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8 향운대
향운대
일시:2014년 2월 8일(토)
걸어간 길:광점동-어름터독가-향운대-두류능선-광점동
산행자:상가식구 8명,호진이랑옥자랑(총10명)
산행시작:9시 38분
산행종료:21시 02분 (11시간24분)
한 달 전부터 한라산을 계획하고 배편을 예약했습니다.
2월 7일 밤 삼천포에서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삼천포로 출발하기 한 시간 전 전화가 옵니다
풍랑주의보로 인해 출항을 못 하게 되었다고...
이미 배낭까지 다 싸놓았는데 이대로 다시 풀 수도 없어 지리산을 생각합니다.
롯지로 갑니다.
원군을 요청하고, 롯지에서 마시고 놀며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나와보니 몇 분의 산꾼들이
분주히 산행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대하는 산유화 누님과 일행들입니다.
새벽에 도착해서 잠깐 눈을 붙이고 바로 산행을 나서는 길입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느긋하게 움직입니다.
도착한 지원군 호진 형님 내외분과 함께 아침을 먹고 광점동으로 갑니다.
미끄러운 길에서 차량 이동이 더는 불가하여 광점교에 주차를 하고 이동을 합니다.
마을 주민 한 분이 나와서 계속 내리는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에 기대감과 설렘으로 연신 웃음소리가 납니다.
오늘 저녁에는 롯지에서 하산주를 제대로 하자고 했습니다.
말이 방정이었을까요
결국 하산주는 없었습니다.
광점교에서 10분 만에 강아리 민박에 도착 어름터로 갑니다.
집 앞의 눈을 치우는 주민분과 인사를 나눕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발자국의 길을 내어 주었더니 좋아라 합니다.
어름터 독가에 도착하고
산속에 이런 광경을 처음 접한 이분들, 한동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참을 바라봅니다.
얼마 전까지 비어 있든 집안에
젊은 한 분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기타도 보이고.
독가 앞의 계곡을 건너 우측 능선길로 오릅니다.
지난번 맑은소리 팀과 독오당 연합산행 때는 좌측으로 들어가는 허공달골로 갔었습니다.
간간이 나타나는 산죽으로 인해 앞에서 눈을 털어 줍니다.
독오당 산행이라면 일부러 뒤에서 살살 따라갈 텐데...
이분들, 세 번째 지리산행입니다
통신골과 중부칠암자, 그리고 오늘 향운대 입니다.
한 상가 건물에서
가족들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눈만 뜨면, 서로 마주 보고 생활하는
저 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들입니다.
한라산으로 가는 길이 지리산으로 바뀌어도 좋아합니다.
며칠 동안 독감으로 병원치료를 받아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분도,
지리산을 처음으로 따라나선 사람도 있습니다.
쉬엄쉬엄 쉬면서 갑니다.
짧은 해에 너무 많이 쉬어 사실 걱정도 됩니다.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며 평소에는 보이지 않든 부부애도 과시하고
난리도 아닙니다.
솔직히 저의 취향은 아닙니다.
남들처럼 우리 부부는 사진도 같이 안 찍습니다.
한 20년 살았으면 굳이 뭐 그런 게 필요합디까.
그리고 보니, 여기서는 제가 제일 막내입니다.
나중에 저만큼 나이 먹으면 그때 가서 한번 같이 사진도 찍어 보든지 하지 뭐
쑥스럽고 남사스러워서 영~
지난해 말.
이분들과 광주의 무등산을 갔습니다.
호진 형님이 기꺼이 안내 산행을 해주시고 저녁엔
산구화 누님께서 차로 마중도 나와주시고
맛있는 저녁도 사셨습니다. (이런 거 자랑해도 되나?)
우리 동네 이 아줌마들이 참 많이 좋아합디다.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한 산에서의 사람사귐이 진솔하고 더없이 편했던 까닭에
자꾸 인연이 깊어집니다.
일일이 챙겨야 하는 초보 산꾼들이지만
그동안의 일상을 벗어나 눈 쌓인 지리산을 걷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그 기분을 잘 알기에 평소 나의 잔소리는 대도록 줄입니다.
하나하나 펼쳐지는 모든 것이 그대로 그림이고
두고두고 회자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좋다는 탄성.
그 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몇 번의 주춤거림으로 찾아 들어간 향운대.
향운대를 설명을 못 합니다.
나중에 공부해서 알려 주겠다 했습니다.
사진:호진님
향운대.
계속 내리는 눈으로 비닐 타프를 치고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초라한 점심을 어쩔 수 없어 하는데 술도 모자랍니다.
