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09.06 도솔암

지리99 수야 2015. 9. 13. 02:14

도솔암.

 

독오당 70차 정기산행.

일시:2015년 9월 6일 (일요일 비.)

산행자: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3명)

걸어간 길:음정마을-작전도로- 도솔암-영원사(페타이어)-영원사옛길-음정마을.

산행시간:08시 02분~14시 42분.(6시간 40분, 휴식및 긴 점심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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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6 지리산 도솔암.gtm

 

 

갈까 말까.

 

산행 당일 새벽에 비가 내린다.

배낭을 메고 나서는 걸음이 멈칫거린다.

전화해서 산행을 취소할까 잠시 생각을 했다.

일단은 약속장소까지는 가 보기로 한다.

비가 계속 오는데 어떻게 할지 서로 묻는다.

그래도 나선 걸음인데 2안으로 가자고 한다.

함양군 마천면 음정으로 가는 중에 비가 수그러들더니 하늘이 깨어난다.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

비 때문에 포기했다면 후회할 뻔했다고 내가 말했다.

망설여질 정도의 비가 내린다면 산행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그래도 가는 게, 하는 게 나은 선택이다.

 

마을에서 산 쪽으로 도로를 따라 몇 발자국 걸어가자 

좌측의 리본들이 마치 호객꾼의 호객행위처럼 손짓을해 댄다.

이 산길은 금방 끝나고 벽소령 밑으로 이어지는 작전도로를 만날 것이다.

비를 머금은 숲에 들자 바지가 금방 젖어 온다.

예전 독오당 산행 때 조금 아래에서 오르던 길은 작전도로를 만나기까지

이보다 좀 험했다.

반질반질하게 잘 뚫린 길 덕분에

비록 바지는 다 젖어도 작전도로 차단기 앞에 쉽게 선다.

 

작전도로를 따라 이젠 유유자적 느긋하게 스틱을 끌며 걷는다.

이 길을 따라 벽소령까지 걸어도 좋겠다고 했다.

멈추었던 비는 가늘게 다시 내리다, 멈추었다, 한다.

남자들의 걸쭉한 농도 짙은 잡담에 길이

금방 뒤로 밀려 나간다.

 

비움의 자리.

 

작전도로의 구조목13-05를 지나고 커버 길을 돌아서자 도솔암 들머리가 나타난다.

정확하게 길이 있음을 알리는 그곳으로 올라선다.

제법 비탈이진 오름이 계속되는 길에 땀과 빗물이 섞인다.

고도 830의 작전도로에서 시작된 비탈은 1,078봉의 능선까지 고도를 올린다.

선두에서 걷던 내가 적당한 자리를 보고는 뒤를 보며 먼저 올라가길 요구했다.

나와 같은 신체적 반응이 온 귀소본능이 자리를 보고 탐을 냈다.

그러나 나는 내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발동했다.

나의 그것이 극박함을 알려 왔기 때문이다.

에스테야 형님은 둘이 마주 보고 앉았다 오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찜한 그자리에서 혼자 근심을 내려놓았다.

귀소본능은 자신만의 명상을 찾아 올라가 엉덩이를 까고 비움을 실행했다.

 

1,078봉 지능선을 타고 걷다가 너들길을 지나면서 도솔암에 가까워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가라앉은 숲 속에는 수컷들의 가쁜 숨소리만 희미했다.

도솔암은 처음이라는 에스테야 형님이 앞장을 섰다.

그만큼 길은 단조롭고 또렷했다.

 

도솔암으로 올라서는 돌계단은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길을 열어주었다.

오라는 사람도, 오지 말라는 사람도 없는 공평하기 이를 데 없는 지리산 속 암자다.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잡지 않는, 그곳에 나는 또 인연의 발을 들여놓는다.

 

 

혼탁한 나에게 맑게 살라 한다.

 

 

귀소본능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젤리와 약간의 음식을 들고

부처님과 친분을 쌓으러 법당으로 들었다.

보살님이 친절히 안내하였다.

멀리서 또 한 무리의 방문객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스테야 형님은 산만했다.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연신 카메라를 눌렀다.

