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3.09.10 안한수내(절터골)

지리99 수야 2023. 9. 23. 12:39

절터골(나무골)

 

행동팀 135차 정기산행

일시:2023년 09월 10일 (일요일)

산행 참석자: 연하, 황순진, 나비부인, 최정남, 성주숙, 수야 (6명)

걸어간 산길:안한수내-절터골-임도-무명폭포-통천문-

폭포-전망대-왕시루봉 능선-봉애산 능선-통천문-절터골 갈림-안한수내

산행시간:07시 33분~16시 59분(9시간 26분) 8.4km

2023-09-10 안한수내 절터골.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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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국도변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자리한 ‘송정리’는 4개의 작은 마을로 나뉘는데, 각각 한수내(寒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마을이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던 것을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나무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다.

 

07시 38분

안한수내(송정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은 왕시루봉과 봉애산 자락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무척 조용했다.

그 흔한 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한교를 건너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며 마을과 멀어졌다.

 

 

07시 41분 

마을 끝 철문이 빼꼼히 열려있었지만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저어 되었다. 

뒤 떨어져 오든 일행과 한 번에 통과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빠르게 통과했다. 

겁 많은 성여사는 이 순간부터 맨 앞으로 나서며 행동이 매우 민첩하고 기민하였다. 

그렇게 힘차게 쏜살같이, 쭉 빠져나가든 그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급 피곤이 몰려온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녀가 지리산에서 뱀보다, 곰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은 주민의 제지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대상은 그분들이다.



 

07시 45분 

포장도로가 끝나고 모노레일이 있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두릅나무 밭과 밤나무 밭을 지나가자 계곡의 합수점이 보였다. 

이곳에서 우측은 우리가 가는 절터골(나무골)이 되고, 좌측은 절골 (옥박골)이 되는 모양이었다. 

좌골 <절골>을 현지인들은 옥박골이라 부른다 하더라.



08시 23분
졸졸 흐르는 계곡 옆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저 앞이 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사 중인 임도가 나타났다.

배수로 옆 공사길로 올라서고 배낭을 내렸다.

이 임도는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 지도를 놓고 토론하였으나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임도가 완성된다면 이곳을 산행 기점으로 시작할 수 있어 절터골 접근이 무척 쉬워질 것 같았다.



임도 건너편 사진의 저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길이라 표현하기에는 애매하였으나, 지나간 선답자들의 흔적은 확실하였으므로 의심치 않고 계곡을 따라 올랐다.





09시 58분
점점 각을 세우기 시작하더니 계곡이 오를수록 계곡답고 야무졌다.

작은 몇몇 폭포가 지나갔다.

 




10시 05분

네 발로 기어오르다 머리를 들어 보니 거대한 바위가 계곡 전체로 완전히 걸쳐져 마치 계곡이 막힌 듯하였다.

걸쳐진 바위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그 사이로 쉽게 통과할 만큼 넓은 공간이 있었다.

통천문이라 이름 하여도 하등 손색없어 보였다.








이 바위 아래를 통과하기 전, 또 한 번 배낭을 내리고 쉬었다. 

아침을 먹은 지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어김없이 점심은 언제 먹을 거냐는 볼멘소리가 가시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듣지 못한 척, 안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하였다. 

목구멍에 잔뜩 힘이 들어간 앙살스러운 높은음이 다시 계곡 물소리 보다 크게 울렸다. 

짧게 답했다 "전망대 가서" 

"전망대는 언제 나오는데?" 같은 톤의 되물음. 

"한 참 가야 되지 싶은데, 모르겠다. 밥 대신 뭐라도 좀 먹어 보소" 

연하 형님이 배낭을 뒤지더니 떡을 떡하니 내놓았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떡 벌어지게 한 입씩 떡을 먹었고, 떡 힘으로 벌떡 일어섰다. 

이런 떡이 있나!!



통천문을 지나자 폭포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고 바라보는 곳마다 쉬고 싶었다.

언젠가 뽓대 형님이 말한 기억 때문이다.

'나무꾼은 힘들면 쉬고, 산꾼은 경치가 좋으면 쉰다.'



