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 둘레길

2015.06.21 지리산 둘레길(운리-덕산)

지리99 수야 2015. 6. 27. 17:54

지리산 둘레길 6.

 

일시:2015년 6월 21일 (일요일, 날씨:흐리고 비)

산행자:상가식구 8명.

걸어간 길:운리-원정-백운계곡-용무령-마근담-산천재-덕산.

시간 및 거리:07시 30분~15시 33분 (14km. 8시간 2분).

 

2015-06-21 지둘6 (8구간 운리-덕산).gpx

 

2015-06-21 지둘6 (8구간 운리-덕산).gtm

 

지리산 둘레길 여섯 번째 길이다.

운리에서 덕산까지 13km 조금 넘는 길이다.

높낮이도 없는 그저 밋밋한 산허리를 감돌아 이어지는 별 재미

없는 길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호젓함, 경쾌함, 가뿐함, 여유로운 기운, 이런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천히 걸어야 좋은 길.

앉아서 온갖 느낌으로 눈을 감아 보는 길.

혼자라도 좋고, 둘이라도 좋을 길이었다.

 

운리 주차장 정자에서 아침을 먹는 동안 하늘이 울상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흐림이 짙다.

 

지리산 둘레길 여섯 번째 길을 이어간다.(7시 30분)

8구간이지만 상가식구는 6번째 이어지는 길이다.

 

운리마을 주차장에서 산 쪽 들길을 따라간다.

곧바로 원정마을 앞을 지난다. (7시 39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배낭커버를 하고 우의도 입는다.

길은 산을 넘지 않고 산 아래와 들판 사이로 따라 지나간다.

 

임도 길을 따라 산허리를 돌며 지나온 마을을 돌아본다. (8시 2분)

 

덕산 까지 12.3km를 걸어야 한다. (8시 6분)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온 길이 운리에서 벌써1.6km이다.

약간의 고도를 높이며 오르막이 이어진다.

단성면 운리와 백운계곡을 잇는 7km 임도다.

맞은편으로 석대산 안갯속이다.

 

촉촉이 내리는 비에 나뭇잎이 젖었다.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든가.

내친걸음 어찌 내리는 비를 탓할까.

여름꽃 까치수염이 고개를 내밀고 세상을 엿본다.

 

올라간다.

인생은 먼 길이다.

삶의 길 앞에 닥치는 어느 것 하나라도

긍정하는 마음이면 좋겠다.

 

천천히 고도를 높이다 보니 임도 길이 급하게 휘어지며

통나무 원두막 쉼터가 나타난다. (8시 26분)

쉬어 간다.

캔맥주를 딴다.

고백 후 대답을 기다리는 고개 숙인 볼에 입을 맞추어 주던

오래전 그녀의 감촉 같은 맥주 맛이다.

뒤돌아서니 운리마을 들녘 뒤로 탑동마을 단속사지가 안갯속에 희미하다.

여자의 마음 처럼...

 

가늘어진 비에 우의를 벗고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포장도로를 따라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길 위에서면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다.

숨이 가쁜 길이 아니니 주고받는 말이 흥겹다.

 

운리에서 3.3km 지점, 빨간 화살표는 90도로 방향을 꺾는다.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왼쪽 산의 돌계단 방향으로 둘레길이 일행을 받아들인다.

본격적인 산길이다. (8시 57분)

 

숲 속으로 든다.

발의 감촉이 다르고, 마시는 공기가 다르다.

안개가 내리깔린 숲길에서 말들이 더욱 많아진다.

기분이 달라진 때문이다.

 

몽환.(夢幻)

환상.

이를 두고 한 말일 게다.

유순하고 온순한 길이 숲 속의 산허리를 감겨돈다.

이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길을 닮았다.

 

참나무 군락지 안내 표지판을 보고 "개"자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개"자 가 들어가는 단어치고 좋은 것은 역시 별로 없다.

"개"가 포함된 단어를 쏟아 본다.

 

지리산 둘레길 최고·최대의 참나무 군락이 펼쳐다.

지름 20∼30cm에 높이 20m에 달하는 20∼30년생 참나무 군락이 끝없이 펼쳐지는

참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감탄이 쏟아진다.

