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1.05.02 곧은재 능선

지리99 수야 2021. 5. 12. 00:56

곧은재 능선

 

독오당 111차 정기산행

일시:2021년 05월 02일

산행자:다우, 엉겅퀴, 에스테야, 귀소본능, 수야, 최규다, 들풀 (7명)

걸어간 길: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주차장- 한신폭포-세석대피소- 영신봉-곧은재 능선- 백무동

산행시간:07시39분~17시 25분 (9시간 45분) 12.7km

2021-05-02 곧은재 능선.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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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룩스 맵 지도에는 한신 능선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을 지금까지 <바른재 능선>으로, 칠선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을 <곧은재 능선>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산행 중 대장님은 한신 능선으로 표기된 이 능선이 <곧은재 능선>이라 바로 잡아 주었다.

산행 후 인터넷으로 찾아본 이 능선은 <곧은재 능선, 바른재 능선, 한신 능선>으로 산꾼들마다 제각각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대장님께 다시 물었다.

한참 후 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90년대 백무동 주민들에게 직접 듣고 적어 놓은 메모장을 뒤져 기록을 확인해 보았단다.

그리고 백무동 현지인에게 전화로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곧은재 능선>이 정확하단다.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능선도 현지 주민들은 곧은재 능선으로 부르는데, 굳이 구분하자면 <작은 곧은재 능선>이라 했다.

지리구구 지명 탐구방에 2003년 한상철 님이 올린 게시물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어 참고가 될까 하여 첨부하였다.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22&wr_id=10&sfl=wr_subject&stx=%EA%B3%A7%EC%9D%80%EC%9E%AC+%EB%8A%A5%EC%84%A0&sop=or

백무동에서 보면 곧게 뻗어 내려오는 능선이라 하여 곧은재 능선이라고 하였으며, 한신계곡이 등산로로 활성화되기 전에는 곧은재 능선으로

마을 사람들이 지게 짐을 지고 오르내린 길이라 하였다.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 하산길이 이 곧은재 능선길이다.

 

독오당이 백 열한 번째 지리산에 들어가는 날이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자 에스테야 형님은 또 산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산행 시작 때 빗방울이 열 방울만 떨어지면 산행을 안 한다고 말하여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흐리고 쌀쌀하였지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규다와 들풀님을 백무동 주차장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지리산민 엉겅퀴 형님과의 산행도 몇 개월만이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후딱후딱 지나간다.

 

대장이 뒤쳐졌다.

그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 걱정이라 하더니 산행코스는 원대하게 잡아 놓았다.

늘, 그랬듯이 몸 풀리면 또 냅다 앞에서 빠르게 걷고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대장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천천히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하였지만, 대장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자주 쉬었다.

 

폭포의 물소리는 청량하고 경쾌했다.

녹음이 짙어진 숲 속은 기분을 좋게 하였고, 잠을 설치고 찾아든 산속에서 머리는 맑아졌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내리면 온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 향이 좋기도 하거니와, 공복에 마시는 카페인에 깨어나는 각성이 좋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리산은 커피와는 비교될 수 없는 또 다른 각성이다.

내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자각과 확신, 나로서의 그 깨어남이 나는 좋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다.

내게 지리산은 끊을 수 없는 중독의 짙은 카페인이다.

귀소본능은 멀리서 사진을 찍어 댓다.

엉겅퀴 형님의 걸음은 여전히 날래서 따라가기가 벅찼다.

형님은 느린 우리 걸음이 답답하였을 것이다.

제법 먼 거리를 걸었는데도 겉옷을 벗을 수 없었다.

쌀쌀했다.

 

한신계곡을 여러 번 들락거리면서 여태 한 번도 생각 못한 한신폭포를 보러 들어갔다.

엉겅퀴 형님이 앞에서 이끄는 대로 뒤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길이 험했다.

 

한신폭포의 상단부로 내려섰다.

폭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건너편으로 가야 했다.

수량이 풍부할 때라면 욕심을 내어 볼 만하였겠으나 위치를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다시 등로로 나오는 길은 숨을 헐떡이게 했다.

제대로 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주등로의 지루한 오르막을 꾸준히 걸었다.

​길 옆으로 잔설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고도를 높일수록 5월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장면이 점점 마구마구 강렬하게 펼쳐졌다.