폭포를 거슬러 직등으로 오르는 길은 짜릿한 맛이 있어해 볼 만했다.

개구리가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듯 네 발로 바짝 붙어 오르면서 힐끗 뒤 돌아보았다.

다 따라오는 중인 줄 알았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니 가는 거 보고 안 떨어지면 가고, 위험하다 싶으면 안 가겠다'는 저들의 의지가 또렷이 보였다.

마치 의붓자식 소 팔러 보낸 것 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개떡 같은....

최대한 안 위험 한 척, 자연스럽게 보이면서 오르려 애를 썼다.

그래도 결국, 저들은 옆으로 난 우회 길을 찾아 올라왔다.




아마 이 골짝 최대의 폭포이지 싶었다.

수량이 많은 때 같으면 지리산 이름난 어느 폭포도 부럽지 않을 것 같은 곳을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따라오지 않고 우회 길을 찾아 산으로 향했든 모두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길임을 인지하고 다 돌아와 내 뒤에 섰다.

우회를 할 수 없다, 길은 이 길 뿐이다. 직벽이다.

앞서 시범을 보였다. "요래, 요래 딱, 발을 짚고 팔에 힘을 딱 주고....."




10시 55분

축대가 튼튼히 쌓여있고, 축대 위에 제법 넓은 터가 나타났다.

연하 형님은 아마도 이곳이 절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였다.

그리보니 그런 것 같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시 걸어 올랐다.



이후의 산길은 물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다 한순간 사라졌고 오름이 계속되었다. 

마지막 물길에서 수통을 채웠다.

연하 형은 물을 마시고 난 뒤 물 맛이 달다고 하였다. 

비탈이 가팔랐다, 말없이 천천히 꾸준히 걸어 올랐다. 

말없이 산 길을 걸었다는 의미는 힘들다는 다른 표현으로 갈음하시면 된다.

곧이어 점심 먹을 전망대에 도착했다.



11시 50분

전망대 뒤쪽으로 살짝 돌아가자 넓고 평평한 비박지가 나타났다.

점심을 먹었다.

그때부터 여인네들의 목소리는 갓 지은 흰쌀밥처럼 윤기가 촤르르 흐르며 기름졌고 부드러워졌다.

가을을 굽었고, 무침도 해 먹었다. 술은 먹지 않았다.

당분간 금주를 할 생각이다. 몸무게를 5kg 올릴 때까지.

지난 1년 동안 바쁘게 살았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덕분인지 몸무게가-정확히는 근 손실이- 엄청나게 확 줄어 버렸다.

평생을 운동하며 살아오든 몸도 한 1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니 표 나게 확 줄어 버리더만.

옷이 모두 헐렁해지고, 어디 아프냐고 묻고, 거울 속 내 모습에 내가 헐~, 할 정도로 몸이 축이 나더란 말이지.

몸을 다시 만들 결심을 했다.

그래서 술부터 당분간 딱 끊기로.....



점심을 먹고, 넓은 너럭바위에서 시간을 즐겼다.

섬진강이 남부능선과 광양의 백운산 자락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 강산은 저랬을 것이다.

한없이 평온하고 안온해 보였다.

가을 같은 선선한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산하는 감동적이었다.

구름과 바람과 하늘이 주는 그 감동은 치사량에 가까웠다. 

이런 것 때문에 저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든 모든 과정은 잊히고, 그것조차 즐거움이 되는 것 인가 보다.

삶의 나날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온몸, 온 마음이 마운틴 오르가슴이다.





비박터에서, 전망바위에서, 한가롭게 오래 쉬며 놀았다.

바쁠 것 없는 여정이었으므로 느긋했다.

가을, 고운 단풍이 물들면

이 골짝으로 다시 올라 더 느긋하게 오래도록 저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고 싶어졌다.

내려가는 길은 저 골짝으로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가지 않게 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눌러지지 않았고, 결국 말이 되었다.

모두가 오케이로 답했다.

지리산도 답하는 듯했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상봉은 구름이 걸려 자꾸만 가려졌다.

그래도 계속 눈길이 갔다.

