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02.08 새봉

지리99 수야 2015. 2. 11. 15:14

새봉.

 

일시:2015년 2월 8일 (일요일).

산행자:보스님, 써니님, 유키님, 수야 (4명)

걸어간 길:오봉-독가-사립재-새봉-새재-외고개-오봉.

산행시간:09시 26분~17시 38분 (8시간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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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잤다.

눈을 뜨는 순간 번갯불이 번쩍했다.

빛의 속도가 이런 일 것이.

세수도 못 하고 차를 몰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숨 넘어 가는 듯 전화기는 연신 까똑까똑 소릴 냈다.

이 아침 유난히 추웠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있었다.

30분이나 이 추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보스님에 대한 미안함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차에서 뛰어 내려갔다.

어떤 말로,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내 꼬라지를 살폈다.

깎지 않은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까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마산에서 써니님을 픽업, 진주로 달려 유키님을 냅다 들여 앉히고,  잃어버린 시간을 거의 되찾을 만큼 속력을 냈다.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다리 옆 공사 중인 공터에 주차했다.

몇 번의 동행이 어긋난 이후 어찌어찌 유키님과 같이 동행하게 된 이 길은

작년 7월 홀로 올라간 길이다.

차 안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을 예비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 민박집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유심히 보니 앞서 간 호진 형님 일행의 차로 짐작이 되었다.

마을을 벗어난 길이 우측 산기슭을 따라 굽이 돌고 난 뒤

첫 번째 계곡으로 발길을 끌고 갔다.

산속으로 접어들면서 바람은 잦아들었고 생각보다 춥지 않을지 모른다는 심각한

오류의 생각이 들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첫 번째 우측으로 유혹하는 길로 따라가기 쉽다.

유키님에게 지난번 이 길로 갔는지 물었더니 갔다, 안 갔다 써니님과 한참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모르겠단다.

지난번 홀로 산행 때 경험상 임도를 계속 따라야 하는 게 정확했었다.

그 임도의 갈림길에서 산 위를 바라보았다.

 

산등성이 위에서는 바람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때로는 그 바람 소리가 한 맺힌 영혼들이 토해 내는 울부짖음 같이 들리기도 했다.

못다 한 미련의 내 세월도 바람 소리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공허로 떠밀려 다니는 아침이다.

40대 초반 지리산을 접했다.

이제 그 마지막 40대를 보내야만 한다.

잘 가라 미련 만 가득 찬 나의 40대여.

이런저런 생각으로 걷다 보니 혼자 많이 올라 와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느릿하게 걸어 오르는 여유로 가득 찬 세 명의 여자들은 시끌벅적했다.

여자 셋의 웃음과 수다는 바람 소리를 대적하고도 남아 계곡을 더 파고 멀리 까지 번져갔다.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기 전 계곡을 건너는 눈 위에 호진 형이 불러준 이름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형의 웃음 가득한 미소를 떠올렸다.

안부를 묻는 통화를 하다 이번 주 이 코스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연처럼 유키님도 이 길을 동행해 달라고 했다.

호진형님옥자님의 주력과 체력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더 길고 많이 잡은 코스를 생각해서

산청 독바위에서 점심은 같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보다 한참을 앞서간 흔적을 눈 위에 남겨 놓고 갔다.

 

독가를 지나고 산죽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며 나는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 걸음의 속도로는 도저히

새봉에서 산청 독바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

하물며 그곳에서 호진님 일행과 점심까지 먹고 오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새봉을 지나 새재 방향 어디쯤에서 기다리면 되겠다는 계산이 끝나자.

서둘러야 할 분명한 이유는 사라져 갔고 배낭을 내리고 쉬어 가는 시간은 늘었다.

유키님은 미리 신신당부했다.

언니와 써니는 속도가 느리니 이해해야 한다고.

사실 힘들지 않고 쉬엄쉬엄 걸으니 여유로워 나는 편하고 무척좋았다.

 

쉬어 간 자리에 간단하게 적혀있었다.

뒤에 알았지만, 그냥 놀다 간 것이 아니라 "먹고 놀다." 간 자리었다.

 

사립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능선으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아주 낮게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 같기도 했고,

공사장의 폭발음 같기도 했다.

소리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음은 직감되었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바꿔야 했다.

단단히 무장한 후 사립재를 올라섰다.

 

사립재를 올라서자 바람은 소리뿐만이 아닌 실체로 덮쳐왔다.

살갗을 내놓은 부분은 여지없이 얼어붙일 기세로 맹렬했다.

몸이 휘청거릴 만큼 바람은 쌔게 때론 방향을 바꾸어 싸대기를 후려치길 쉬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 장갑을 벗었다가 후회와 동시에 곧 바로 포기했다.

사립재에서 새봉으로 오르는 길 마지막 구간은

얼어 버린 미끄러운 바위로 지나가기엔 여의치 않았다.

술에 만취한 날.

길바닥이 벌떡 일어서는 그런 날.

나는 무생물인 전봇대를 붙잡고

혀 꼬인 욕을 퍼부었던 때가 있었다.

비켜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뒤에서 사정없이 날아오는 찬바람의 강펀치에 술도 먹지 않은 맨정신인데도

앞에 놓인 이 무생물의 대답 없는 바위에다 데고 욕이 뛰어나올 것 같았다.

