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08.09 작은세개골

지리99 수야 2015. 8. 14. 17:07

작은새개골.

 

일시:2015년 8월 9일 (일요일).

산행자:수야.

걸어간 길:의신-원통굴-대성주막-대승사터-원대성-작은세개골(고도900m) -

              삼단폭포-작은세개골다리-대성주막-의신.

산행시간:09시 05분~16시 08분 (7시간 03분) 11.7km


2015-08-09 작은새개골.gpx

2015-08-09 작은새개골.gtm

 

 

대성골.

영신봉 아래 영신대에서 시작되는 큰세개골이 대성골로 흘러내린다. 

칠선남능과 덕평봉 사이 선비샘골과 작은세개골이 다시 대성골에 합류하고,

남부 능선의 수곡골과 새앙골(샘골)이 여기에 또 더해진다.

대성골은 삼정의 빗점골에서 흐른 물과 합류하여 화개천을 이룬다.

지난 시대 비극을 간직한 대성골.

1952년 1월 토벌대의 2차 대공세 때 백야전사령부의 토벌 공세를 피해 빨치산 부대는

야간을 이용하여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에서 대성골로 집결한다.

지리산 계곡 중 가장 깊은 협곡인 데다가 지세가 험난해 도피하기엔 적합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토벌대는 정보를 입수하고 모든 도로를 차단한 후

오직 대성골로 가는 길만 터놓는다.

일명 토끼몰이로 대성골에 빨치산을 몰아넣은 수도사단은 무려 10일 동안 엄청난 대공세를 가한다.

대성골 사십 리로 몰린 2천여 명의 빨치산들이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한다.

수도사단의 3개 연대 병력이 포위하고, 미군 공군기 5개 편대가 소이탄으로 불바다를 만들었다.

대성골은 5일 밤낮을 불길에 휩싸였다.

지리산 자락에 살던 사람들은 그때의 불을 하늘에서 떨어진 천불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일명 대성골 천불사건이다.

대성골 하면 이태의 남부군에서 읽었던 이 대공세의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새벽 일찍 출발할 마음으로 배낭을 패킹하고 잠시 누웠다.

깜빡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6시가 지나고 있다.

혼자서 가는 길이고 딱히 꼭 정상을 밟아야 하는 이유도 없다.

바쁠 것도 없고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날이 훤하게 밝은 아침 지리산을 향한다.

의신에는 이미 들어와 있는 피서객의 차와 막 들어 오고 있는 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역사관 주차장 한 곳이 때마침 비어 있어 주차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홀로 산행의 좋은 점은 코스도 내 마음대로 정 할 수 있지만,

변경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계획은 큰세개골을 오르다가 남부능선의 창불대로 붙어 수곡골로 하산하는 계획이었다.

시간상 이미 불가능해진 계획이다.

원점회귀 할 수 있는 코스를 생각 할수록 채우지 못할 욕심만 많아진다.

하나의 계획만 확실히 세운다.

"그곳이 어디든 무조건 12시 까지만 올라가고

욕심 내지 말고 내려오자."

가다 돌아서던, 왔든 길로 돌아 오던,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홀로 산행이다.

대성골로 간다.

 

대형 버스에서 내리는 단체 등산객들과 피서객들의 북적임에 시끌시끌한 의신 마을을 벗어난다.

벽소령산장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들어가는 착한 길이라

당당하게 걸어간다.

나보다 앞서서 두 사람이 걸어간다.

의신에 그 많은 사람에 비해 대성골로 가는 사람은 두 사람 이외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의신마을 주민들이 항일의병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는 비문의 내용을 읽는다.

항토 사학자의 노력 끝에 밝혀지고 찾아진 역사의 현장이라 한다.

 

30인에서 17인으로 바뀌었는데...

 

한여름의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이마를 싸맨 수건을 짜서 다시 맨다.

이 땡볕에 귀가 따갑도록 매미 소리가 쩌렁거린다.

