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4.12.07 구룡계곡 (용호구곡)

지리99 수야 2014. 12. 9. 20:32

용호구곡 (구룡계곡)

 

독오당 61차 정기산행

일시:2014년 12월 7일 (일요일)

산행자: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4명)

걸어간 길:전북 남원시 주천면 내평마을 공영주차장-용호구곡 [송력동-옥룡추-육모정-용호석문- 삼곡교(학서암)

-챙이소-유선대-지주대-비폭동-경천벽-구룡폭포(교룡담)-청룡암-구룡사]

-지리산 둘레길-임도-내평마을 공영주차장.

산행시간:08시 53분~16시 46분 (7시간 53분)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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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7 구룡계곡(용호구곡).gtm


 신의 한 수

 

용호구곡의 자세한 설명과 구곡문화에 대한 설명은 다우 대장님의 산행기를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용호구곡 관련 산행기.(독오당 다우 대장님)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12&wr_id=47573&sca=&sfl=wr_name%2C1&stx=%EB%8B%A4%EC%9A%B0&sop=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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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르지 않고 계곡 쪽으로 건너는 다리가 있었다.

용호구곡의 1곡부터 9곡까지 각자를 차례대로 보며 걷기로 한 대장님이 앞장을 섰다.

 

눈이 내린 후 날씨는 쌀쌀했고

산 아래에도 얼음이 얼어 길은 미끄러웠다.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출발지점에서 늘 하듯이 사진을 찍었다.

모자를 쓰지 않는 나도 오늘은 모자를 눌러 썼다.

함께 하기로 했었던 호진형님과옥자님은 무등산에 눈이 엄청 내렸다며

무등산 안내 산행을 하게 되었다고 돌연 불참을 알려 왔었다.

 

1곡의 송력동으로 가는 길은 편평하고 단조로운 외길이었다.

계곡을 건너자 말자 산길로 접어들며 얼마 걷지 않아 바로 돌담이 나타났다.

 

송력동 돌담.

음기를 차단하기 위해 돌담을 쌓고 소나무를 배지 않고 방치하여 가렸다는 그 돌담이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와야 1곡의 송력동 각자를 볼 수 있었다.

우선은 여궁석으로 올라갔다.

여궁석은 이 돌담 뒤로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모양은 참으로 민망할 정도로 신기했다.

흐르는 물에 주변에 낙엽들이 씻겨 내려간 바위는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장님의 세세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에스테야 형님은 자세하게 알려고 했고

대장님은 스틱으로 특정 부위 하나하나의 명칭을 지명했다.

우리는 카메라로 앞에서 박고 옆에서도 박고 마구마구 박아댔다.

 

하수와 고수.

양기 충천한 귀소본능은 아래위로 바쁘게 다니며 연신 카메라를 갖다 대고

묘한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를 잡고 깊은 집중력에 몰입되어 있었던 그때.

별안간, 갑자기, 느닷없이

조용한 산길에 놀란 꿩이 갑자기 날아가는 소리라고나 할까,

죄인이 묶여 태형을 당할 때 나오는 신음이라고나 할까

급한 설사로 화장실까지 걸음을 뗄 수 없을 때 나오는 그 소리와도 흡사한 신음일까.

아무튼, 퍼덕거리며 버둥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음인지 비명인지 구분도 애매한 소리가 들렸다.

너무 깊이 몰입한 탓에 여궁석을 실물로 착각한 것인지 지금도 알 수는 없지만

얼음이 주렁거리는 엄동설한 차가운 물 속에서

귀소본능은 온몸으로 여궁석을 체험하고 있었다.

아무리 양기가 충천하다 해도 우리는 과한 행동이라고 말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돌격한 탓에 말릴 틈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애석한 것은

귀소본능이 몸을 던져 체험한 그곳은 여궁석이 아니라 여궁석 아래였다.

아랫도리 실한 귀소본능은 1곡에서부터 아랫도리에 물을 질질 흘리며 걸어 다녔다.

 

"본능아 거기가 아이고 저 위다"

약 올리는 대장님과 여궁석 흐르는 물속을 파고들고 난 뒤 정신줄 놓은 귀소본능.

 

본능의 돌격을 지켜본 후

침착하게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에스테야 형님은 여궁석위로 올라탔다.

온몸으로 느끼고자 한 귀소본능이 한 수 높은 고수인지

요령껏 자세를 잡는 에스테야 형님이 고수인지를 나는 구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웃다가 반쯤 죽어 있었다.

 

두 발에 힘을 주고 버티어 선 그는 미끄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유연하게 움직였다.

고수였다.

 

여궁석에서 돌담으로 되돌아 나와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갔다.

대장님은 9곡까지 모든 각자는 등로에 있지 않다고 했다.

