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 둘레길

2015.04.19 지리산 둘레길(수철-어천)

지리99 수야 2015. 4. 20. 15:59

지리산 둘레길4.

 

일시:2015년 4월 19일(일요일)

산행자:상가식구 8명.호진님,옥자님.(총10명)

걸어간 길:(지리산 둘레길 6코스) 수철마을회관-지막-평촌-성심원-어천마을.

시간및 거리:10시 27분~16시 56분(6시간 28분) 16km.

 

2015-04-19 지둘4 (6구간 수철-어천).gpx

2015-04-19 지둘4 (6구간 수철-어천).gtm

 

다른 날보다 한참 늦은 시간

수철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 정자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밥이 늦어진 것은

밤새 내리는 비와 계속 내릴 것으로 예보된 비 때문에

이번 길을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나와는 달리 식구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비는 멈출 기색 없이 계속 내리지만 염려했던 것만큼은 많지 않아 다행이다.

아침을 먹고 지난번 고동재를 넘어와

둘레길이 계속 되는 수철마을로 간다.

 

비 탓인지 텅 빈 주차장이 썰렁하게 느껴진다.

사업상 당분간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호진형님을 잠시 기다린다.

호진형님은 어제 거제에서 옥자님을 만나 부부상봉을 했다.

그리고 옥국장님, 뽓대형님과 같이 일박했다.

같이 참석하기로 했든 나는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거제를 가지 못했다.

정해진 날짜에 둘레길을 가는 것을 알고 있는 형님은

상가식구들과 함께 이 길을 걷기 위해 수철마을로 오는 중이다.

채비를 하고 있는 중에 도착한 형님 내외분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비 내리는 날.

이렇게 총 10명이 수철에서 어천까지 지리산 둘레길 네 번째 길을 걷는다.

빨간 화살표를 따라간다.

 

시작하기 전 비 때문에 머뭇거렸던 움츠림이

걸음을 시작한 후에는 운치 있는 장면으로 다가와 차라리 좋다.

비에 젖으면 더는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시끄러운 세상과는 달리 무심히 피어있는 이정목 아래 연분홍 꽃잎은 묵묵히 비를 받고 있다.

시간이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흘렀다.

일 년 전 4월.

많이 아프고 쓰린 마음과 참담함으로 이 꽃을 바라보았다.

어린 영혼들이 별이 되어 버린 4월 16일 그날.

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진실은 수장된 체 여전히 그대로이다.

어렵고 힘든 세월이다.

자신의 생각조차도 쉽게 말을 해서는 안되는 세상이다.

양분된 논리와 이분법적인 잣대로 핏대를 세우고 대립의 각이 서는 말 많은 세월이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세상.

그래서 신나게 놀고, 잘 놀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2015년 4월.

빗속에 피어 있는 꽃잎을 바라보며

배고픔 같은 헛헛함도 느낀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출발한다.

매점 옆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좌측으로 길을 돌려놓은 안내 이정목을 만난다.

 

마을 뒤로 안내하든 빨간 화살표는 지막마을로 방향을 가리킨다.

 

늦은 출발을 만회라도 하듯이 오늘 식구들의 걸음이 빠르다.

뒤에 출발한 호진 형님을 기다리며 뒤로 물러서서 천천히 따라간다.

수철마을을 벗어나 흙냄새, 풀냄새가 폴폴 한 농로 길을 걷는다.

천천히 걸으니 평소 보지 못한 작은 들꽃들의 앙증스러움도 자세히 볼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들.

사람 사이의 인연도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짙은 운무로 사방의 조망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대충 짐작으로 지리산자락을 가늠해본다.

내 가늠의 짐작 속에 들어온 지리산은 웅장하고 거대하다.

내게 세상은 그러하다.

지금 나는 그 거대함의 한 귀퉁이에서 아직도

짐작만으로 세상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며칠 만에 만난 부부 산꾼은 한 우산을 받치고 무척 다정스럽다.

때로는 험난고 힘든 길을 함께 걸온 부부가 참 보기 좋다.