무더위 속 밤낮으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이제는 짜증스럽다.

앞서 걷든 두 사람은 우측길로 멀어져 갔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나온다

원통굴로 가는 길이다.

당연히 들어간다.

 

 

 

원통굴.

금줄을 넘어 고개에 올라서자 사면으로 반질반질한 길이 이어진다.

한여름 느긋하게 그늘에 늘어져 있던 백구가 뛰어나오며 짖어댄다.

외면하고 몇 걸음을 옮기니 이놈도 귀찮은지 밥값 정도만 소리를 내다 조용해진다.

딱히 둘러볼 것도 없는 건물을 뒤로하고 다시 등로와 만나 대성주막을 향한다.

등산로가 아래로 보이는 사면 길 옆으로 비탈진 경사면에는 고사리가 우거져있었다.

 

대성주막으로 가는 길.

저곳 언덕에 올라서면 바로 대성주막이 보일 것이다.

한 번이라도 걸었거나 와 본 곳의 기억은 그곳에 서면 잊혔다가도 생각이 난다.

예전 남부능선에서 내려와 본 기억과

독오당 초창기 무렵 세앙골(샘골 우골)을 걸었던 기억이 뚜렷 해 진다.

지나간 시간은 엊그제 같은데 세어보면 훌쩍 몇 년을 거슬러간다.

 

대성주막에는 여러 가족이 피서를 나와 왁자지껄하다.

평상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지나간다.

의신을 기점으로 하는 여러 골은 항상 홀로 산행에서 제일 먼저 생각하는 곳이다.

이병주의 지리산과 이태의 남부군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탓이다.

딴에는 빗점골의 왼골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찾아들고 있다.

세앙골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아직은 미답인 골을 찾는다.

큰세개골은 독오당과의 산행에 예정되어 있으니 작은세개골이

적당할 것 같다.

작은세개골을 12시 까지만 올라가자.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다시 하산하자.

 

다른 두 나무가 서로 맞대어 삶을 이어간다.

연리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사랑이고 표현을 하지만 나무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 존재하지만

사람은 보이는 것만으로 자신이 믿고자 하는 만큼만 그렇게 믿어버리고 이해하려 한다.

살면서 수 없이 느끼는 경우지만

보이는 것만이 세상 전부는 분명 아니다.

 

 

 

대성주막을 지나 약간의 오름길을 오르며 거대한 석벽을 좌측에 두고

마치 천왕봉의 개천문처럼, 남부능선의 석문처럼, 그렇게 비슷한 석벽의 좁은 통로를 지나간다.

나무로 만든 방지턱의 전망대에서 배낭을 내리고 오이와 간식을 먹는다.

저 아래 대성골에는 아침에 앞서간 두 사람이 쉬고 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머리띠 수건을 다시 짜서 매고 배낭을 멘다.

원대성 마을 들머리다.

돌 축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길이 거의 90도로 꺾이는 지점에 들머리가 확연하다.

지형도를 살피며 대승사터라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흔적은 널브러져 우거진 잡풀 속에서 세월에 묻혀간다.

세월은 많은 흔적을 지우고 덮어버린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마저도 지나가면 옛일이 되고

영원할 것 같은 부귀영화도 시간이 되면 소멸한다.

아등바등 덧없는 집착들을

쇠락한 절터에서 조금은 버리려 한다.

비움과 내려놓음.

인생이 한때의 꿈 같다 하더라.

남가일몽(夢).

부질없는 생각들은 혼자일 때 더욱 오랫동안 따라붙는다.

 

또렷한 산길을 따른다.

잘 정리된 밭고랑엔 뜨거운 여름이 작렬한다.

매미 소리는 발악의 수준으로 톤을 높이고

흐르는 땀은 닦아서는 감당을 못할 지경이다.

우측으로 열린 길을 따라 또 오른다.

 

원대성 마을이 나타난다.

좌.우측으로 두 가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시선이 괜히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여 빠르게 지나간다.