찾아보라 했지만 어릴 적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할 때도 연필 한 자루 찾지 못한 나는

그냥 가르쳐 달라고 했다.

 

송력동 각자는 계곡의 오른쪽 넓은 바위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볼 수 없을 만큼 희미했다.

이미 물과 친해진 귀소본능이 물을 뿌리고 난 뒤 선명하게 보였다.

1곡 송력동.

 

옥룡추(용소).

옥룡추의 각자는 육모정에서 출렁다리 아래로 들어가야 볼 수 있었다.

 

용호정.

 

용호정에 앉았다.

귀소본능의 요청에 따라 포즈를 취했다.

여궁석에서 거사를 치른 고수는 이제 아무나 보고 들이대는 이상한 성향으로 변했다.

옆에 대장님의 모습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음을 이제 알았다.

말없이 간혹 웃기만 하는 대장님이 진정한 고수 라는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용호정앞 돌 기단을 둘러보고 설명하는 대장님과 뭐든지 들이박는데 고수인

두 사람은 열심히 사진을 박아댔다.

진정한 고수는 아무 곳에나 박지 않았다.

 

 

2곡 옥룡추.

 

옥룡추 각자를 확인하고 출렁다리를 건너 육모정으로 갔다.

거북바위를 지나갔다.

거북바위, 음력 사월 초파일에 춘향 명창대회가 열린다고 했었다.

 

국창 권삼득 유적비.

 

육모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육각 모양의 용호정을 육모정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불러오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육모정이 실재했다는 것으로 오인하게 되었고,

급기야 육모정과 용호정이 각각 세워져 현존하는 것이다.

 

용호정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가

용호석문을 보았다.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의 글씨라고 했다.

에스테야 형님은 내가 궁금했었던 내용을 물어보았다.

석문처럼 안 생겼는데 어찌 석문이라 하는지?

도로를 만들면서 석문의 형태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했었다.

 

부처를 찾아보라고 했다.

천연 석불의 모습은 자세히 보니 실제 보였다.

저돌적이고 무조건 들이밀든 귀소본능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양산의 모 사찰에서 한 때 몸을 의탁했던 그는

아침밥을 먹을 때는 천주교 신자인 에스테야 형님의 기도를 같이 따라 하기도 한다.

이 고수의 정체가 나는 날이 갈 수록 궁금했다.

 

방장제일동천.

김두수가 8세 때에 쓴 것이라고 한다.

좌측에 "김두수 팔세서"라고 새겨 있었다.

우리는 여덟 살에 무엇을 했었나에 대해 한동안 떠들었다.

 

용호석문을 보고 뒤돌아서 다시 육모정 방향으로 올라갔다.

육모정 맞은편에 춘향묘가 있었다

물론 가묘일 것이다.

 

용호서원.

작은 개 한 마리가 자기 임무에 충실하게 열심히 짖어댔다.

모든 종교를 아우러는 본능은 개마저도 사랑해주었다.

심하지 않게 살살 말로 사랑을 해주는 본능을

개는 무척 싫어하는듯했다.

한 마디로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삼곡교를 건너 학서암으로 갔다.

학서암은 삼곡교를 건너 다리 아래로 계곡을 따라가야 했다.

약간의 잡목을 헤지고 계곡의 비탈을 따라 대장님의 뒤를 따랐다.

삼곡교 구룡계곡 표시석이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구룡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다리를 건너 빨간 교통 표지석이 있는 우측으로 내려가야 학서암 길이었다.

 

특별히 길이라 할 만한 통로가 없으며 계곡 옆 산 사면을 가로로 따라가야 하는데

미끄럽고 눈과 얼음으로 약간 힘이 들었다

사진의 에스테야 형님이 오고 있는 반대편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귀소본능은 건너왔었다.

 

이미 한차례 물에 빠진 귀소본능은 이제 물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잘 건너다녔다.

안 빠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에스테야 형님은 새색시같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학서암에 무사히 도착했었다.

 

3곡 학서암(鶴捿岩).

학이 떼 지어 살던 곳이라 하여 불리는 학서암(鶴捿岩)이라 했다.

각자는 수해로 파괴되어 9곡 각자 중 유일하게 남아있지 않는 곳이라 했다.

사진은 학서암의 아래에서 위로 보며 찍은 것으로 사진의 중앙부 나무가 쓰러진 저 부근에서

계곡 물 쪽으로 가면 남근석이 있었든 것 같다.

 

튼튼하고 실한 대물이 차가운 물 속에서도 전혀 오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것을 찾아내는 대장님은 참으로 고수라고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소본능이 혹시라도 또 달려들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으나

매일 보는 거라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시 삼곡교로 올라와 구룡계곡 등로를 따라갔다.

