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4.10.05 통신골-천왕동릉

지리99 수야 2014. 10. 8. 22:45

통신골-천왕동릉

 

독오당 59차 정기산행.

일시:2014년 10월 5일.

산행자: G귀소본능형님, 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총5명.

걸어간 길:중산리 주차장- 유암폭포- 통신골(병풍바위골)- 주등로통과- 천왕동릉- 법주굴- 광덕사교- 중산리.

산행시간:6시 51분~16시 38분(긴 산정 만찬포함 9시간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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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오당 통신골 산행 때 통과해 버린 일명 병풍바위골을 올라

천왕동릉으로 하산을 하기로 지난번 산행 후 뒤풀이에서 이미 확정된 산행코스를 간다.

대장님의 산행 전 숙지 및 주의구간에 대한 공부를 하명 받고 지형도를 미리 들여다보며

산행기도 찾아 읽는다.

 

통신골은 초반 한 골로 단조롭게 올라서지만 1차 합수부에서 좌측으로 한 골을 더한다.

일명 작은통신골로 산꾼들에게 불리고 있는 이 골은 <제석봉 방향>으로 오른다.

이 좌골을 지나 계속 계곡을 오르다 1,470m 부근 2차 합수부에서 

계속 직진으로 끝까지 오르면 <통천문 부근>으로 오르는 길이다.

1,470m 부근에서 직진이 아닌 우측 골로 진입해서 고도 1,650m에서 직등을 하면 바로<천왕봉>이다.

1,650m 부근에서 또 한 번 우측 골을 따라<병풍바위골>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네 군데 길 중 마지막 미답의 한 곳인 병풍바위골로 간다.

내게는 네 번째 통신골 산행이다.

 

일몰 시각을 고려하여 일찍 출발했다.

매번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에 들 때마다 초반에는 힘들다.

데워지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몸이 서서히 풀린다.

길가에 핀 야생화에 대해 내가 묻고 대장님이 답 해주신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많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쉼 없이 걷는다.

 

법계사와 장터목 갈림길 공터에는 알려야 할 것이 무엇이 이리도 많은지

어지럽게 알림판이 널려있다.

 

쉬어 가자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홈바위를 지나고 홈바위교까지 줄기차게 걸은 덕분에 일찍 도착했지만

앞선 본능과 본능형님은 뒤처진 우리를 답답해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쌓아올린 돌탑들이 햇볕에 반짝였다.

하늘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천왕봉이 아주 약간의 귀퉁이만 보였고

우리는 저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라고 말하고 손짓했다.

하늘이 높고 푸른 날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로 지리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처럼 보였고

그 속에 이어지는 길조차 또 부드러울 것 같았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깊숙이 들어가면 밖에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른 현상이 존재한다.

다만,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유암폭포 에서 물 한 잔을 마신다.

대장님이 여자분과 대화를 나누시길래 나는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국립공원 모자를 쓰고 있길래 공단원인지 물어보았다 했다.

공단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디서 공단 모자를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모자만 공단원이었다.

요즘은 등산복을 입고 동행산행을 하며 단속도 한다고 한다.

 

통신골로 들어간다.

네 번째 오르는 길이다.

귀소본능 형님은 걸음이 빠르다. 등달아 본능도 오늘 걸음이 빠르다.

초입의 제 색을 내지 못하는 단풍을 보며 고도가 높아지면 짙은 단풍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앞에 놓인 지리산 천왕봉은 위엄으로 다가왔다.

곧추선 칼날 같은 직벽의 벼랑은 엄중해 보였다.

어머니의 산.

어머니의 품속 같이 따스함으로 품어 보듬는다는 지리산 천왕봉은

그 따스함과 함께 꼿꼿하고 비장한 냉철함도 함께 있음을 보았다.

 

앞선 자를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쉬어 가자 말했다.

천왕봉으로 이르는 길에는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통과하거나

하늘이 열리는 개천문을 통과 해야 한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통신골은 그 문을 통하지 않고

오르고자 하는 또 하나의 길이며 천왕봉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막걸리 한 병을 비웠다.

준비해간 생선회를 비웠다.

나의 배낭은 그만큼의 무게가 줄었지만, 마신만큼의 숨소리도 비례해 크게 들였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걸음 하는 하늘은 그만큼 하늘과 가까워진 까닭인지, 몸속으로 들어온 

술기운 때문인지 더욱 푸르게 보였다.

 

뒤돌아본 골짜기는 언제 이만큼 올라왔는가 싶게 긴 길이로 보였다.