 

오름길기준 좌측의 가옥.

 

마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계곡의 물소리가 갑자기 지척으로 다가온다.

사면의 좋은 길을 내려서자 작은새개골이

짜증스러운 매미 소리를 다 잡아 삼키며 안아준다.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뛰어들어도 된다고 말하는 듯

물소리를 최대로 높인다.

계곡을 따라 오를까 하다가 지리산길을 펼치고 트랙을 따른다.

계곡에 근접하여 약간의 산죽을 헤치며 걷는다.

산길은 계곡과 연애하듯 밀당 하며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한다.

 

또 산길로 이어지는가 싶어 확인하니 이제 길은 계곡으로 완전히 내린다.

계곡을 치고 오른다.

피아골 용수바위를 연상시키는 바위가 나타난다.

계곡치기의 걸음이 바쁠 이유가 없다.

건너뜀과 착지가 착착 달라붙는다.

혼자이니 다치면 답이 없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12시.

멈춘다.

배낭을 내리고 옷을 벗고 물속에 앉는다.

지리산이 몸속으로 들어 온다.

잊고 싶은 일과 잡념이 씻긴다.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누워 하늘을 본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음악도 켠다.

참 괜찮다.

수많은 생명이 쓰러져간 원한의 계곡이니 무섬증이 느껴 질만도 하건만

머무는 동안 한순간도 느끼지 못했다.

 

옷을 말려서 입고 다시 내려간다.

왔던 길이 중복되지만 오를 때와 내려갈 때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다.

 

삼단폭포 상단으로 내려온다.

평평한 반석 아래로 낙차의 물소리는 웅장하다.

 

폭포 바로 아래 펼쳐진 야사시한 장면을 차마 세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폭포 옆에서 자리를 깔고 누운 한 쌍의 꼴불견을 피해 우회를 선택한다.

폭포를 한 단계 내려서니 아침에 앞서 간 두 사람을 다시 만난다.

이분들은 대성골을 계곡으로만 따라 올라와 작은세개골을 올라가는 중이다.

이 사람들 폭포 위로 올라서자.

좀 전 나와 비슷한 놀란 표정으로 생비디오를 감상(?)한다.

 

아래에서 바라 본 삼단폭포.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길은 작은세개골의 계곡만을 따른다.

자리를 잡고 있던 한 팀이 불쑥 나타난 내 모습에 움찔한다.

경계가 풀린 후 혼자임을 알고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한잔하고 가라며 잔을 건네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넙죽 받았을 잔인데

오늘은 아예 술을 챙기지도 않았고 이상하게 땡기지가 않는다.

술을 못 한다 하고 내려간다.

하산 후 화개로 나가는 도로에서 음주측정을 당할 때

결국 술을 거절한 것이한 일이 되었다.

작은새개골 다리로 내려온다.

 

올라가면서 찍지 못한 석문을 카메라에 담는다.

거대석벽 옆으로 길이 지난다.

대성주막을 지나면서 앞뒤로 많은 사람이 한 줄로 서게 된다.

산악회의 일원처럼 껴버려 그 상태로 한동안 걷는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

오르고 내리며 보는 상황과 모습조차 또 다른 지리산 길을

천천히 잘근잘근 씹는 맛에 여름 볕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의신은 더욱 복잡하고 북적인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좌우로 꽉 찬 산악회 버스와 차가 도로를 점령했다

저 아래 계곡에서 들리는 "위하여!"의 소리는 무엇을 위하는지는 모르겠다만

고성방가에 가깝고 여기저기 펼쳐진 술판에 당연한 듯 춤과 노래도 섞여

난장판이다.

의신역사관으로 빠르게 올라가 짐을 정리하고 의신을 뒤로한다.

혼자라는 호젓함과 내 마음대로 산행의 작은세개골이 또렷이 새겨진다. 

가을에 다시 오고 싶다.

 

사랑을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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