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석봉
일시:2022년 07월 17일(일요일)~18일(월요일)
산행자: 수야
걸어간 길:내리 저수지-강신등폭포-왕재-헬기장-웅석봉 샘-웅석봉(왕복)
산행 시간:17일 10시 44분~18일 13시 05분 (26시간 20분) 10km

오전 11시가 가까워진 시간.
햇볕은 강렬하고 맹렬히 눈을 찔러 대며 머리 가죽이라도 벗겨 버릴 기세였다.
주차를 하고 산행 체비를 끝낸 그늘을 벗어나자 열기는 절정으로 치닫는 그 순간처럼 숨을 가쁘게 했다.
7월의 여름 포장도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철판 위를 걷는 듯 온몸의 땀구멍이 한순간에 열려 버렸다.
죽어라 외쳐 대는 매미 소리는 날카롭게 찔러 대는 비명처럼 앙칼지고 끈질겼다.
묵직한 비박 배낭의 무게는 생각보다는 견딜 만하다는 자신감이 흐르는 땀만큼이나 가득했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완전하고 완벽한 고독.
1박 2일 동안 그 절대 고독을 이 산에서 나는 향유해 보리라.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동안 땀을 비오 듯 쏟아 내면서도 박 짐도 짊어질 만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과한 욕심이었고 자신감이었다.
급기야 쓸데없는 곳에서 이상하게 발현되는 내 도전 정신은 더위 때문인지 치명적 오류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곰골로 한번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으니 말이다.
곰골로 들어서고 경사의 산길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이게 아닌가 보다 싶었고, 앗 뜨거라 하고 제정신이 들었다.
다시 돌아 내려왔다.
트랙의 곰골 방향 빨간 꼬랑지 부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돌아 나와 선녀탕이 있는 왕재길 입구에서 배낭을 내리고 깊이 쉬었다.

계곡의 수량이 얼마나 미약한지 매미 소리와 물소리의 데시벨이 엇비슷했다.

아주 느리게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걷고 싶어서 천천히 걷는 걸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낭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에 축적되면서 걸음은 자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첫 번째 목교를 만나고 배낭을 벗어 놓고 퍼질러 앉아 숨을 토해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라면이라도 끓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쉬었다.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쉬는 것, 먹는 것, 뀌는 것, 홀로 산행에서 할 수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샘에서 윗옷을 홀랑 벗어 빨아 입었다. 찹찹한 냉기가 얼마간 달궈진 몸을 식혀주었다.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머리에서도 열기를 뽑아냈다.
깊은숨을 내뱉고 나자 여태 의식하지 못했든 것들이 자세히 보였는데
날개 달린 아주 작은 괴생명체들의 학술적 명칭을 알지 못하지만 그놈들은 참으로 끝내주는 인내와 끈기로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딜 가든 따라와서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귀와 입 그리고 콧구멍 귓구멍으로 옮겨 붙었다.
인간의 땀이 그놈들에게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환희의 절정을 선사하는 게 분명했다.
그놈들은 특히 앉아 쉬면서 물을 마실 때 사정없이 들러붙곤 했다.

왕재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에서는 입이 저절로 벌어져 혓바닥이 늘어났다.
늘어난 혓바닥으로 길에다 중안선을 그어도 될 만큼 고개를 처박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 위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였다.
웅석봉에서 내려오며 쉬고 있든 사람이 인사를 해 왔다. 밤머리재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남의 속도 모르는 그분은 박 산행하는 내가 한없이 부럽다고 하며, 자신도 한 때는 비박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랬든지 말든지 나는 배가 고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분이 떠나고 배낭을 풀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점심이었다. 원래는 웅석봉 샘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견디기 힘들 때 마음은 몸과 야합한다.
산에서의 배고픔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다.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터이다.

왕재에서 웅석봉으로 가는 길에 전망대에 올랐다.
상봉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흐렸다.

올라온 내리 저수지가 아득하게 아래로 보였다.

헬기장에 도착하여 고글을 벗어 배낭에 넣어 버렸다.
나는 땀이 많은 편이다. 그중에 유독 얼굴과 목에서 땀이 많이 나는 편이다.
고개를 숙이자 고글에 댐에 담수를 하듯이 땀이 들어차 눈알이 익사할 것만 같았다.
물병을 들고 샘으로 갔다. 꽐꽐 쏟아지는 샘에서 배가 부르게 물을 마시고, 또 옷을 빨아 입었다.
배낭의 무게는 물병이 몇 개 더해지자 히말라야를 짊어진 것만 같이 무거워졌다.
배낭을 둘러맬 때 '아이고 C 봐라~'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나무 계단을 겨우 다 오르고 숲 길로 들어설 때 숲 속에서 검은 뭔가가 스윽 움직이는 것이 본능적으로 감지되었다.
처음에 곰인가 싶었는데 이놈이 길가로 지 스스로 나와서 신분을 당당히 밝혔다.
이 명랑하기 짝이 없는 어린노무어 새끼는 다음날 하산할 때 지 아부지랑 어무이까지 데리고 나와 내게 인사를 했다.
제법 예의를 아는 빼 대 있는 집안의 염쇠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숨죽인 고요와 적막 만이 바람처럼 정상에 떠돌고 있었다.
절대 이별하지 않을 것 같았든 벌레들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동안 그냥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다. 이런 걸 세간의 사람들은 멍 때리기라는 말로 표현하는 모양이더라.
좋았다, 혼자라는 것, 그것, 그것이 좋았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었다. 혼 술이야 익숙하니 넘어가는 술잔이 급할 것도 없이 느긋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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