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골
행동팀127-지리100차
일시:2021년 05월 30일(일요일)
산행자:연하,권영구,이광용,최규다,들풀,이종철,최미희,김은의,최옥희,최정남,성주숙,수야 (12명)
걸어간 길:심원샘터-대소골-반야비트골-이끼폭포-반야비트-반야중봉-심원능선-심원
산행시간:06시 52분~18시 40분 (11시간 47분) 11.5km
생명 있는 것들 대부분은 죽고 나면 딱딱하게 굳어진다.
사람의 표정이 굳어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표정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표정이 굳어지면 말투도 야물고 딱딱해지며, 주위가 온통 경직되고 멀다.
몸을 풀기 위해 운동을 하듯이, 나는 또 산으로 가야 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대소골을 다시 가보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광용 아우가 대소골 이야기를 꺼내길래 이번 산행지로 정해 두었다.
심원마을이 없어지면서 드나들기가 쉽지 않아 지도를 놓고 한참 고민을 했다.
방아골 합수부 지점으로 내려서는 지형을 오룩스 맵으로 몇 번이고 보면서 생각해 두었다.
다른 때 보다도 더 이른 시간 집을 나서고, 서둘러 심원 샘터로 갔다.
먼저 도착한 규다네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이동을 했다.
노고단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다가 미리 생각해 두었든 지점으로 빠르게 들어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산꾼들이 많았든 모양이다.
이미 그곳으로 길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염려했든 것과는 달리 계곡까지 너무 쉽게 닿았다.
861번 도로변 그 지점에서 계곡까지 25분이 걸렸다.
방아골 합수지점에서 배낭을 풀고 아침을 먹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기로 하고 도시락을 각자 가져오기로 했는데, 펼쳐 놓고 보니 아침부터 성대했다.
남은 음식은 내려올 때 다시 가져가기로 하고 이 지점에 두고 가자고 규다가 제안했다.
다시 배낭에 지고 갈 생각만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해 낸 친구가 천재다 싶었다.
방아골 합수부를 지나 본격적인 대소골 산행이 시작되었다.
규다와 들풀님이 이번 산행에 온다고 했기 때문인지, 이번 산행에는 참석자가 많았다.
골짜기가 시끌벅적했다.
대소골은 임걸령, 노루목, 반야봉 자락에 흘러내린 물이 모아지고, 심원마을 앞에서 노고단 골과 다시 합쳐져 달궁으로 흘러간다.
주능선 돼지령 부근에 기우제를 지내는 못(沼)이 있었는데, 기우제 제물로 돼지를 산채로 소에다 바쳤다는 전설에서
대소골 어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돼지를 바쳤든 그 소(沼)를 <돼지 소> 혹은 <돝 소>라 했는데 <돼지 소 골>이 변음 되면서 <대소골>이 되었다 한다.
하긴, 이 좋은 산에서 얼굴 표정이 굳어 있을 이유가 없겠지만, 다들 싱글벙글 환하게 밝았다.
길이 험하지 않았고, 물소리까지 청정하였으니, 이 산속에서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폭의 하얀 포말은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대소골은 가파르게 각을 세우거나 급하게 낭떠러지를 만들지 않은 채 완만하게 고도가 서서히 높아져 갔다.
시끌벅적하게 골짜기를 온통 우리가 차지하고 오르는 중에, 아래에서 두 사람이 올라왔다.
어디로 들어왔는지를 서로 물었다.
그분들은 심원마을로 바로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선 길은 짧았지만 경사가 있어 나갈 때 우리도 심원마을로 나가 보기로 했다.
나와 대화는 짧았는데, 뒤에 있는 우리 일행들과도 대화를 나눈 모양이었다.
대전에서 왔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들었고, 혹시 지리구구에 글을 올렸든 그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건너편으로 이미 멀리 떨어져 있어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두 분은 임걸령 샘골 방향으로 얼마 후에 모습을 감추었다.
임걸령 샘골 합수부를 지나고 휴식을 했다.
서로의 배낭에 있는 과일과 간식을 먼저 내려고 애를 썼다.
캔 맥주는 두서너 명만이 자꾸 마셨다.
빨리 먹어서 없애버리려고 했는데, 하산할 때 까지도 그것은 자꾸만 나왔다.
그 무거운 것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주는 데로 자꾸 받아 마셨다.
계곡 좌우로 사태의 흔적들이 몇 군데 있었고, 쓰러진 고목들이 어지럽게 계곡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초록의 이끼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곳도 여러 군데 있었다.
계곡의 길이 막히면 계곡 옆으로 길이 있었고, 그곳에 길이 사라지면 계곡을 다시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이상적인 만남은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과 있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너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참 좋은 사람이 된다
각박한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날 선 감정을 세우고 있는 나에게
온화함을 가르쳐 주고
바쁜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놓치며
후회 가득한 삶을 사는 나에게
느긋함을 가르쳐 주니까
너와 함께있으면
모든 것이 나아진다
이전에 나는 없어지고
아름다운 사람만이 남는다.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중에서
허락 없이 사진을 걸었으나, 초상권 침해 등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말랑말랑한 이 아름다운 아이컨택을 감추어 두기엔 아까웠다.