집사람은 제가 산에 술 먹기 위해 간다고 지리산 눈발 날리듯이 잔소리를 해대지만
오늘은 술도 정말 모자라는 날입니다.
간단하면서도 긴 점심을 끝내고 철수를 하며 방향을 잡습니다.
쌓인 눈으로 걷는 속도는 느리고 동절기의 짧은 일몰도
생각하지 못한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무엇보다 아침 산행 시작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거기다 산길을 욕심 낸 것이 더 문제가 됩니다.
두류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눈이 많이 쌓인 오름길에서 러셀을 하며 나아 가지만
계속해서 내리는 눈으로 미끄럽기 조차합니다.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지고
시간은 계속 갑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자꾸 시간은 지체됩니다
앞에서 일부러 속도를 내면 힘들어하니 속도를 낼 수도 없습니다.
체력도 많이 소진된듯하고 쉬는 시간은 많아지고
마음은 저물어 가는 날처럼 자꾸 어두워지고
급해집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오늘은 롯지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야 하니까
늦어도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대열을 지어 오름을 합니다.
겨울바람이 차고 시리지만 처음 하는 모든 것에 재미있어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내 급한 마음과는 달리
눈밭에 뒹구는 이 시간이 재미있고 좋습니다.
4시가 넘어서야 두류능선에 붙습니다.
그래도 할 것은 해야 합니다.
단체 사진도 찍고 각자 카메라가 바쁘게 방향을 잡습니다.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지리산을 통해 저와 인연이 맺어지고, 저와의 인연 때문에 달려 와주신
지리산 대표 부부 산꾼.
참, 고맙고 감사한 분들입니다.
늘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수도 없이 사진을 찍습니다.
로프구간을 지나고 미끄러운 구간을 수없이 지나며 긴 하산을 합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 오면서 마음은 급해지고 넘어지는 횟수는 많아집니다.
웃고 즐기든 분위기는 없어지고
점점 심각해져 가는 얼굴들입니다
그래서 농담도 하고 혼자서 더 많이 떠들어 댑니다.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 혼자만 말이 많습니다.
미끄럽다는 소리만 나오면
엉덩이부터 땅에 갖다 대고 내려오든 마누라 궁둥이가
나중에 보니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확인할 수가 없어서 모르겠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랜턴에 의지한 야간산행을
어찌어찌 해서 간신히 내려옵니다.
사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야간산행이 되어 버렸지만
나야 이런 산행도 즐길만합니다.
그러나 말조차 없어진 이분들
많이 힘들어하고 지쳐가고 있어 그만큼 미안한 마음입니다.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다시는 안 온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어쩌면 그 말조차 하기 싫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오룩스맵과 감각을 총 동원하지만, 어둠에 지형을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몇 번의 발길을 되돌려 다시 길을 찾고 내려옵니다
처음에 계획했든 길을 놓친 것을 확인합니다.
호진 형님과 의논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임도로 붙기로 합니다.
그렇게 비탈을 한참 헤매고 난 후
임도 전 마지막 경사를 내려서니
개소리가 요란합니다. (점태양지)
9시가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한 참을 기다려 전원이 임도에 도착하고
차를 가지러 먼저 빠른 걸음으로 내려옵니다.
차를 몰고 일행을 데리려 올라가니 절룩거리며 내려오는
부상자가 있습니다.
도로가 얼어붙어 미끄러지며 다친 사람이 둘이나 됩니다.
산에서 넘어질 땐 그나마 부상은 없었는데
얼어버린 도로에서는 심하게 타박상을 입은듯합니다.
어찌어찌 수습하고 롯지로 돌아옵니다.
롯지에서는 산유화 누님 일행이 방금 도착하여 쉬고 있습니다
12시간 가까운 산행에도 지친 기색이 없는 부러운 모습입니다.
허기진 배를 대충 채우고 보니
넘어진 분의 상태가 병원을 가야 될 것만 같아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빠르게 짐을 챙겨 창원으로 달립니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심하지 않은 타박상이라 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그 지리산을 이야기합니다.
그 산에서의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술 한잔 제대로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말합니다.
지리산이니까요.
지나고 나면 힘들었든 기억이 좋게 포장되어
추억이 되겠지만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무모하고 무리하게
강행된 산행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든 이번 산행에서
또 한번 크게 뉘우치고 배웁니다.
산에서는 더욱 철저하고 세밀히 계획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
롯지에서 도움 주시고 걱정 해 주신 마야고 님과 유화 누님,
새벽까지 걱정된 마음으로 전화하신 호진 형님과 옥자 님
거듭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