시기심에 두 사람 사이에 끼여 훼방을 놓았다.

오래 볼수록 정이 가는 사람.

자세히 볼수록 내 마음도 함께 세세해 지고 싶은 형님 부부이시다.

앞에 선 식구들을 따라 빠르게 걸으며 두 사람을 따로 둔다.

속으로 영감탱이는 그랬을 것이다.

"어따 눈치는 겁나 빨라 불구마잉."

 

지막마을.

지막마을은 딱(닥)종이를 만들었던 곳으로 전해지며 지막골 또는 지막동이라 하였다.
지막마을에는 덕계 오건선생과 남명 조식선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춘래대와 춘래정이 있다.

지막마을을 지나 잘 포장된 길을 따라 평촌마을로 간다.

 

 

평촌마을.
산청군 금서면 지역으로 들말, 서재말, 제자거리, 건너말 등 네 개의 동네를

들말로 불러오다가 한자로 평촌(坪村)이라 했다.

평촌마을도 무심결에 지나간다.

 

운무 속에 잠시 잠깐 필봉이 살짝 얼굴을 보였다.

이제 이 길을 지나가면 웅석봉의 자락으로 들어갈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실제하고, 보이지 않으나 확연한 삶과도 흡사한 모습이다.

빗속에서 터벅터벅 걷는 길이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제법 멀리 앞선 식구들과 뒤에서 오는 호진형님의 중간에서 홀로 걷는다.

이런 길 혼자서 이렇게 걸어도 참 좋을 길이다.

많이 보이지 않으니 생각도 줄어든다.

앞에 다가오는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니 대충 지나치지 않게 된다.

 

대장마을을 지나고

대장교를 건너자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경호강이 펼쳐진다.

고속도로가 머리위로 지나가는 다리 아래서 잠시 쉬어간다.

보이는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걸을 것이다.

 

경호강 1교를 건너서 ㄷ자 모양으로 길이 계속된다.

경호강을 따라 단조롭지만 시원한 흐름의 길이다.

지리산으로 들어올 때면 달리는 차에서 보이든 꽃봉산의 정자가 지척으로 다가온다.

저곳에 올라 막걸리 한 잔을 걸쳐 보자든 기억들도 떠오른다.

사실 오늘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 저곳 까지만 올라가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할 계획을 혼자 세워두었다.

다행히 걷기 좋을 만큼만 비가 내려 저곳은 또 다시 남겨두게 된다.

 

점심 먹을 자리를 찾다가

연화대 정자를 발견하고 가보았지만 이미 선점을 한 사람들이

무속 행위를 하고 있어 물러 나온다.

그저 옥자님만 모델인 줄 알고 찍어대는 호진형님의 요청으로

포즈를 잡은 할매를 나도 같이 한 장 박았다.

 

꽃봉산 아래 연화대가 있는 내리교를 지나면 좌측으로 가야 한다.

트랙상의 둘레길은 그렇다.

앞선 일행을 따라 무심코 걷다 보니 

점심을 먹고 난 뒤 웅석봉 아래 내리저수지 밑까지 가서야 길을 확인하게 된다.

둘레길 이정목이 내리저수지로 안내되어 있었으니 트랙과는 다른 길로 온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내리교를 건너면 곧장 갈림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쪽으로 꺾어 경호강을 따라 걷다가 바람재까지 가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최근 오른쪽 마을로 올라 내리저수지→지곡사→심적사 앞→선녀탕까지 고도를 높였다가

임도를 타고 웅석봉 기슭을 돌아가는 길로 둘레길이 신설되어 있다.
강변을 따라 걷든 신설 길을 걷든 선택에 달렸다.

우리는 원래의 길로 돌아가기로 한다.

 

비를 피해 밥상을 차릴만한 곳을 찾아 걷는다.

내리저수지 아래 내동마을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다.

 

밥.

밥은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한 끼니만이 아니다.

경남도지사에게 글을 보내

한 끼의 밥 속에 온 우주가 다 담겼다고 일갈 한 

어느 고등학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무상이라는 말조차도 맞지 않지만

급식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을 증명하라던 도지사님은 이제 어쩌면 법무부 무상급식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또한 세금이니 가난을 증명하셔서 무상급식을 받으셔야 할 듯하다.

