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7 향운대
두류능선-향운대.
일시: 2015년 6월 7일 (일요일)
독오당 67차 정기산행.
산행자: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Guest:유키님.(5명)
걸어간 길:광점동-두류능선-향운대-어름터-광점동.
내장을 애무하는 공복의 소주.
아침을 5인분으로 준비해 오시라 연락했다.
대답은 딱 한 글자로 명료하고 짧았다.
"네!"
오도재 전망대에서 아침상을 차렸다.
떡국이 끓기도 전에 뚜껑을 여닫는 유키님의 조급함을 우리는 관심 두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끄집어낸 예사롭지 않은 페트병에 집중했다.
'알콜 농도 19%'라는 이름을 단 액체가 맑고 깨끗하게
종이컵에 가득 담겨 찰랑찰랑 주어졌다.
자, 한잔해 봅시다. 그녀가 잔을 들었다.
똑같이 마셨다.
지리산 청정계곡수 같은 맑은 액체는 저 건너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는 짜릿함보다 더 강렬하게
내장을 따라 내려갔다.
떡국이 그 짜릿함을 또 한 번 포근히 감싸주었다.
이 작업을 몇 번 반복했다.
대장님은 떡국 속의 조개를 맹렬히 탐하며 더 달라고 했다.
이른 아침 페트병 소주는
공복의 내장을 그녀의 표현처럼 애무했고
그 애무에 우리는 알딸딸해졌다.
한 마디로 뻑이 가면서 세상이 까리 해졌다.
<사진:귀소본능>
광점동 광주리농원 옆에 주차한다.
산행채비를 하고 좌측 길을 따른다.
작년 겨울 상가식구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그 길을 똑같이 간다.
다만 그때와 달리 역방향으로 진행한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은 식구들에게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든 사람들과 병원 응급실까지 가야 했던 사람까지
소화불량의 기억이다.
생각했다
오늘 내 이 길 아작을 내 주마.
임도를 따라가다가 우측으로 나무계단을 오른다.
나무계단은 잡풀이 점령을 시작했다.
점령군처럼 당당함으로 발길을 막아서는 여름 잡풀은
아작을 내겠다 결심한 자의 발아래 밟히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길을 터 준다.
서서히 몸을 풀며 오르는 길.
마을 터를 지나고 경작지를 지난다.
보기 어려운 귀한 어떤 것에 시간을 주었지만, 채취하지는 않았다.
두류능선의 꼬랑지에 진입한다.
지난겨울 이 길을 놓치고 성안 방향의 민가로 빠지면서 곤혹을 가중했던 지점이다.
본격적으로 두류능선을 따라 오른다.
한 시간여를 줄기차게 아작거리며 올라 조망터에 선다.
아주 오래 살아온 소나무 사이로 지리산의 주능선이 까리뽕삼하게
자태를 들어냈다.
낚시할 때는 그물을 던지지 않으며
잠자는 새에게는 활을 겨누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조금의 빈틈만 있어도 우리는 그물을 던지고
활을 겨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예외 없이 에스테야 형님을 향해 낚시질을 넘어 그물을 던졌다.
걸려던 형님을 향해 유키님 조차 뻥을 깠다.
형제봉을 보고 저기가 어디냐고 에스테야 형님이 물었다.
'모양이 토끼처럼 생겼네요'
'아! 그래서 토끼봉이구나. 토끼봉!!'
에스테야 형님은 유키님을 믿었고 우리는 그 믿음을 조각조각 내는 웃음을 터트렸다.
믿었든 유키님에게 마저 일격을 당한 형님은
굵고 짧은 한마디를 했다.
그러나 위엄이 실리지 않았고 나풀거리듯 가벼워 무게가 없었다.
'이 것들 이 요.!'
나는 에스테야 형님을 개배자라 불렀다.
유키님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마치 욕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개인적 배려 대상자. 개 배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알고도 모른 척 우리와 놀아준다.
그의 그릇은 과히 아우들이 따를 수 없는 참으로 인자한
대인의 면모임을 구연화 하지 않을 뿐
암묵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뭐, 내 얼굴과 무릎, 발목을 치료한 한의사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사진:귀소본능>
점점 각을 세우는 산길에서 땀이 쉰내로 느껴져 왔다.
길을 가로막고 드러누워 깽판을 치는 쓰러진 나무와 마주했을 때
각자 그것에 대응해 나가는 방법은 다양했다.
에스테야 형님은 나와 같이 지극히 낮은 포복 자세를 취했다.
