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정에서 벽소령을 향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한참 위를 가고 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상관없습니다.
이민진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도 그렇게 시작됩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맞습니다, 비 따위가 상관있나요.
우산을 써고라도 갑니다.
꼭 가고자 하는 사람은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가기 싫은 사람은 갈 수 없는 핑계만을 생각하는 법이지요.
우리 은의 님은 아주 작은 쓰레기 하나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조리, 가차 없이, 다 주워버리겠다는 의지로 바람직한 청소 산행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가을은 가을인 것 같습니다.
편안한 작전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도 휴식은 필요합니다.
저 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119 구조대가 올라옵니다.
비는 멈추었다 내렸다, 맑았다 흐렸다 합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 같습니다.
우리 팀장 님에게는 청소 산행 청소 상이라도 드려야 합니다.
혹, 노벨 청소 산행상 그런 게 있다면 후보 추천입니다.
고도가 높아 갈수록 쓰레기봉투는 더 불룩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땅에 묻혀 있는 쓰레기까지 후벼 파 치우기 때문입니다.
잠시 빗방울이 멈추면 저 먼 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름답습니다.
오늘 산꾼들의 모습은 저 풍경 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전화가 옵니다
우리 팀만 빼고 다 오셨답니다.
속도를 냅니다.
대피소 입구에 해영 형님이 마중 나와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반겨 줍니다.
대피소 취사장으로 들어 서자 산유화 님 추모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벌써 새어 나오는 훌쩍이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억누를 수 없고, 눌러지지 않는 감정의 폭발입니다.
추도문 낭독을 해야 합니다.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도 있다.'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차분하게, ' 긴 호흡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올라오는 길에 일부러 막걸리도 몇 잔 미리 먹었는데....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습니다.
간신히 읽기는 읽었지만, 아, 참 내, 쪽팔리구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우리는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그게 삶이고 생활이고, 그게 사람이니까요.
'삶'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제 '삶'속의 사람들은 겁나 좋은 분들 뿐입니다.
특히, 지리산에서야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날 청소 산행에는 총 24명이 참여 하셨습니다.
해영,연하,답지,아부다비,황산,소나타,임우식,
성주숙,비천무,산친구,최정남,구절초,엉겅퀴,자향,
황순진,봄이,강진,미뇽,몽지리,수야,이순애,
황산지기,김은의,목하 (존칭생략)
전통을 이어 갑니다.
윤회 인사를 나눕니다.
답지 님만 벽소령에 남겨두고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걸음이 가볍습니다.
세상으로 걸어가는 걸음도 아마, 이제 이렇듯 경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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