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1 도장골
도장골.
일시: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산행자:최규다(들풀님)부부, 모모님, 수야. (4명)
걸어간 길:거림산장 주차장-길상암-도장골-반석바위-와룡폭포-기도터-일출봉능선-거림.
산행시간:07시 03분~16시 07분 (9시간 04분. 휴식및 점심포함)
공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공자께서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達方來 不亦樂乎(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를 따라 익히는 것이 즐겁지 아니한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이것 또한 반갑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으면 얼마나 군자다운가.
有朋自達方來 不亦樂乎(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
멀리 있는 친구가 찾아주었다.
지리산이 맺어 준 인연이다.
지리구구를 통해 알 게 되어 마음이 통(通)했다.
이 친구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벗어남이 없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친구다.
이런저런 삶의 고비를 겪었을 과묵함이 적당하고,
삶의 깊이가 잘 숙성되어 내뱉는 말에서 사람의 정이 느껴지게 한다.
술을 하지 못함에도 상대의 잔을 채워주는 마음이 풍족하고,
같이 호흡을 맞추고, 어울리려 잔을 입에 댈 줄 아는
동갑내기 친구다운 친구다.
뜻이 통하고, 결이 통한다.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으니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혜안[
이런 친구가 멀리서 찾아 주니 어찌 반갑지 아니하겠는가.
또한, 지리산행에 수시로, 시시때때로
한 번쯤 불러 주길 원하던 모모님께 연락을 했더니
그녀의 성격에 맞는 담백하고 화통한 "콜!"이라는 답으로 동행을
하게 되니 이 또한 반가움이다.
산행코스를 정하라 하기에
도장골과 비린내 골을 저울질하며 친구에게 물었더니 도장골을 가보지 못했다 한다.
도장골의 단풍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무슨 문제이랴.
친구를 만나고 함께 지리산을 오를 수 있다는 확실성이 단풍보다 고운 기쁨이다.
함안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모모님을 만나 거림으로 달린다.
거림산장 주차장에서 반가움으로 친구와 포옹한다.
有朋自達方來 不亦樂乎(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
아침 공기는 쌀쌀함이 묻었다.
길상암으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옆눈으로 눈치를 살피며 오르는 길
길상암 마당끝 등산로 초입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몰입한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발소리를 죽이며 걸음을 옮겨 놓는다.
길상암을 지나자마자 출입통제의 금줄을 넘고
마음이 먼저 달아나는 걸음으로 내딛는 발길이 바쁘다.
감시 카메라를 통과한다.
도장골 초입에는 아직 완연히 내리지 못한 가을이 푸름을 다 떨쳐내지 못했고
쌀쌀함마저 느껴지는 날씨에 서서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쉬지 않고 내빼듯 숨차게 올라 널찍한 반석에 도착한다.
쌀쌀함이 물러나고 땀이 송글해진다.
모모님과의 산행은 처음이다.
지레짐작으로 걸음이 느릴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빗나갔다.
그녀의 걸음은 가볍고 사뿐했으며, 온갖 자연에 탄복하는 감탄사는 경쾌하다.
친구가 건네준 가시오가피 주를 병나발로 한 모금 한다.
향긋한 술은 목구멍 속에서 눈보라가 날리는 맛을 냈다.
뒤따라 올라온 몇 분의 등산객과 어정쩡한 인사를 나눈다.
도장골이 처음인 듯한 사람들은 시루봉에서 촛대봉으로 간다고 한다
길을 물었고, 정성 들여 가르쳐 주었다.
한 분이 지나쳐온 이영회 아지터가 어디인지 묻는 것으로 보아
정성 들여 가르쳐 준 길이 무의미해 보였다.
홀가분하게 겉옷을 배낭에 넣고 다시 출발한다.
계곡을 첫 번째로 건너간다.
유독 붉은 단풍나무 아래에 서서 한동안 바라본다.
하늘색과 잘 어울리는 빨간 단풍잎이 눈부시다.
지리산에서 쌓여가는 친구와의 돈독함 또한 눈부신 흡족함으로 물들었다.