임걸령 골 합수부를 지나고 노루목 골 합수부에 닿았다.
직진으로 계속 골을 따라 오르면 주능선 노루목으로 오르게 된다.
우리는 좌측 골로 방향을 틀어 올랐다.
이 골은 반야 중봉 아래 반야 비트(빨치산 터)가 있어 산꾼들 사이에서 반야 비트 골로 불리고 있다.
나는 이골의 지명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으니 <반야 비트 골>이라고 그대로 쓰기로 했다.
계곡으로 들어 서자 대소골과 달리 수량이 줄어들면서 거칠어지고 고도를 급격히 세우기 시작했다.
위에서 계속 흘러내리든 물이 간간히 사라지는데, 발아래 바위들에서는 흘러가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물 없이 조금 이어지든 계곡은 얼마 후 또다시 물을 토해냈다.
이끼 낀 암반에는 바위떡풀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노루목 골 합수부에서 반야 비트 골로 한 시간 정도를 오르자 고도 1385m 부근 너들 지대 좌측에서 희미한 폭포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야 하는 길에서 약간 벗어나는 곳이라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 이끼폭포로 갔다.
이단 삼단으로 실타래를 풀어내듯 물줄기가 떨어지며 연초록 풀들이 가득하였다.
숨은 비경이었다.
이곳에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끼폭포에서 돌아 나와 능선길을 타고 올랐다.
얼마 후 계속 직진 방향으로 오르는 희미한 길이 있고, 좌측으로 반야 비트로 들어서는 너들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반야 비트로 들어서는 곳에 오래된 고목이 하나 서 있고, 그곳에서 앞이 확 트인 조망이 펼쳐졌다.
자세히 보면 노고단의 돌탑까지도 또렷하게 보였다.
암벽 앞에 공터가 펼쳐져 있고, 암벽 처마 밑으로 작은 동굴이 형성돼 있었다.
한때 빨치산 비밀 아지트로 이용되었든 곳이라고 한다.
점심을 이곳에서 먹었다.
굴 안에 떨어지는 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였다.
불쑥 나타난 세명의 산꾼에 잠시 놀랐고, 세명으로 알고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뒤이어 여러 명이 올라왔다.
우리보다 한 명이 더 많았다.
나중에 심원마을로 나갔을 때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한 이분들이 우리 차가 있는 곳까지 태워주었다.
부른 배를 안고 오르는 오르막은 숨이 몹시 차올랐다.
숨찬 오르막에서 만난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심원 능선 갈림길을 모르고 지나쳐 계속 오르다 보니 반야 중봉에 올라와 있었다.
어차피 이곳까지는 올라 볼 생각이었으니 괜찮았다.
기도를 하는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숲 곳곳에 정좌를 하고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심코 소변을 보러 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들도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우리도 우리 할 짓만 했다.
올라 온 길을 다시 내려가다 심원 능선으로 올라탔다.
길은 완만하고 순해서 걸어 내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길이 하도 잘 나있어 능선을 따라 생각 없이 걷다가 지도를 확인해 보니 잠시 트랙에서 벗어나 있었다.
되돌아가는 것이 옳은 길이었으나 째고 나가면 얼마 안 되는 거리다 싶어 산죽을 한참 헤집고 나가 트랙과 일치시켰다.
되돌아 가는 것이 백배 수월했는데 괜한 헛심을 빼고 말았다.
언제나 지나고 나서 보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 것이었다.
한바탕 땀을 쏟고 난 뒤, 뒤따라온 들풀님에게 길을 잠시 놓쳤었다고 고백하였더니
'그럴 수 있다, 괜찮다'라고 했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사용될 때 감동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원 능선을 완전히 내려서고, 아침을 먹었든 곳에 금방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한 곳으로 다시 오르는 것보다 수월 하겠거니 싶어 심원 마을 터로 나갔다.
아침에 만났든 대전의 산꾼들에게 들은 대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큰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으로 나가다 보니 카메라와 센서에 신경 쓰이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거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다 식었든 땀이 다시 삐질삐질 흘렀다.
아침에 들어왔든 곳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는데 하는 생각이 심원마을터를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계속 들었다.
오랫동안 다시 가고 싶어 했든 길을 걸었다.
날씨도 무척 좋았고, 함께 동행한 사람들도 더없이 좋았다.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내게 행운이다.
달궁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산에서 다 채우지 못한 나머지를 마음껏 채웠다.
그동안 경직되고 굳어 있든 표정은 산을 오르내리며 살아 있는 표정으로 풀렸다.
술잔이 늘어갈수록 마음도 느긋하게 더욱 풀어헤쳐져 웃음이 헤프 졌다.
일요일 저녁 지리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무척 말랑말랑 해졌다.
너를 만난 행복
용혜원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는 길
이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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