반면, 유키님은 옆으로 돌아 드러누운 나무의 등짝을 밟고 넘어왔다.
역시 매구급이다.
물을 깜빡하고 준비하지 못해 갈증을 느꼈다.
낭패감을 숨기며 에스테야 형님에게 맥주를 마셔버려야 배낭이 가볍다고 꼬셨다.
물 대신 마신 맥주는 한동안 갈증을 잊게 했지만, 오름길에 가쁜 숨을 헐떡거리게 했다.
나만 이렇게 힘드냐고 물었다.
대장님과 본능은 다 같이 그렇다고 했고
에스테야 형은 '그래 너만 힘들다'고
빤히 보이는 뻥을 쳤다.
전투력이 상승 모드로 바뀐 귀소본능은 시종 앞서서 나아 갔다.
'만 놈의 시키 지 혼자 운동 하고 좋은 거 억수로 묵었능 갑다.'
고도 1300을 넘어 로프 구간이 나타났다.
이 구간을 대하는 자세 또한 다양했다.
큰소리부터 치던 에스테야 형은 밧줄을 잡고도 바동거렸고
"난 이런 길이 사랑스러워" 라며 썰을 풀던 유키님은
"뭐야 이거 밧줄을 잡지도 않고 그냥 올라 버렸네"라며 서운해했다.
여기서부터는 뒤에 쳐져 노인네 행세를 하던 대장님이 어느 사이 성큼 앞서 나아가 버렸다.
이 로프 구간을 내려오든 지난겨울,
눈 덮인 이곳을 엉덩이부터 주저앉든 상가식구들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주식시장의 상승 차트 처럼 두류능선에서 천왕봉까지 선은 천천히 위로 향해 있었다.
감탄하지 않음이 오히려 이상 할 만큼 조망은 탁월했다.
깊이 난 상처를 이야기했다.
칠선계곡과 국골 초암능선을 이야기했다.
빼꼼히 목을 빼고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그녀의 자세는 바람직해 보였다.
어느 곳을 향하는지 형님이 박아 놓은 지리산의 사진이 이번에는 산행기로
지리99 산행기 방에 올라 올 거라는 바람직한 기대를 또한 해본다.
이것은 바람직하고 올바른 자세를 견지한 사진이다.
약간 불량스럽고 삐딱한 동일지역 동일인물의 사진이 있으나 평탄한 가정생활을 위하여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참고로 가장 꼿꼿한 자세로 선 사람이 비공개 사진에서는 가장 얄궂어 보였다.
<사진:귀소본능>
귀소본능의 카메라는 동부능선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아주 먼 곳의 산 그림조차 가까이 당겨 왔고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을 가려운 등 긁는 효자손처럼 콕콕 찍어 댔다.
독녀암이 톡 불거져 보이는 사진을 나는 찍지 못했고
귀소본능은 찍었다.
정확히는 나는 보지 못했음이고 그는 매의 눈처럼 찾아냈다.
<사진:귀소본능>
향운대를 향해 내려가는 길이다.
전망대를 지나 로프를 잡고 내려갔다.
대장님은 앞서서 내려가 뒤따르는 우리를 갑갑하다는 듯이 기다렸다.
영감탱이 드디어 몸이 풀린 게 분명했다.
서서히 발동이 걸린 게 확실했다.
걸음의 속도와 오름을 치고 오르는 힘에서 느낄 수 있었다.
향운대는 거대한 암벽이다.
이 거대 암벽이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산죽 사이로 미로처럼 연결된 길을 따랐다.
대장님은 벌써 들어 가버렸고 두 번째로 여기를 오는 나는 자신 있게 산 죽을 헤치고 들어와
한 발짝만 더 걸어 버리면 지나치는 지점에서 뒤의 에스테야 형님을 기다렸다.
분명 형님은 향운대 방향을 벗어나는 걸음으로 저곳을 지나가리라
그때 또 한 방 날릴 멘트를 준비했다.
산죽을 흔들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정확하게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오차 없이 따라 들어 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내 뒤를 따라오든 에스테야 형과 귀소본능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이제 에스테야 형님도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패다.
향운대에 도착하자 우물부터 살폈다
누군가 청소를 했고 아주 깨끗하고 정갈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복 받을 짓이란 이런 것이다.
쉬고 먹고 마실 자리를 잡았다.
유키님이 말하는 아주 이상적인 지리산 만찬은 세 시간이라 했다.
