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2.07.17 웅석봉(박)

지리99 수야 2022. 7. 28. 14:35

웅석봉

 

일시:2022년 07월 17일(일요일)~18일(월요일)

산행자: 수야

걸어간 길:내리 저수지-강신등폭포-왕재-헬기장-웅석봉 샘-웅석봉(왕복)
산행 시간:17일 10시 44분~18일 13시 05분 (26시간 20분)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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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가 가까워진 시간. 

햇볕은 강렬하고 맹렬히 눈을 찔러 대며 머리 가죽이라도 벗겨 버릴 기세였다. 

주차를 하고 산행 체비를 끝낸 그늘을 벗어나자 열기는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처럼 숨을 가쁘게 했다. 

7월의 여름 포장도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철판 위를 걷는 듯 온몸의 땀구멍이 한순간에 열려 버렸다. 

죽어라 외쳐 대는 매미 소리는 날카롭게 찔러 대는 비명처럼 앙칼지고 끈질겼다. 

묵직한 비박 배낭의 무게는 생각보다는 견딜 만하다는 자신감이 흐르는 땀만큼이나 가득했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완전하고 완벽한 고독. 

1박 2일 동안 그 절대 고독을 이 산에서 나는 향유해 보리라.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동안 땀을 비오 듯 쏟아 내면서도 박 짐도 짊어질 만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과한 욕심이었고 자신감이었다. 

급기야 쓸데없는 곳에서 이상하게 발현되는 내 도전 정신은 더위 때문인지 치명적 오류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곰골로 한번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으니 말이다. 

곰골로 들어서고 경사의 산길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이게 아닌가 보다 싶었고, 앗 뜨거라 하고 제정신이 들었다. 

다시 돌아 내려왔다. 

트랙의 곰골 방향 빨간 꼬랑지 부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돌아 나와 선녀탕이 있는 왕재길 입구에서 배낭을 내리고 깊이 쉬었다.




계곡의 수량이 얼마나 미약한지 매미 소리와 물소리의 데시벨이 엇비슷했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걷고 싶어서 천천히 걷는 걸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낭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에 축적되면서 걸음은 자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첫 번째 목교를 만나고 배낭을 벗어 놓고 퍼질러 앉아 숨을 토해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라면이라도 끓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쉬었다.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쉬는 것, 먹는 것, 뀌는 것, 홀로 산행에서 할 수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샘에서 윗옷을 홀랑 벗어 빨아 입었다. 찹찹한 냉기가 얼마간 달궈진 몸을 식혀주었다.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머리에서도 열기를 뽑아냈다. 

깊은숨을 내뱉고 나자 여태 의식하지 못했든 것들이 자세히 보였는데 

날개 달린 아주 작은 괴생명체들의 학술적 명칭을 알지 못하지만 그놈들은 참으로 끝내주는 인내와 끈기로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딜 가든 따라와서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귀와 입 그리고 콧구멍 귓구멍으로 옮겨 붙었다. 

인간의 땀이 그놈들에게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환희의 절정을 선사하는 게 분명했다. 

그놈들은 특히 앉아 쉬면서 물을 마실 때 사정없이 들러붙곤 했다.



 

왕재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에서는 입이 저절로 벌어져 혓바닥이 늘어났다. 

늘어난 혓바닥으로 길에다 중안선을 그어도 될 만큼 고개를 처박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위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였다. 

웅석봉에서 내려오며 쉬고 있든 사람이 인사를 해 왔다. 밤머리재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남의 속도 모르는 그분은 박 산행하는 내가 한없이 부럽다고 하며, 자신도 한 때는 비박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랬든지 말든지 나는 배가 고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분이 떠나고 배낭을 풀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점심이었다. 원래는 웅석봉 샘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견디기 힘들 때 마음은 몸과 야합한다. 

산에서의 배고픔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다.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터이다.




왕재에서 웅석봉으로 가는 길에 전망대에 올랐다.

상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흐렸다.



올라온 내리 저수지가 아득하게 아래로 보였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고글을 벗어 배낭에 넣어 버렸다. 

나는 땀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 유독 얼굴과 목에서 땀이 많이 나는 편이다. 

고개를 숙이자 고글에 댐에 담수를 하듯이 땀이 들어차 눈알이 익사할 것만 같았다. 

물병을 들고 샘으로 갔다. 꽐꽐 쏟아지는 샘에서 배가 부르게 물을 마시고, 또 옷을 빨아 입었다. 

배낭의 무게는 물병이 몇 개 더해지자 히말라야를 짊어진 것만 같이 무거워졌다. 

배낭을 둘러맬 때 '아이고 C 봐라~'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나무 계단을 겨우 다 오르고 숲 길로 들어설 때 숲 속에서 검은 뭔가가 스윽 움직이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되었다. 

처음에 곰인가 싶었는데 이놈이 길가로 지 스스로 나와서 신분을 당당히 밝혔다. 

이 명랑하기 짝이 없는 어린노무어 새끼는 다음날 하산할 때 지 아부지랑 어무이까지 데리고 나와 내게 인사를 했다.

제법 예의를 아는 빼 대 있는 집안의 염쇠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숨죽인 고요와 적막 만이 바람처럼 정상에 떠돌고 있었다. 