여지(餘地)라는 말이 있다.

여지란 내 안의 빈자리, 상대가 편히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나, 한 사회나, 한 국가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다.

오랫동안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약간 부족한 술은 마을에서 쉽게 구해올 수 있어 좋다.

들어간 알콜이 땅으로 스며드는 비처럼 온몸으로 스며든다.

말이 많아진다.

이쯤 되면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식구들은 이제 다 안다.

나에 대한 여지를 남겨 둔 식구들을 따라 배낭을 맨다.

 

길은 계속된다.

화살표를 따르든 둘러가든 가야 할 길은 계속된다.

늘 한결 같을 수 없는 길.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워도 계속되는 삶이 또한 그렇다.

 

우중산행이 부담스러운 날, 이 길을 걸어보시라.

빗속에서 바라보는 경호강의 강물처럼 느릿하게도 걷고 빠르게도 걸으며 

물처럼 흘러야 하는 삶을 조금은 느긋하게 관조할 수 있으리라. 

 

대나무 숲 사잇길을 지나며

다시 경호강 변으로 나아간다.

원래의 둘레길로 돌아왔다

성심원을 향한다.

 

급류를 타고 때로는 거칠고 빠르게 강이 흐른다.

여름철이면 래프팅으로 붐비는 강에는 몇 마리 새들만이 먹이를 찾고 있다.

곧게 뻗은 강변의 길은 평이하여 좌측의 강으로만 자꾸 시선이 간다.

 

걷다 보니 어느덧 성심원이다.

성심원은 한센노인 요양시설로 1959년 6월 19일 개원했다.

1961년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의 도움으로 성심인애병원이 신축됐다.

1964년 병원을 증축하고 성당을 신축했으며

2012년 2월 18대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가 취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심원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강변 쪽으로 나온다.

 

강가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떠올랐다.

오래전 본 영화 장면 중에

아버지는 첫째 아들의 작문공부를 위해 글을 쓰게 하고

그 글을 반으로 줄여 오라 한다.

줄여 온 그 글을 다시 줄여 오게 한다.

다시 줄여온 그 글을 OK 하고는

그렇게 힘들게 쓴 글을 이제

쓰레기통에 버리게 하든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았었다.

아버지는 한 권의 책을 줄이고 줄여 한 장의 글로 만들고

그 마지막을 버리게 한다.

그 장면이 생각났다.

버리는 연습.

아들에게 그것을 그렇게 가르치던 그 영화가 기억났다.

 

아침재라 한다.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어천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산 쪽으로 난 길을 택한다.

임도를 따라 제법 뒷다리의 땡김이 있는 오름이 구불구불 계속된다.

 

처음 망설였던 생각과

복잡했던 여러 생각은 걷는 동안 잊었다.

땀이 솟아나는 오르막길에서는

나는 나 자신조차 잊고 있었다.

어천마을로 내려가는 좌측길과 둘레길이 계속되는 오른쪽 길이 나뉘는 이곳을

오늘의 종착으로 삼는다.

어천마을 도착 후. 

수철마을로 택시를 타고 차량을 회수하러 가는 식구와 호진 옥자님은 같이 간다.

호진형님 부부는 수철에서 바로 귀가를 하기로 한다.

또 한 번의 인연은 함께 한 시간 만큼 깊었.

어쩌면 비가 내려서 더욱 좋았든 이 구간을

비 때문에 포기했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가야 할 길.

우리 식구의 동행은 계속된다.

 

삶의 과정이 행복인 것을..

산꼭대기에 오르면 행복할 거라 생각 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곳은 없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즐거운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같은 음식을 먹지만

기분이 좋은 사람과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다.

좋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된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해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다.

- 김홍식 '죽어도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중-

2015-04-19 지둘4 (6구간 수철-어천).gtm
0.02MB
2015-04-19 지둘4 (6구간 수철-어천).gpx
0.08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