숲 해설가답게 물어보는 온갖 것에 막힘없이 답을 해 주는 모모님은 시종 즐겁고 유쾌한
웃음과 말로 분위기를 한층 끌어 준다.
언제나 시원시원한 걸림 없는 성격은 부담 없이 사람과 어울리게 한다.
들풀님과 단번에 친숙해져 주고받는 말이 정겨워보였다.
계곡을 건너 좌측 산 사면을 따르든 길이 다시 계곡으로 내린다.
용소를 지나쳐 왔다.
위쪽에서 굵게 부딪치는 와룡폭포의 소리가 가까워진다.
앞서 걷다 뒤돌아보면 부민 엄마 들풀님과 친구는 서로를 챙겨주며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매우 온당한 처사가 지극히 다정스러워 보인다.
친구의 부드러운 성격과 온화함이 보기에 좋다.
내가 가지지 못한 다정함을 친구는 깊이 지닌듯하다.
계곡의 위쪽은 새벽 안개처럼 몽롱하고 정처 없이 아득해 보인다.
그러나 아득히 멀고 알 수 없는 위험함이 도사린 저곳이라 해도
다 차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행인의 든든한 믿음이 내 친구인 탓이리라.
계곡을 세 번 왔다 갔다 건너 와룡폭포 앞에 선다.
단풍은 곱게 물들었고, 폭포는 굵은 소리로 묵직하다.
올라온 폭포 상단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고 있는 세 분의 등산객과 인사를 한다.
햇볕이 적당하여 따스하다.
배낭을 내리고 일행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폭포 저 아래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주던 규다의 행동의 좀 이상하다.
수건으로 얼굴을 누르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카메라가 물에 담기려 하자 낚아채 당긴 것이 그만 얼굴에 맞았단다.
얼굴에 두 군데의 상처가 났고, 우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깊이로 보였다.
간식을 먹고 있는 주위 분에게 밴드를 얻어 붙였다.
큰 상처가 아니고 산행에는 지장이 없으니 천만다행 한 일이다.
워낙 잘생긴 얼굴이라 밴드로 덧칠을 해도
흉하지가 않았다.
생선회로 복분자주와 가시오가피주를 나누어 마신다.
도장골을 내려다보며 폭포 위에서 마시는 한잔은 신선의 그것과 다름아니다.
주위의 분들이 떠나고, 처음에 만났던 사람들이 올라온다.
시루봉 방향을 제 차 정성스레 가르쳐준다.
와룡폭포가 어디냐고 묻는다.
이런 경우 아닌 경우를 보았는가.
와룡폭포에 서서 와룡폭포를 묻는 와룡폭포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이 사람들의
갈 길이 심히 염려스럽고, 정성스레 일러 주는 길이 허망했지만
부디 잘 찾아가시길 바랐다.
긴 휴식을 하며 이런저런 대화들이 흩어져 폭포 아래로 흘렀다.
들풀님의 단아한 웃음이 맑아서 빛났고
와룡폭포위 양지의 따뜻한 바위는 사람 이야기로 깊어 가을과 같이 물들었다.
물에 반사된 단풍 빛이 서로의 얼굴에 웃음으로 와글거렸다. <사진:모모님>
도장골을 건너 일출봉 능선으로 옮겨 갈 것이다.
와룡폭포에서 조금 내려와 일출봉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다 한 번 되돌아 나온다.
질러가려는 마음으로 밀고 나간 길은 막혀 있었다.
길이 아닐 때, 걸어온 길이 아까워서 계속 멈추지 못하고 가면 어긋난 길을 계속 가게 된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추어야 한다.
되돌아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일 때도 있다.
잡목이 가로막힌 길을 되돌아 나와 계곡에서부터 다시
일출봉 능선으로 향하는 들머리를 찾아든다.
오룩스맵만 깔렸고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모모님과 규다에게
현장에서의 사용법은 가장 효율적인 실습이고 공부가 되었다.
단 한 번에 사용법을 배웠고
계곡을 건너거나, 희미한 산길을 더듬을 때, 나의 위치와 가야 할 방향과 길을
안내해 주는 오룩스맵을 알려 주었다.
재미있어했고, 즐거이 익혔다.
길을 몰라 지리산을 헤맬 일과, 길을 몰라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을 것이다.