한겨울에나 볼 만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이것이야 말로 행운이라고 말했다.

 

봄과 겨울의 충돌이 빚어낸 진달래와 눈, 오월의 설국은 신비로웠다.

대장님은 심지어 저 꽃을 따 먹고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까지 하였다.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손이 시려 불 가까이 손을 쬐고 있었다.

온통 구름에 가려 아무 조망이 없었다.

'와'하는 함성이 대피소의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몸을 돌려 본 세석평전에는 아주 짧은 순간, 또다시 눈 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장막을 가렸다 펼쳤다 하는 것처럼 햇볕에 잠시 잠깐 드러나는 세석평전은 여태 보지 못한 장면들이었다.

독오당이 올해 시산제를 잘 지낸 덕이라 하였더니

들풀님이 규다와 들풀이 같이 왔기 때문에 이런 행운이 따른 것이라 하였다.

그 말이 맞다고 모두들 수긍하였다.

 

점심을 넉넉히 먹었고, 기분 좋을 만큼 도수가 있는 곡차도 마셨다.

영신봉으로 가는 길 전망대마다 들어가 산아래와 건너의 능선을 조망하였다.

날씨는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능선의 상고대를 한동안 깊이 바라보았다.

 

남쪽의 먼 곳, 남해의 바다가 선명하였다.

그 위에 우뚝한 곳곳의 산 이름이 줄줄이 불렸다.

세석평전의 상고대는 봄 볕 아래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모조리 산화하였다.

세석은 다시 봄볕이 따사롭게 내렸다.

 

천왕봉 넘어 동부 능선으로는 봄볕이 더디게 스며들었다.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수필가, 1910-2007)

 

죽으려 갔다가 죽지 않고, 애정의 고통을 버리고 돌아온, 스물한 살 나이 같은 오월.

내 삶을 통틀어 이 오월은 딱 한 번뿐이다.

그냥 흘려보내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날들이다.

아직 남아 있는 청신한 오월 동안 나는 이 산에 또 올라올 것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즐거운데,

그래, 나이는 세어 무엇하겠는가.

 

우리가 살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든 것들이 인연이 되고, 그 인연들이 운명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오월 같은 웃음으로 나는 내 친구와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

 

좌고대를 지나갔다.

여러 번 지나갔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든 곳, 아니 정확히는 여기인 줄 몰랐든 곳이다.

지지지중지(之之之中知)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는 것.

산 길도 삶도 그런 것인가 보다.

 

 

하산 들머리로 빠르게 들어섰다.

역시나 엉겅퀴 형님과 대장님이 앞에서 내 뺏다.

 

전망대에서 주능선을 올려다보았다.

휴식은 과일맛과 어울려 향기롭고 달콤했다.

불어오는 바람은 더없이 즐겁고 시원했다.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사전에서는 행복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런것이 그것일 것이다.

 

생각보다 길은 빠르게 고도를 낮추었고, 한 두 번의 쉼으로 계곡에 닿았다.

 

급경사를 내려서고 계곡을 건넜다.

계곡에서 엉겅퀴 형은 옷을 훌렁 벗었다.

발만 담갔다가 포기했다는 에스테야 형님의 말을 듣고 애초에 시도 조차 하지 않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영감탱이는 도대체 뭘 잡수셨길래 저 찬물에 망설이지도 않고 들어 갈 수 있는가

귀소본능과 내가 뒤에서 수군거렸다.

계곡에서 공터 삼거리에 올라서는 길은 짧았지만 숨이 찼다.

정확하게 기억 해 두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주변 지형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청파정에 들려 민폐를 또 끼쳤다.
청파정 마당에서 주능선을 바라본 규다와 들풀은 집안으로 들어 올 생각도 잊고 있었다.

산에서 아쉬웠든 잔을 나와 에스테야 형이 부지런히 채웠다.

청파정을 나와 잔을 또 채웠고, 집에 들어가서는 매일 듣는 잔소리를 짧게 들었다.

살이 조금 빠지신 듯하다고 하였더니, 엉겅퀴 형님은 술살이 빠지더라며 웃었다.

빠진 술살 보충하시라고 규다가 한 병을 형님께 안겨드렸다.

즐겁고 행복했든 오월 어느 하루는 이렇게 지나갔다.

지금 오월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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