저 길이 내가 지나온 궤적이다.

부질없이 미리 걱정하든 날들이 언제 지나갔나 싶게 느껴지는 것과 같았다.

살아버린 흔적은 가물가물한 기억이 되었고, 잃어가는

시간은 좀 더 잘해 볼 걸 하는 깊은 한숨으로 언제나 짙었다.

 

가을바람은 안쓰러웠다.

내 안쓰러움은 또한,

위험천만한 길을 오르며 이 위험한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만 오래 잘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딛는 내 한 걸음이 또한 안쓰러웠다.

위로 받지 못하고 차곡히 싸여가는 내 희망들이 산길에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안쓰럽게 느껴졌다.

 

귀소본능 형님과는 두 번째 산행이다.

첫 번 산행에서 형님은 지리산을 잊지 못할 말로 표현하셨다.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쭉쭉빵빵 몸매도 아닌 순박한 시골 처녀 같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보면 볼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아가씨로 비유하셨다.

다우 대장님과는 고교동문이시다.

형님의 눈은 나와는 달랐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듯이 형님의 눈빛은 그윽하고 깊었다.

능선의 한곳 한곳을 짚어내며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감성은 뛰어났다.

 

각별히 신경을 쓰며 병풍바위골로 진입하는 길을 찾아 헤맸다.

약간의 빗나간 길에서 귀소본능은 자신의 몸으로 먼저 밀고 나가 길을 확인했다.

확연히 드러난 선명함을 확인하고 우리를 안내했다.

시들어가는 산오이풀이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올랐다.

앞사람이 밟은 작은 돌들이 간혹 굴러떨어졌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골은 각을 더욱 세웠다.

스틱을 접어 넣고 네 발로 기었다.

스틱을 집고 오르는 것보다 편했고 안전했다.

 

어떤 이유로 여기다 두었는지 모를 배낭이 주인을 잃고 바위틈 사이에 있었다.

에스테야 형님은 너무 힘들어서 배낭마저 버리고 간 것이라 했다.

귀소본능은 심마니가 숨겨 놓은 것이라 했다.

나는 에스테야 형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귀소본능의 말에 혹시 산삼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어보지 않은 체 주인이 찾아가길 바라며 그대로 두고 갈 길을 갔다.

 

조금만 앉아있어도 추위를 느끼든 몸이 네발로 기어오르는 동안 땀이 흘렀다.

가늘어지는 물줄기에 식수를 확보했다.

한 모금 물을 마셨다.

시원함이 온몸으로 전해져 기분을 좋게 했다.

 

자연의 온갖 현상들이 신비로웠다.

이 바위골짜기에 바람을 견디며 뿌리를 내리고 용담이 꽃을 피워냈다.

 

 

하늘을 향해 일제히 솟은 나무와 바위는 끝에 도달하기 위해

오르는 것에만 집중하는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생각했든 짙은 단풍은 없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이 생명에 대해

나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

 

급비탈의 경사에서 숨을 몰아쉬며 건너편을 보았을 때

일출봉과 연하봉 뒤로 시루봉과 촛대봉이 선명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다 생명을 다한 고사목이 하얀 맨몸을 들어낸 체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뿌리를 더욱 깊게 파고들게 했을 치열한 삶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구절초가 저물어가는 가을을 붙들고

밝게 피고, 지고 있었다.

가을이 피고 지고 있었고 산은 또 다른 계절을 미리 채비 하고 있었다.

 

양옆으로 깍아지런 듯 둘러쳐진 바위가 나타났다.

 

 

자신이 오르기 위해 설치하지는 않았을 밧줄이

그 용도로 쓰이길 바라는듯하여

우리는 기꺼이 잡고 올라갔다.

 

예고 되지 않고 준비되지 못한 길.

그러나 그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상황과 시련들을 견디며 미련없이

살다 지고 싶다.

 

밧줄이 매여진 고사목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확인하는 주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앞선 에스테야 형님은 자신이 오르고 난 뒤 나에게 밧줄을 주며 안 잡고 올라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

자신은 무지하게 의지하고 올라간 것을 나는 뒤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사이 대장님은 마지막 바위를 기어 올라갔다.

한 사람씩 올라가는 맨 뒤에서 나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한고비를 돌아 안도의 숨을 쉬면

또다시 찾아오는 삶의 고단함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내 것이 아니었고 가지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는

욕망만이 벼랑 위를 바라보는 내 눈높이와 같았다.