한 무리의 산악회 사람들이 우리를 앞서 지나갔다.

대장님의 복장과 물에 빠진 본능을 보며 그들은 힐끔거리며 우리를 보았다.

구시소에 도착하기 전 계곡 쪽으로 유난히 튀어 나간 바위가 쉬어 가기 편해 보였다

길이 지금보다 산 쪽으로 위에 있을 때 그 길에서 아래 이 바위를 보면 스님이 독경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대장님이 알려주었다.

배낭을 내리고 맥주를 한잔 하며 별 힘들지 않은 산행이지만

왠지 예전의 유람을 나온 선비들처럼 쉬어 보고 싶었다.

시라도 한 수 읊어야 할 것 같았지만 멀뚱멀뚱한 맨정신에 그런 게 될 리 없었다.

 

물살에 파인 바위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 하여 구시소라 부른다 했다.

 

 

챙이소는 빠른 물살에 파인 바위 모양이 챙이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챙이소라 부른다 한다.

 

 

각자는 챙이소 위에서 계곡을 건너 계곡을 따라 조금 내려가야 했다.

챙이소 바로 위 계곡을 건너며 본능은 또 한 번 온몸으로 엎드려 사랑을 아주 매(강하게)했다.

대장님이 건너가고 바로 뒤따르든 본능은 건너가는 모습을 찍으려

에스테야 형님과 내가 카메라를 꺼내려는 순간,

야구시합에서 홈으로 질주하며 슬라이딩으로 점수를 올리는 선수처럼 저 계곡을 건너갔다.

본능은 아직도 여궁석에서의 황홀함과 희열을 잊지 못하는 듯 열이 식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거의 다 말라가던 본능의 아랫도리에서는 다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본 귀소본능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는

이 순간을 찍었는지 물었고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관 중인 알탕 사진만 수십 장이라며 이 순간의 사진이

공개가 될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할지 모른다고

형님들과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을 놓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져 주는 척 그와 합의를 해주었다.

고수는 협상도 잘했다.

 

4곡 서암(瑞岩).

 

서암의 각자를 사진으로 찍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각자 앞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 찍으라는 대장님은 자신이 두 번이나 나무가 부러져 식겁을 하고 선

우리를 그 나무로 올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나는 밑에서 살짝 찍었고

고수인 에스테야 형님은 아주 특이한 자세로 각자를 담아냈다.

 

칠성암터 바로 뒤에 흡사 소가 하품을 하면서 혀를 보이고 있는 듯한 바위가 있어 우두산이라고 한다.

즉 우두혈에 칠성암이 자라잡고 그 아래 소에게 먹이를 주는 구시소가 있어

풍수적으로  아귀가 딱 맞는 것 같다.(다우님 산행기에서)

소 혀를 닮은 바위.

 

바로 아래 칠성암터.

 

4곡 서암에서 부터 5곡 유선대까지 길을 살방하게 걸어갔다.

"사랑의 다리"라는 목교를 건너갔다.

옛 지명으로 각자가 새겨져 있는 구룡계곡에서의 이름으로는 조금 어색했다.

이렇게까지 그날의 모든 민낯을 까발릴지 생각도 못 한 귀소본능은 포즈도 잘 취해주었다.

 

유선대.

바위에 줄이 처져 있어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었다.

또한, 신선들이 인간의 눈을 피해 병풍을 치고 놀았다고 해서 은선병(隱仙屛)이라고도 한다고 했다.

 

줄이 처져있었다는 바위.

 

신선들이 인간들의 눈을 피하고자

병풍을 둘러 첬다는 바위들이 그리 보면 병풍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유선대 각자는 계곡을 건너 병풍처럼 둘러 처진 바위들 중 아랫부분에 있었다.

금이 그어진 바위를 지나 각자를 보기 위해 배낭을 벗고 건넜다.

건널 때는 별 어렵지 않게 흩어져서 각자가 나름대로 건너갔다.

 

5곡 유선대 각자.

 

진정한 고수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 법.

에스테야 형님은 이번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같이 건너오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었다.

무엇인가 예감이 온 진정한 고수의 촉이었을까.

 

다시 되돌아 계곡을 건너오는 길

대장님이 있는 곳은 아무래도 숏다리로는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처음 건너 온 곳으로 다시 건너기 위해 용을 썼지만

얼음이 얼어 있는 바위 위에 안전하게 착지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랭이를 벌리고 고민을 하다 원위치를 하려는 순간 왼발이 빠지고 말았다.

"니미 빠졌다."

뒤에서, 위에서 환호의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발만 빠진 것이 다행이었다.

본능처럼 몸을 조금 더 깊이 담갔다면 저들은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나를 지켜본 후 대장님이 시도했다.

 

간절히 원했다

나도 박수 칠 수 있게 해달라고...