절대 이별하지 않을 것 같았든 벌레들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동안 그냥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다. 이런 걸 세간의 사람들은 멍 때리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모양이더라. 

좋았다, 혼자라는 것, 그것, 그것이 좋았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었다. 혼 술이야 익숙하니 넘어가는 술잔이 급할 것도 없이 느긋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전망 테크에 다시 올라가 캔 맥주를 땄다. 
먹물이 번져가듯 어둠은 산과 산 사이를 파고들며 번져 갔다. 
젊은 한 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화살 같은 삶. 
온몸을 날려서 자신이 목표로 하는 오로지 하나의 과녁을 향해 직진으로 나아가서 꽂히는 삶. 
그러면서도 다 하지 못한 나머지 힘을 마지막까지 쏟아 부우며 화살 끝이 부르르 떨며 소진하는 삶. 
사랑도 삶도 온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붓는 그런 삶을 꿈꾸었고, 그리 살아 보고자 했었든 때가 있었다.
 
 
두 번이나 읽었든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처럼 사는 삶을 생각한다.
그의 현재 지금에 집중하는 카르페디엠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부러워진다. 
보여주기 위한 것을 버릴 때, 보아야 할 삶이 보이는 법이다. 
후회와 회한이 왜 없을까만 그런대로 잘 달려온 날들이라는 생각도 가끔은 들었다. 
철저한 이 고립의 고독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르바처럼 감사한 마음이 생겨났다. 
인간은 혼자 일 때 진실로 진실해지는 법이다. 
혼자서 오르는 산은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삶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도 대신하여 올라 주지 않는 산,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삶,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는 산을 내가 그렇게 올랐든 것은 
결국 이렇게 나에게로 가는 길이었든 모양이다.
남이 가진 것에 내 마음을 빼앗기고 , 내가 가진 것과 아는 작은 것을 부풀려 자랑하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 하찮은 우월감에 도취되었든 날들이 부끄러웠다. 
지구 상의 동물 중에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다. 
내 삶에서 멈칫거릴 때마다 나는 이제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달리기를 하는 도중에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가면 멈추어 서서 돌을 빼낼 것인가, 불편해도 그대로 다릴 것 인가를 고민한다. 
뒤처지더라도 멈추어 서서 돌을 빼내는 것은, 그래야 더 빨리 잘 달릴 수도, 끝까지 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신발에 그 돌멩이를 빼내려 잠시 멈추어 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면 지금까지는 대답이 궁색하였으나 이제는 그 대답이 명확해졌다. 
나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하므로 신발에 돌멩이를 빼내려 잠시 멈추려 가는 것이다.
 
 
멕시코 출신 가수 티시 히노호사(Tish Hinojosa)가 어디로 가야 하냐며, 애잔하게 읊조리는 돈데보이(Donde Voy)가 텐트 속에서 흘렀다. 
지랄이 넘치면 풍년이 되는 지랄 풍년의 법칙이다. 그러면 어떠랴. 여기는 지금 나 혼자인데 뭐. 
잠이 들었다가 비 소리에 잠이 깨어났다. 
밖에 있는 모든 것을 텐트 안에다 가져다 놓았다. 아, 일출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것 인가보다. 
새벽 4시. 
카톡에서 걱정하는 문자가 날아들더니 기어이 전화가 걸려오고 산에 있는 나보다 산 아래의 사람들이 더 걱정이 많다. 
정작 나는 느긋하고 졸리기만 하다. 일단 한 숨자고 생각해 보겠다는 답을 보낸다. 
호우 주의보 재난 문자가 뜬다. 빗방울은 굵어지고 비는 쉽게 멈추지 않을 기세로 거세지고 맹렬해진다. 
비는 날이 훤히 밝아도 지칠 줄 모르고 타자 치는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아침을 먹고 음악을 듣고 비 내리는 텐트 속에서 비를 바라보다 또 누워 잠을 잤다. 
애초에 내가 생각한 찬란한 아침은 없었다. 
상쾌한 공기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불구덩이가 쏟아 오르는 일출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맞이하는 그런 산속의 아침. 
그런 아침이 아니라 비 속에서 맞이하는 텐트 속 아침이지만, 눈곱만큼도 후회는 없었다. 
텐트 속에서 짐을 꾸리고 마지막으로 텐트를 접었다. 
11시 하산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전화기도 배낭에 넣어 버린다.
 
 
하산을 시작하고 딱, 한 번을 쉬었다.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걸었다.
처음 젖지 않으려 입었든 우의는 쉬면서 벗어버렸다. 이왕 버린 몸. 
다 젖어 버리니 차라리 자유로웠다. 우의를 벗고 비를 맞으며 걸으니 시원하기만 했다.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무들 사이의 틈을 채웠다.
 
왕재에서 내려오는 옆 계곡은 물이 집어삼킬 듯 흐르며 웅장한 폭포가 생겼고, 물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들어갈 때 보았든 선녀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곡은 넘쳐 나고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으나 약해졌다. 화장실에서 흙탕을 대충 씻어내고 차에 앉았다. 
연하 형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농담으로 아직 산에 그대로 있다고 했더니 먹을 것을 지고 올라오겠다고 한다. 
의리의 사나이다, 감동받아 하마터면 사랑한다고 고백할 뻔했다. 
지리산 나의 첫 박 산행은 웅석봉에서 이렇게 시작되고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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