예비한 길이였지만 몸은 당혹스러워했다.

 

주능선의 사람들이 훤히 보이는 비박터에 올랐다.

천왕봉 바로 턱밑에서 그곳으로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의 작은 소리와 몸짓까지 다 들리고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한 여자를 만났다.

다른 사람 눈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는 달라 보였다.

나에게는 특별하게 보였다.

나에게만은 특별하고 달라 보이는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만은 보였다.

특별하게 나에게만 달라 보인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지리산으로 들기 시작한 그 날부터 지리산은 특별함과 다름으로  

항상 다른 산과는 달라 보였다.

사랑의 시작이었다.

 

 

제석봉 전망테크의 사람들이 보였다.

옴팍한 장터목을 올라 연하봉과 촛대봉을 이어 내달리는 주능선의 장쾌한 달음박질이 반야봉을 뛰어넘고

노고단까지 줄기차게 눈이 호사를 누리게 했다.

 

밥 먹으러 간다.

눈은 가득한 포만감이었으나 배는 그렇지 못했다.

아늑하고 포근한 터를 잡고 한 시간 넘게 먹고 놀았다.

넉넉하고 풍족했으며 차고 넘친 밥 시간은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했다.

 

천왕동릉으로 내려 갈 것이다.

먼저 올라와 다시금 반야를 바라보며 묘향암이 보인다고 귀소본능 형님이 알려 주신다.

내 눈에 들어온 반야는 섹시해 보였다.

 

굽이쳐 내려가는 황금능선과 가운데 세존봉 능선 그 사이로 중봉골이

흐르고 있다.

 

치밭목능선과 너머의 웅석봉과 달뜨기능선도 맑게 조망된다.

그 뒤의 황매산까지 눈길이 닿았다.

 

대포를 들고 왔으나 포탄을 빠트린 형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자가, 나무젓가락이, 의자가 새것이라고 내가 알아봐 주었다.

듣고만 있든 대장님은 나중에 새것을 자랑할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려가서 꼭 사진을 찍어 달라 하신다.

 

건너편 바위 위가 절묘했다.

 

상봉 바로 밑의 주등로로 내려서는 길에는 많은 사람이 불쑥 튀어나오는

다섯 명의 남자들을 이상한듯이 쳐다보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당황함 없이 사람들 속에 묻혀 몇 걸음을 걷다가 동릉입구를 향해 들어선다.

한 명씩 주위를 살피다 들어간다

주등로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는 우리들의 길에만 집중하여 빠르게 움직였다.

등로의 사람들에서 멀어진 뒤 뒤로 배경이 된 천왕굴의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아직 보지 못한 곳이기에 나는 강하게 호기심이 발동했고

눈으로 길을 익히려 했다.

 

내림 기준 좌측으로 써래봉 능선이 따라붙는다.

넘어 멀리 덕유산까지 조망되었다.

 

동릉초입을 지나 바로 큰 암봉을 우회하고 뒤를 돌아본 상봉이 거리를 두며 멀어져간다.

급하게 내리는 길이 만만치는 않았다.

끝까지 동릉으로 내려가지 않고 법주굴로 내려가기로 한다.

밧줄을 잡고내려 오는길에 요상한 냄새의 진원지인 이름과는 다른

금마타리의 향이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또다른 이름인 페장을 배운다.

 

법주굴에서 쉼을 한다.

독오당이 시작된 곳.

50차 기념산행이 행하여진 곳이다.

 

광덕사지까지 길인지 아닌지도 구분되지 않는 길을 내려온다.

광덕사지에서는 걸음만 잠시 멈추었고 내리막길로 계속 내려간다.

 

기도터다.

예전, 당수님은 장 처사와 함께 지낸 일화를 말씀하시며

장 처사 기도터라 했다.

 

그다지 고운 색감도 없는 단풍이 그래도 잠시 걸음을 붙잡았다.

 

내게서 나는 내 몸의 냄새는 고단했다.

광덕사골에서 정규등로로 나오기 전 고단한 냄새를 대충 씻었다.

아래의 단풍은 아직 설익었고 멀어 보였다.

 

순두류에서 버스를 타기 전

물 건너 온 MADE IN CANADA 정품 아크테릭스를 입어 보인 대장님은 자랑질의 끝판왕이 되었고,

강요나 강압에 의하지 않는 순순한 의도로 저녁을 사주셨다.

서울로 바로 올라가시는 귀소본능 형님을 원지에 내려드리고

어둠이 짙은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뒷좌석의 나는 깊은 단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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