"배우고 때를 따라 익히는 것이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와룡폭포 아래 계곡에서 30여m 가량 떨어진 기도처를 거쳐 간다.
기도처의 벽에 붙어 기를 받는 모모님을 따라
친구가 기(氣)를 받는다.
친구를 따라 나도 영험한 기운을 받아 보려고 바위에 껌딱지처럼 붙어 기를 받았다.
기도처에는 여러 모양의 작은 바위들이 놓여있다.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지리산에 들 때마다 안전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계곡에서 능선까지 고도를 250여m 올린다.
길은 선명하였다 흐리기를 반복하고 비탈의 경사와 돌무더기 길을 더듬어 오른다.
혼란스러운 길에는 독오당 표지기를 연달아 매달아 둔다.
능선에 붙어 바라보는 불타는듯 타오르는 단풍이 힘든 오름길을 한 번에 보상해 준다.
능선길에서 일출봉으로 향한다.
일출봉에서 주능선을 염탐하려는 마음을 접는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온다.
바람은 겨울을 담아서 불어온다.
손이 시린 차가움이 엄습한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이 능선에 닿았다.
일출봉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뒤
포근한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규다네가 가져온 암뽕 순댓국이 팔팔 끓는다.
마지막 남은 술을 홀짝인다.
점심은 따뜻하고 아늑하게 적당히 배가 불러온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눈이 내릴 것 같은 흐림이 하산의 발길을 재촉한다.
깔린 낙엽은 소멸한 시간을 덮고 환생의 밑거름이 되어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일출봉 넘어 연하봉과 주능선이 살짝 보인다.
주능선을 넘어 먹구름이 몰려들고 날씨가 시시각각 변해간다.
하산길 몸을 움츠리는 차가움이 한동안 계속된다.
모모님과 들풀님은 시간이 갈수록 친밀함이 깊어 간다.
청래골과 곡점능선 넘어 내가 아는 모든 산줄기를 이야기한다.
마가목을 따 주었고
석이버섯을 따서 담아준다.
내 배낭에는 그만큼 그들의 정이 두둑해진다.
일출봉 능선의 산죽은 질기고 모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산죽 터널은 패악질 부리는 여편네의 앙칼짐처럼 날카롭게 쏟아져 내린다.
다 지나왔는가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산죽 터널은
하나의 난관을 지나면 나타나는 삶의 무게처럼 이어진다.
오룩스맵 지리산길에 붉은 실선은
확인되지 않은 산길이라는 말에 친구가 가보자 한다.
초반 길은 길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사람이 다닐만한 길로는 의미가 없었다.
험한 길을 벗어나 임도에 안착하고 마을로 내려선다.
거림산장에 주차한 차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내려 서려 하는 찰라
아랫집에서 문을 열어놓고 샤워에 열중하는 사람이 보인다.
친구와 나는 할배라 했고, 들풀님과 모모님은 할배 보다 젊은 아저씨라 한다.
할배든 아저씨든 그로 인해 우리는 또다시 돌아가야 할 판이다.
샤워가 끝나길 기다리기에는 무료했다.
샤워하는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반창고의 얼굴을 들고 하산 사진을 찍는다.
샤워하는 사람을 배려해 그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꺼이 멀리 길을 돌아갈 줄 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짢아하지 않으면 얼마나 군자다운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거림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술 고픔을 미리 알고 맥주부터 주문하는 규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간단하게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자리를 정리한다.
아침에 헤네시 양주 한 병을 트렁크에 밀어 넣어준 친구는
더 큰 안동소주를 또 넣어주며 금농선생님과 한잔하라 한다.
다음을 기약하며 친구는 먼 길에 올랐고
지리산 촛대봉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에는 네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1.화우(花友)
꽃이 피어 예쁠 때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나
꽃이 지면 돌아보는 이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는 꽃과 같은 친구.
2.칭우(秤友).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기울 듯
이익이 있나 없나를 따져보며
움직이는 저울 같은 친구.
3.산우(山友).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거나
가깝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긴다.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산과 같은 친구.
4.지우(地友).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조건 없이 베푼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는 땅과 같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