세 시간을 퍼질러 앉아 놀기에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다.
적당한 시간 만큼만 여유롭게 시간을 할애했다.
아주 다소곳하게 대장님과 잔을 부딪히는 유키님을 욕지거리로 환영했다.
그 욕지거리에 담겨 있는 진정성과 깊은 애정을 단박에 그녀는 꿰뚫어 보았다.
독오당과 몇 번의 동행이었는지를 걸어오면서 세어 보았고
독오당과 가장 많이 산행한 유키님은 이미 독오당 개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있었다
역시, 매구급이었다.
<사진:귀소본능>
춥다는 영감탱이와 기를 느낀다는 이상한 여자와는 달리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간혹 스스로 강조 하는 책을 읽지 않는 무독의 현자이며,
종교가 없어 무속이나 미신은 절대 믿지 않는 무교의 나는
춥지도 덥지도 기를 느끼지도 않았고 다만 술맛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향운대에 관한 명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었고
임영감 절터라는 명칭을 들었든 지난 이야기를 대장님께서 해 주셨다.
향운대를 벗어나며 독오당 이름표를 달았다.
노란 리본이 초록의 산속에서 밝았다.
향운대에서 바라보는 산청 독바위가 선명했다.
이미 비워진 술병의 양 만큼 세상이 황홀해진 나는 한낮의 관능으로 다가온
지리산을 온몸으로 비비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느꼈다.
시선을 강탈당하고도 행복했다.
어름터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지형을 살피고 오룩스를 확인했다.
몇 발자국 벗어나 다시 붙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경험 할 만큼
길이 선명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
배낭을 내리고 쉬었다.
쉼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할뿐더러
비정상적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지속 될 수 없다고 법정스님이 말씀 하셨다.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
대수용의 독오당과 함께 한 유키님은 맨 뒤에서 따라 내렸다.
지리산 산행에서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기에
따라오든 말든 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고 각자 지 갈 길에 열중했다.
어름터 독가로 내려서기 직전
계곡에서 씻었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 공복의 짜릿한 술은 내장을 애무했고
오후 계곡의 차가운 물은 온몸을 찌릿하게 휘감았다.
그 맛이 깊어 신음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게 했다.
올해 들어 첫 탕을 했다.
독가에는 정자가 새롭게 지어져 있었다.
씻고 난 뒤에는 대부분 정신이 맑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 몰래 지들 끼리 한잔 했는지 행동들이 요상했다.
<사진:귀소본능>
독가를 지나 평탄한 길 개망초가 피어나는 곳에 이러러
영화에서나 봄 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개망초 몇 개를 머리에 꽂고 뒤돌아선 그녀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앞서서 멀리 사라져 갔다.
산행기상으로 받은 등산화는 배낭 속에 넣었고 운동화로 갈아 신고 있었다.
참으로 매구급이었다.
산 아래로 향할수록 우리의 말은 온순해지고
에스테야 형님은 당당해져 갔다.
선녀탕을 찾아 계곡 위로 올라갔었든 유키님은 아무래도 그곳에서
배낭 속에 감추어 두었던 술을 혼자서 마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대장님은 허공 달 골의 어원을 들려주었다.
낭만적인 이야기를 더 따르고 싶었다.
고추나무.
아침에 올라간 나무계단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이 길을 아작 내버리겠다 생각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첨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며
나는 몇 번이고 이 길에 또 서게 될 것이다.
광점동의 담장에는 붉은 장미가 피었고
엎드려 작은 꽃을 담는 에스테야 형님이 착시로 한층 젊게 보였다.
인동덩굴.
차에서 잠이 들었고 눈을 떠니 진주의 냉면집이었다.
물냉면을 먹었다.
공복의 술과 한낮의 술, 차에서 마신 캔맥주의 모든 술기운이
아래로 시원스레 다 내려갔다.
냉면값을 대장님이 쏘아서 더욱 시원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4kg의 몸무게가 빠질 만큼 힘든 일이 있었다는 대장님은
가벼워진 몸으로 다음 산행을 물었다.
그가 돌아왔다는 증거이다.
치열하면 치열한 대로 할랑하면 그런대로 함께 가자 했다.
유키님을 집에 내려 주고 또다시 나는 잠이 들었고
귀소본능은 우리를 안전하게 원위치시켜주었다.
2015년 6월 7일 일요일 저녁.
어디 가지 않는 지리산이지만
지리산과 독오당 생각을 켜놓고 나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