이 길은 치유의 길이다.

상처에 딱지가 사라지는 순간처럼 

마음의 곤궁함이 발아래로 떨어진다.

 

참나무 군락지 중간, 첫 번째 작은 계곡이 있는 곳에서 또 쉬어간다.

바쁘게 걸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느긋한 걸음에 마음조차 여유롭다. (9시 20분)

앞도 뒤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현재에 침몰하는 현실의 모든 것에서도

이랬으면 좋으련만 늘 마음만 바쁘고 고단했었다.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 주고

그다음은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게 인연이라 했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인생은 아름답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되어 온 막내 부부가 예쁘다.

산허리를 돌아서자 백운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백운계곡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천하 영웅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은/일생의 공이 고작 한 뼘 땅 차지한 것 뿐/

푸른 산에 봄바람이 부는데/서쪽을 치고 동쪽을 쳐도 미처 다 이루지 못 하네’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이자 영남 사림파의 거두 남명 조식(1501~1572)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읊었다고 하는 유백운동(遊白雲洞·백운동에서 놀다)이라는 시다.
백운계곡에는 남명이 신발을 벗어놓고 쉬었다는 남명선생 장구지소.

목욕을 하면 저절로 지식이 생긴다는 다지소.

5개의 폭포 오담폭.

물살이 하늘로 오른다는 등천대가 꾸러미처럼 꿰어 있다.
백운계곡은 웅석봉 허리춤에서 발원해 20번 도로 옆 덕천강까지 길이 5㎞에 달하는 계곡으로

10여개의 폭포와 소, 담이 줄지어져 있다.

열여덟 골짜기의 노래와 칠현의 유적이 있다고 전한다.

 

작년 여름 여기까지 계곡을 올라 본 일행들이 낯익은 길에서

선 채로 잠시 쉬며 지난 여름을 이야기한다.

 

계곡의 이름 백운(白雲)은 바윗돌이 흰 구름처럼 백색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계곡 상류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벌써 여름을 즐긴다.

 

계곡의 나무다리를 건너고 산으로 향한다.

빨간 화살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그 길을 따른다.(9시 55분)

 

백운계곡을 건너면 마근담 1.9km, 덕산 8.4km 이정표가 서 있다.

 

백운계곡에서 10분쯤 더 오르니 해발 549m.

이 구간의 최고 고도인 용무림재(용무령)이다.

지금부터는 오름길이 없는 사실상 하산길이다.

사람 소리에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냅다 뛰어 사라진다.

놀라 뛰는 고라니와 함께 사람도 놀란다.

정확하게 고라니를 본 사람이 오기 전까지

온갖 동물의 이름이 등장한다.

 

내림길이 시작되기 전 뒤의 일행을 기다린다.

일행이 다 모이고 다시 걷는다.

 

마근담을 향하는 길.

 

마근담.

마근담은 막힌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의미의 오지마을이다.
막힌 담에서 유래했다는 지명만 봐도 얼마나 깊은 골인지 알만하다.

마근담에서 흐르는 계곡 중간의 폭포와 웅덩이들은 백운계곡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도로가 포장되고 사람의 왕래가 잦아 오지라고 하기에는 이제 무리인 것 같다.

여름 한 철 피서객으로 채워질 계곡 주변으로는

꾸며진 집들이 즐비하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며 반사경 앞에서 장난질을 해본다.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정욕구를 버려야 한다.

살다 보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 보지않는다.

나만 좋으면 그뿐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남의 이목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될 일이다.

 

마근담교를 지나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길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 널찍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11시 40분)

 

계곡 물에 발을 담근다.

짐을 푼 홀가분함과 시원함으로 천천히 먹는 점심은

간단하지만 황후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커피숍의 맛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럭셔리한 커피를 마신다.

창의적인 커피 맛은

비보호 좌회전 구간처럼 위험을 안고 사는 세상과는

잠시 동떨어진 지리산 둘레길에서 주운 낭만적인 선물이다.

 

 

낭만실조 

            이 훤.

오늘따라

유독 허기가 졌다


황혼을

먹고 싶었다


낭만 실조에 걸린 것 

같았다


날 보고, 네가 웃었다


포만감에

숨 쉬지 못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낮잠을 즐기고

다슬기를 잡고, 오늘 둘레길은 즐김의 길이다.