우회 길을 찾았다.

앞서간 호진형님 일행도 헤매다 우회를 한 것이 틀림없는 발자국이 사면을 넓게 돌아 찍혀 있었다.

그 발자국을 따라 새봉 삼거리로 갔다.

새봉삼거리에서 일행들에게 산청독바위를 알려주었다.

"아이고 못 간다 못 간다."가 바로 튀어나왔다.

유키님의 질문은 추위에도 서슴없었다.

왜 삼거리지?

상내봉으로 가는 길(사립재 방향)과 왕등재 방향(새재,외고개 방향)그리고 산청독바위 방향의 삼거리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났는지 알 수 없는 곰 출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빠르게 너럭바위로 이동했다.

바람도 피하고 점심을 먹기에 좋을듯싶었다.

역시나 바람을 피하고 바라보는 조망에 보스님은 '세상에나'를 연발했다.

독바위 어디쯤에서 기다릴 형님과는 통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가다 보면 우릴 따라잡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리를 아늑한 곳으로 옮겨 점심을 먹었다.

모자라는 술이 아쉬웠다.

 

새봉에서 새재 까지의 길 중에 너럭바위에서 내려가는 구간은 보스님에게는 즐거움으로

써니님에게는 공포로 버티고 있었다.

보스님은 이런 밧줄이 있어야 맛이라고 했고 너무 재미있다고도 했다.

써니님이 밧줄을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든 구간을 뒤에 내려오는 유키님은 폴짝폴짝 뛰어내렸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써니님과 동행을 했었든 기억이 있다.

로프구간을 서너 차례 지나고 내림의 산죽 길도 통과했다.

겨울철에는 이 구간에 조심하고 긴장해야 하는 길이다.

눈과 낙엽 밑으로 얼어 있는 얼음은 위험했다.

 

 

새재를 향해 느린 부지런함으로 걸었다.

앞서서 걷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새재에서 오봉으로 내려가는 눈 싸인 미끄러운

급경사와 지난번 홀로 산행 때 경험한

마지막 유실된 도로에서의 길 찾기가 계속 걱정이 되었다.

일몰 전 유키님을 반납해야 하는 부담감이 고민을 더 깊게 했다.

일단 내려서 보고 여의치 않으면 뒤돌아서 외고개 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바람도 뒤로 때어 버리고 난 뒤, 먼저 내려와 뒤를 기다리며  

바라본 지리산 동부능선과 써래봉은 나뭇가지 사이로

까리뽕쌈하게 까대기를 치고 있었다.

 

삼거리 헬기장에서 유키님의 쇼가 있었다.

극한의 상황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 하게 볼 수 있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경험한 일임으로 나는 틀림없다고 믿고 있다.

언니와 친구가 힘들어하는 순간순간이 많이 미안했는가 보다.

가장 힘들고 힘을 내야 하는 때, 유키님의 고운 본성을 나는 보았다.

내가 먼저가 아닌 상대를 위한 배려는, 때로는 자신의 망가진 모습조차 주저 없이 행하게 했다.

그 본성의 순수함이 참 고왔다.

한바탕 즐거운 휴식으로 웃었다.

 

걷는 길에

전망대가 나오면 올라서서 펼쳐지는

지리산의 조망에 넘쳐나는 감탄사로 감탄했다.

 

새재에서 오봉으로 내려섰다.

몇미터를 앞서 내려갔지만 미끄럽고 쌓인 눈으로 길을 찾기가 애매했다.

나는 뒤 돌아서서 아직 가 보지 못한

외고개의 길이 어떠한지를 유키님에게 물었다.

길은 뚜렷하다고 했다.

내림막길도 짧고 임도로 바로 떨어지는 외고개로 가기로 했다.

되돌아 올라온 발자국을 뒤 따라온 호진형이 보았고

우리가 외고개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산 후 통화로 말했다.

 

 

외고개에서 내려오는 구간은 금방이었

길도 비교적 또렷했다.

출입통제 표지판 앞으로 내려 임도를 따라 오봉까지 걸었다.

 

호진형님의 전화기는 꺼져있었고

옥자님과 통화를 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하산을 완료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산길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법이다.

결국, 시간에 쫓겨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방향으로 가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주암식당에서 서로 음식값을 내겠다는 어탕국수를 먹었다.

기어이 내게 하나를 더 넣어준 손두부를 나는 또 챙겨 받았다.

일몰 전의 귀가 약속을 지켜 내지 못한 유키님을 위로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산행 후 맨정신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운전을 해야 한 오늘 산행은 술이 고팠다.

손두부에 소주를 한잔 했다.

온종일 얼얼하게 얼어있든 몸이 노곤해지고 풀어졌다.

산행을 간 가게에 애기나리님이 다녀가셨고

금농선생님께 전해 드리라며 책을 주고 가셨단다.

내는 안 주시더나??.

책장을 펼쳐 보았다.

 

 

지리사랑.

어쩌면 이리도 내 맘을 쏙 뽑아 놓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또다시

50대의 지리열병이 시작 되는 오늘.

지리산을 벌써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허락 없이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해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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