그리고 "이런 날 사진은 건질게 몇 개 없다." 했다.

 

보이지 않는 산.

 

분명하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실체.

살아도 살아도 보이지 않는 뚜렷한 인생과 흡사했다.

가늠으로는 짐작만 될 뿐 살아보지 못했으니 확연하지 않은 삶과 같이

저곳에 천왕봉이, 지리 주능선이 놓여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삶이 아니던가.

인생은 위험하다.

사랑처럼 위험하다.

그래도 사랑을 한다.

지리산은 그렇게 위험하지만 놓을 수 없는 존재로 오늘도 내 곁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 '나는 이런 사람이 좋다.' (헨리 아우웬) -

 

물러났다.

한동안 서로 분주히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고, 멈추고 하던 우리는 도솔암을 물러났다.

그리고 또다시 길 위에 섰다.

하산 시간은 여유로운 나머지 덕지덕지 군더더기 같이 늘임이 함께 붙었다.

 

다시 비가 내렸다.

길가에서 조금 벗어난 공터에 타프를 쳤다.

공사를 끝내고 타프 아래에 앉았을 때

도솔암으로 오던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몇 명씩 무리로 내려가는 사람의 행렬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우리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사람은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스쳐 갔다.

여유로웠다.

내일은 내려놓았다.

오로지 지리산 속에 있음을 만끽했다.

 

 

햇볕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비가 내렸다.

날씨는 미친년 오줌 싸듯이 변덕스러웠다.

이런 경우 없는 경우를 보았는가.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술을 불러들였다.

 

술.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는 일들이 참 많더라.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이유는 내 모르겠다만

공부도, 돈 버는 일도 늘 노력의 대가가 만큼

눈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더라

그런데 딱 두 가지는 하면 할수록 늘고 바로바로 잘 보이더라

첫 번째는 그것이고, (알아서 해석)

두 번째는 마시는 만큼 늘어나는게 술이더라.

소주 반병이 치사량인 줄 알았는데 점점 늘어나더니 이제는 먹은듯한 것이 서너 병이다.

큰 병을 배낭에 넣으면서 결국 이것은 내가 다 먹을 것을 예상했는데 그리되더라.

술 끊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며, 아침마다 오늘은 쉬자고 하지만 저녁에는 술잔을 잡고 있더라.

그러나 그리 강력하게 끊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지 않음은

사람 관계와 삶에 술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고 높더라.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 서러움을 어찌 알며

쓰러지도록 술을 마셔보지 않고 어찌 인생의 쓴맛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에스테야 형님을 여전히 디스 해 가며 잔을 돌렸다.

셋이지만 흠뻑 젖어 가는 놈은 나뿐이더라.

뫼비우스의 띠 마냥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기 시작 하자.

슬그머니 귀소본능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 하더라.

이제 집에 가자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 주더라.

내가 한마디 했다.

"오 데 써.!"

 

내려가는 길은 편안했다.

간간이 햇살이 비추다가 또다시 미친년 널 뛰듯이 비는 내렸다 멈추기를 계 했다.

 

염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돌을 올려놓았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많은 날을 지리산에 들 수 있게 해 주십사 하는 원을 포개었다.

나의 사랑을 지켜 달라 또 하나를 올렸다.

 

물이 우렁차게 토해져 내렸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합수부를 지나갔다.

갈림으로 나뉘는 계곡에 서서 헤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각자의 방향대로 물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계곡은 흐를 때 비로소 살아 있게 된다.

사람은 생각을 끝내고 실행하고 행동할 때 살아 있음을 더 느낀다.

 

영원사 입구, 도솔암 들 날머리로 나온다.

폐타이어 뒤로 숨겨진 길은 누구든지 반길 자세로 열려 있었다.

 

영원사 입구에서 에스테야 형님은 영원사를 보고 오겠다고 혼자 올라갔다.

본능과 둘이서 공터에서 놀았다.

에스테야 형님이 내려오고 바로

삐까번쩍한 외제 차 한 대가 오더니 주차를 했다.

어디서 내려왔느냐고 묻길래 도솔암을 다녀 왔다고 했다.