그리운 그대를 멀리서 바라보는 애잔한 눈빛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전망대에서 왕시루봉 능선으로 나가는 길은 뚜렷하였다.

왕시루봉 능선에 붙고 난 뒤, 선교사 유적지로 가든 걸음을 멈추고 의논했다.

모두 한두 번씩은 가 본 곳인데,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그래 그냥 패스하자. 합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능선길을 따라 봉애산 갈림길까지 빠르게 걸었다. 

 

오후 2시 봉애산 전망대 







 

오후 2시 33분 

봉애산 전망대에서 내려서는 길은 또 한 번 내리 쏟아지는 비탈을 지나야 했다. 

깎아지른 비탈을 벗어나자 길은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갔다. 

봉애산 능선에도 통천문이 있었다.(고도 1,100m 부근) 

하기야 이 지리산에 이런 곳이 어디 한 두 곳이겠는가. 

 

오후 3시 38분 

봉애산 능선을 따라 계속 고도를 낮추든 산길은 고도 830m 부근에서 갈림길과 만났다. 

직진으로 계속 길을 따르면 봉애산으로 가는 길이라 이곳에서 주의 깊게 길을 살펴야 이 길이 보인다. 

내림기준 우측으로 길이 있어 내려 서기가 어렵진 않았다.




오후 4시 20분 

두 사람이 내가 내려온 곳으로 따라왔다. 

앞의 성여사가 저렇게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몸에 퍼렇게 멍이 들었다. 

뒤에 최여사가 똑 같이, 똑같은 자리에서 넘어졌다. 

이럴 때 쪽팔림은 좀 덜 한 법이다. 너도 넘어지고 나도 넘어졌으니까. 

다 같이 겪는 난리는 난리가 아니다, 나 혼자만 겪는 난리가 진짜 난리 아니든가. 

아마도 엉덩이가 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여사와 비슷하겠지. 

지리산을 다니기 전과 다니고 난 뒤부터 확실하게 내가 변화한 것이 있다. 

산을 다니기 전에는 다치거나 하면 그런 산에는 왜 가느냐고 했을 일을, 

지금은 그나마 산신령이 도우셔서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비단 산에 국한되어하는 말이 아니다. 

살면서 피하지 못하는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더 나빠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지리산을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 잡힌 긍정적인 효과이다. 

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식하게, 폼 나게 말하면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원한다면, 꼭 가고 싶다면, 벌금 따위가 뭐 대수일까. 

내 삶의 우선순위, 강력하게 원하는 일은 그 대가를 지불하고 도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넘어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넘어질지 모르는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지레 겁부터 먹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더라.

소설가 이외수가 그러더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그뿐이라고.

그러니 산 길에서, 삶에서 간혹 넘어져도 실망하지 말 일이다. 아직도 갈 길은 남아 있고 나는 걸어야 한다.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나는 지금 그런 산행을, 그런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내가 지리산에서 배운 값진 교훈 들이다.

넘어질 용기 있는 그대들 그러니 넘어진 것에 결코 부끄러워 말라!

근데, 이때 은의는 어디로 갔지?.....



봉애산 능선에서 째고 내려온 길은 아침에 올라갔든 안한수내 좌골과 우골이 갈리는 합수부 부근으로 떨어졌다.

우골로 올라 좌골로 내려왔다는 대구에서 온 산꾼들이 계곡에서 씻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차마 씻지 못했다. 저 사람들처럼 그냥 씻자고 하였으나 팀장님과 연하 형님은

식수원 표지가 붙어 있는 곳이라 차마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올바른 마음 가짐이었고, 바람직한 마땅한 말이었다.

차를 몰고 나가 다른 곳에서 씻었다.

 

 

오후 4시 57분 

들어갔든 곳으로 다시 나왔다. 

들어갈 때보다는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물론 아무도 제지하거나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다. 

하산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방울의 술도 먹지 않았다. 

내 지리산행 중 이런 날이 몇 번이나 있었나? 

산행기 올리는 일이 많이 늦었다. 이 이전 몇 번의 산행은 아예 올리지 못했다. 

게을러서가 결코 아니다. 바빠서 이다. 

사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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