다.
만복대에 올라섰다.
만복대의 뜻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느낄 만하다.
이곳에서 서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곧 만복(萬福)이 아닐는지.
앞뒤 좌우 구분 없던 비바람 속에 올랐던 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 올라던 날.
지리99 청소 산행에 올랐던 날.
그 어떤 날보다 청명하고 맑은 오늘 만복대에 나는 다시 섰다.
오랜 시간 지리산에 오지 못하고 올라온 오늘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감회가 새롭다.
복 받은 날이다.
날고 싶은 비천무님
날려 갈 것 같은 여인
저쪽으로 노고단과 종석대까지 가고 싶다.
처음에는 저곳 까지 갈려고 했었다.
때에 따라서는 소멸시켜야 하는 희망도 있다.
그래서 희망이 다시 생길 수 있다면 그래야 옳은 판단이다.
오늘 우리는 바른 판단을 했다.
만복대 샘으로 내려갔다.
나의 친구가 정성으로 보내준 음식을 펼친다.
내가 좋아한다고 술 한 병을 차에다 넣어 준 친구.
바쁜 와중에도 간간이 소식을 묻고 걱정해주는 친구.
병실로 보내 준 화분의 난이 두 번 째 꽃을 피우려고 한다.
지리산이 맺어준 내 친구.
규다는 그런 내 친구다.
내게는 큰 복이다.
푸짐하고 안락하게 점심을 느긋하게 먹었다.
샘을 깨끗이 청소했다.
먹고 난 뒤 오름길은 숨이 차다.
다시 만복대로 올라가는 짧은 길 가쁜 숨을 쉰다.
지리산에서는 누구나 쉽게 잘 어울린다.
데면데면 얼굴만 익혔던 사람이라도 같이 산행을 하고 나면 급속히 가까워진다.
여기서 앉아 그냥 마냥 이렇게 바라만 보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술잔을 채워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온다 한들 반가운 것이
이보다 더 하랴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지만
나는 마냥 좋아하노라.
<윤선도 '만흥' 중 제3수>
그랬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시 산으로 갈 수 있을 만큼만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보다 월등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천천히 걸어도 평범하게 걸을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평범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몰랐다.
단 한 번도 내 평범함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소중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살아 있는 평범한 날이 이미 복 받은 날이다.
사람은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단지 속도가 변하는 것을 느낄 뿐이라 한다.
비행기 안에서는 그 속도를 느끼지는 못한다.
이륙할 때 몸이 밀리면서 변화를 알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가 잃어버리거나 빼앗겼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속도와 마찬가지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 가진 것을 잘 살펴볼 일이다.
진짜 소중한 것은 잘 느끼지 못한다.
소중한 것을 잃었다 생각하는 사람
마음의 상처가 가시지 않는 사람
삶의 무게에 힘이 겨운 사람
지리산으로 가 볼 일이다.
만복대에 올라 가 볼 일이다.
눈물 나는 이곳에 올라 볼 일이다.
눈물.
나는 요즘 들어 부쩍 울컥할 때가 많다.
책을 보다가 책장을 넘길 수 없을 때가 있고, 영화를 보다가도 눈가를 훔치고,
심지어는 TV를 보다가도 베란다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잦다.
술 한 잔 마시는 자리에서 요즘에 그렇다고 형들에게 말을 했다.
그럴 때도 됐단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단다.
자기들도 다 그렇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 그런 거다. 나이가....
나는 술 취한 날 혼자 중얼거린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편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