경계를 푼 그분은 도솔암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한 달에 서너 번 도솔암을 오른다고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갈 길을 걸으며 우리는 각자 몇 마디씩 소설을 썼다.

영원사 옛길로 방향을 정했다.

영원사 바위 비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너들을 횡단했다.

이제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광욕하러 잠시 나왔던 한 마리가 에스테야 형님에게 발각되어 줄행랑을 쳤다.

 

 

이 버섯을 나는 모른다.

 

지리산이 등 뒤에서 가을을 풀어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

 

어린노무 시키가 겁도 없이 딴에는 저도 개라고 제법 까탈스럽게 소리를 낸다.

"그래, 이래 봬도 나 절에 갔다 온 사람이야."

온화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더니

검은 놈은 금방 치명적인 나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꼬리를 흔들며

귀여운 애교를 부린다.

한마디 해 주었다.

"캐 에 새 에 끼~~"

 

 

양정교를 건너면서 비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의 속도도 빨라졌다.

잠시 비를 피했다가 가자는 귀소본능의 말을 우리는 디스했다.

 

멋진 놈.

 

버스정류소에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동안 귀소본능이 뛴다.

차를 가지러 가는 중이다.

형님들 비 맞지 말라고 혼자서 비속을 뛰어가는 아름다운 놈이다.

한마디 해주었다.

"멋 찐 노 무 시 키~~"

 

이상한 님.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듯,

형님은 말없이 그렇게 깊이 무언가를 생각하시었다.

이 깊이 있는 사색이 끝나고

한 말씀을 하시었다.

묵직한 저음의 울림으로

.

.

.

.

"감자탕에 소주 묵자."

.

.

내가 대답 했다.

"졸라 댓기리!"

 

산행기.

 

내가 쓴 지난 산행기를 읽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맞춤법부터 띄어쓰기까지 틀린 글자도 너무 많다.

내용도 무슨 말인지 당최 나 자신도 모르겠다.

어떤 때에는 너무 부끄러워 삭제를 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산행기는 꿋꿋하게 틀린 글자도 그대로,

띄어쓰기가 맞지 않은 것도 그대로, 참으로 한심하고 불편하지만

말도 안 되는 문장도 그대로 지금까지 조회 수를 올리며 존재한다.

조회 수 만큼 부끄러움은 더욱 많아지고 깊다.

하지만 나는 수정을 하거나 삭제를 할 생각을 이제는 멈추기로 했다.

지나온 모든 과정이

그대로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 긍정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발전되어 가는 전 과정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보다 지금의 산행기가 월등하거나 탁월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남들에게 보이기에는 부끄럽고 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리99를 통해 지리산의 수많은 정보를 접했고

그것을 통해 지리산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각양각색의 산행기를 통해 느끼는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읽었고

산행을 같이하는 듯 지리산에 몰입했다.

때로는 산행기의 당사자를 만나고 싶기도 했다.

인연이 닿아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함께 지리산을 걷기도 하고 술잔을 나누기도 하며 단 하나의 주제 <지리산>만으로도

밤을 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 닿기도 했다.

감사 할 따름이다.

지리99는 어느덧 그렇게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곁에 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글자가 틀리고 맞고의 단순함보다는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다른 지리산을

산행기로 공유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리산의 모습조차도 변해왔고 변해 갈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의 그 과정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더 존중되어야 하듯이 말이다.

지금 지리99는 변화의 과정이 아닌가.

 

산행기 말미에 주절대는 글이 길어진 이유는

최근 지리99의 어수선 분위기에 대한 소회를 미흡한

생각이지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산행 1산행기의 원칙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포털사이트와 차별성으로 결정한 운영진의 고뇌에 찬 지리99의 독립선언이 있었다.

진정한 지리 99의 독립은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독립선언 이전보다 더 많은 산행기가

산행기 방을 가득 채우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점점 줄이는 노력이 계속되리라 본다.

언제나 한번, 처음이 힘든 법이다.

아직도 산행기를 올리는 것에 대해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제 그 망설임은 멈추고 행동하시라. 부탁하고 싶다.

지리산을 다녀온 나는 이랬는데, 당신의 느낌은 어떠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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