 

2시간을 놀고 덕산을 향해 도로를 따라간다. (1시 40분)

 

잘 꾸며진 정원과 계곡 옆의 그림 같은 집을 구경한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는다.

정원을 꾸미기까지 수십 년 세월을 투자했다 한다.

간혹 영화나 텔레비전 촬영지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대충 보기에도 엄청난 정성이 들어간 것 같다.

 

유독 관심이 많은 여인네들이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시는

아저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앞서 간 일행을 따라 간다. (1시 50분)

 

덕산까지는 계속해서 포장도로다.

비 탓인지 덥지 않아 지겹다는 생각 없이 걷는다.

길 주변의 야생화를 이야기한다.

 

 

덕천강으로 마근담 계곡이 흘러간다.

감나무가 많이 있는 조용한 사리마을 스쳐 지나간다. (2시 30분)

 

개망초.

망초는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던 미국 흑인들의 꽃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일제강점기 때로 일설에 의하면

일제가 가옥을 짓기 위하여 목재를 들여왔는데

그 목재에 묻어와 퍼졌다는 것이다.

특히 1910년대 일제치하에 들어서면서 유독 망초가 여기저기 많이 피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고 '망할 망(亡)' 자를 넣어서 망할 놈의 '개망초'가 되었다 하니

나라 잃은 한이 서린 꽃이기도 하다.

 

송엽국.

 

산천재 남명선생 기념관을 한 바퀴 돈다.

산천재는 남명이 61세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가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산천이란 주역의 대축괘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해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생의 학문과 인격을 완숙한 경지로 끌어 올린 곳이다.
남명은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에 터를 잡고 왕에게 세 차례 상소문을 올렸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건의했다.
명종, 선조에게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지만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는 데만 힘썼다고 한다.

이곳의 옛 지명인 덕산을 따라 덕산재라고도 불리는 산천재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440년의 매화나무가 있다.

이 남명매는 강회백이 젊은 날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정당매,

원정 하즙이 심은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더불어 '산청 3매'를 이룬다.

 

                            남명매.

 

 

산천재 마루에 앉아 흐린 날씨 속 희미한 지리산을 바라본다.

구곡산 능선이 보인다.

오른쪽 건물은 선비문화연구원이다.

 

 

산천재를 뒤로 하고 덕천강 변을 따라 둘레길을 따라간다.

 

둘레길이 ㄷ자를 그리며 덕천강 건너로 이어져 간다.

덕천강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원리교와 천평교를 건너간다.

 

1561년 남명 선생은 61세의 나이로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 보이는 덕산 사륜동(絲綸洞)으로 들어왔다.

현재 산천재가 있는 곳으로 이 마을 사람들이 ‘실골’이라고 부르는 사리(絲里)이다.
고려가 망하자 녹사(錄事) 벼슬을 하던 한유한이라는 사람이 지조를 지키고자 이곳에 피신해 살았다.

 

조선 임금이 한유한을 부르자 그 길로 이곳을 떠나 하동 악양방면으로 가 숨어살았는데,

 

그가 살던 방에 “한 조각 임금명령 골짜기로 들어오니(一片絲綸來入洞)/비로소
이름 인간 세상에 떨어진걸 알겠네(始知名字落人間)” 라는 시구가 적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이 사륜동이 되었다고 하며. ‘사륜’은 임금의 부름을 뜻한다.
이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 덕천강인데, 양단수(兩端水)로 더 알려져 있다.

 

남명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두류산가(頭流山歌)’ 때문이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에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메뇨, 나난 옌가 하노라.

한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이 시조는 남명이 덕산에 들어와 지은 것으로 전한다.
이 시조의 초장 '두류산 양단수를 녜 듣고 이제 보니'라는 구절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천재
앞을 흐르는 강물을 양단수라고 부른다.

 

 

덕산중학교 옆으로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지척인

천평교를 건너 둘레길 8구간의 종점을 찍는다. (3시 18분)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것은 오만 한 일이다.

그리워할 수 있을 때 그리워해야 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는 지금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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