아무리 보아도 불안정한 자세다. 신이 났다.

저 자세로 빠진다면 대형 사고다. 앗싸~

카메라를 꺼내야겠다는 순간.

 

뛴 다 아~~.

 

지주대

물길이 서로 합쳐지는 곳으로 절벽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과 흡사하다 하여 지주대라 불린다

각자는 출렁다리를 건너 왼쪽 아래로 내려가야 볼 수 있었다.

바위를 타고 올라 관목을 제거한 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대장님의 노력으로

우린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이런 것을 찾아내는 대장님이 고수임이 분명해 보였다.

 

6곡 지주대 각자.

 

각자를 보기 위해서는 저 출렁다리 왼쪽으로 내려 와야 했다.

이제 6회이니 9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에스테야 형님이 한 번쯤 빠져주면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폭동 안내판.

 

제7곡 비폭동(飛瀑洞).

200m 높이에 거의 90도 가까이 깍아지른 암석층을 문암(文岩),

이 바위 서쪽 우뚝 솟은 봉우리를 반월봉(半月峰)이라 한다

반월봉에서 층층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날아 오르는 것 같다 하여 비폭동이라 한다.(다우님 산행기)

겨울에도 제법 물줄기는 흐르고 있었다.

수량이 많을 때 직벽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상상만으로도 장관일 것 같았다.

 

비폭동 각자는 계곡의 오른쪽 옆 바위에 있었다.

 

7곡 비폭동 각자.

 

비폭동 각자를 확인하고 나무계단 오름길을 올랐다.

눈이 쌓인 계단을 오르며 숨이 찼다.

 

별로 미끄럽지 않은 길인데도

에스테야 형님의 걸음은 신중했다.

 

 

 

비폭동에서 넘어가는 길은 오르락내리락 계단으로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도저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천벽 각자가 있는 아래 계곡에 바위 벽면에 각자가 살짝 보였다.

대장님은 저 각자를 찾든 날에 운이 좋았다고 말했었다.

저런 곳에 각자를 새겼던 사람이 쓴 사람 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8곡 경천벽 각자.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어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이라 하여 경천벽이라 한다.

또한 두 개의 큰 바위가 대문처럼 서로 맞대고 있어 석문추(石門湫), 통천문(通天門)이라고도 한다.

 

구룡폭포 전망대에서 본 폭포.

 

 

교룡담. 

용호구곡의 최상류로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어울렸다가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 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꿈틀거리는 듯하여 교룡담이라 한다. (다우님 산행기에서)

 

각자를 보기 위해서는 최상류로 가야 한다.

위로 오르는 샛길이 있지만, 눈과 얼음으로 상당히 위험했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우회로 올라갔다.

 

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계곡 방향으로 천룡암이 나왔다.

천룡암 아래로 내려서야 하는데 암자에서는 절대 내려가지 못하게 했다.

나무다리에서 아래를 보고 어디쯤인지만 가늠 해야 했다.

마지막 하나의 각자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천룡암 나무다리에서 계곡 아래를 보고 가늠한 각자가 있는 바위.

 

9곡 교룡담 각자.(사진: 다우님)

 

 

구룡대각자와 교룡담 각자가 있는 계곡의 바위 부분.

안전구조물이 좀 전에 돌아 나온 교룡담 전망대.

 

구룡사로 물을 뜨러 갔다

개가 짖어 댔다.

유난히 개들이 짖어댔다.

구룡사에서 물을 뜨고 둘레길과 만나기 직전 양지쪽에서 점심상을 펼쳤었다.

종일 지고 다닌 대구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귀소본능 앞에다 놓고 끊이든 대구탕에서 김이 올라 올쯤일 것이다.

본능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돌아앉는 순간 여태 공을 들인 버너가 넘어지면서

완벽하게 다 쏟아 버렸다.

우리는 함께 외치고 싶었다.

실패!

 

그래도 밥은 먹었고, 술도 먹었다.

정종을 데워 먹었고 쏟아버린 대구탕만큼의 맛 난 밥을 먹었다.

둘레길 1구간을 만나고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서북능선을 뒤집어씌운 눈이 햇볕에 빛났다.

그림 같았다.

넘어지고 빠지고 엎질러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물에 빠진 왼발은 축축했으나 시리지 않았다.

온몸으로 여궁석을 안고 싶어 했던 귀소본능의 옷도 다 말라 있었다.

벌써 저물어 가는 겨울 짧은 석양을 받으며 논길을 가로질러 걸었다.

 

"고수에게는 세상이 놀이터이고

하수에겐 세상이 지옥이다"

영화 <신의 한 수>에 나오는 대사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쪽 하늘 석양을 바라보며 고수는 이렇게 말 했었다.

"오늘도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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