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조개골
일시:2019년 1월 13일 (일요일)
산행자: 연하님, 노을님, 예서방(노을님 사위), 황순진님, 김은의님, 최정남님, 성주숙님, 수야 (8명)
걸어간 길:윗새재-철모삼거리-작은조개골-석굴-마암-두류봉-쑥밭재-청이당터-윗새재
산행시간: 07시 52분~17시 32분 (9시간 40분) 9.6km
철모 삼거리에서 배낭을 벗고 휴식을 합니다.
길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카메라를 우회해 산행 시작은 계곡을 타고 올랐습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느라 쉬지 않고 이곳까지 냅다 와 버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더니 일행과 간격이 제법 넓어져 있습니다.
옷을 벗고, 배낭을 정비하고,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하고 작은 조개골 들머리로 접어듭니다.
예상과 달리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미리 아이젠을 챙겨 오시란 말을 했는데 정작 그런 말을 한 저만 아이젠을 잊고 못 챙겼습니다.
인원파악을 하며 자기 자신을 빼먹고 자꾸 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격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졸지에 한 짝씩 아이젠을 나눠 신어야 하는 민폐를 끼칩니다.
오늘 산행에는 귀한 손님이 같이하게 됩니다.
노을님 둘째 사위가 같이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초반 젊은 분의 등장만으로도 분위기가 활력으로 넘칩니다.
현 거주지가 함안이다 보니 저와 대화가 제법 많아집니다.
작은 조개골은 오래전 지리구구 탐구팀과 한 번, 그 뒤 독오당 산행으로 딱 두 번을 올라 본 길입니다.
이상하게 기억 속의 이 길은 그리 힘들지 않게 올랐었다는 생각이 박여 있었습니다.
지금이 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못 했습니다.
얼어붙은 계곡으로 올라갈수록 난관과 마주하게 됩니다.
길은 묵었고 산죽과 쌓인 미끄러운 눈으로 진행이 느리고 힘이 듭니다.
성가신 잡목이 길을 막고, 길이라 할 수도 없는 길을 트랙에 의지하며 진행하다 보니
나뭇가지에 가볍하지만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사위 사랑이 지극히 느껴지는 장인어른의 손길이 온당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정이 지켜보는 내내 넘치는 노을님입니다.
역시 사람의 깊이는 보이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꽁꽁 얼어 붙은 계곡은 눈이 덮여 무심코 발을 내딛다가는 미끄러지기에 십상입니다.
조심하느라 사지에 힘이 들어갑니다.
뭐가 이리도 좋은지 작은 조개골이 시끌벅적하도록 웃음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앞에서 잡아주고 미끄러지며 계곡을 따라 오름길은 계속됩니다.
언제나 맨 후미에서 모두를 챙기는 연하님은 다 안전하게 지나가고 나면 자신을 올려놓습니다.
형님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돋구어 주기 위해 가끔 배를 잡게 하는 농담도 적절한 타이밍에
잘 던집니다.
이곳저곳으로 올라보려 시도하다 도저히 안 되는지 제가 올라간 길을 따라 저의 집사람이 따라옵니다.
어쩐일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해 줍니다만 다 소용없습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 주려 하는데 이 사람 그걸 거부합니다.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의 누구처럼 그런 톤으로 한마디 합니다.
"어머니 절 믿으셔야 합니다. 저곳에 가기 위해서는 저를 믿고 이리로 딛고 이사이로 나오셔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 내 알아서 갈 테니 제발 저리 좀 가세요!."
에라 모르겠다.
'그라모 니 맘대로 하세요!' 하고 획 돌아섰지요.
저거 보소.
제가 잡아 주겠다는 손조차 끝내 거부하더니 나무 중간에 낑겨서 소리만 질러 됩니다.
"어머니 이게 제 책임입니까?"
어찌 됐냐 고요?
어찌 되었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봄이 되면 저 나무에는 다른 나무보다 더 무성하게 잎이 돋아나지 싶습니다.
누구 한 사람 지나가지 않은 눈 덮인 산길은 딱 저의 비단결 같은 마음처럼 부드럽고 하얗습니다.
아닌가요?
저와 같이 고운 마음의 눈을 가지신 분은 공감 하실 거고, 그렇지 않은 분은 웃기시네 하시겠죠.
뭐, 다 니 마음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눈을 뿌려가며 이 다정하기 비길 데 없는 부부는 연출을 합니다.
장인어른과 사위도 냅다 부부의 자리를 물리고 그곳에 또 눕습니다.
우리 부부요?
그럴 리가요.
너무도 당연히 저런 건 안 합니다.
왜냐고요?
평생 그렇게 안 살아 봤으니까요.
보이시죠.
우리 성 여사는 당당하게 꿋꿋하게 혼자서 자기 갈 길 만 가십니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야단법석을 피우며 산길을 꾸준히 올라갑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참 유사합니다.
저는 영리하지 못해서 옆으로 고개 돌려 가며 살 줄을 모릅니다.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무식하지만 무조건 열심히 살아가는 것밖에 모릅니다.
이렇게 사는 제가 부끄럽지도 않고, 그리 크게 후회도 없습니다.
성공하여 잘 사는 주위의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제 삶과 비교하지 않으려 합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각오한 가난을 사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남의 사위를 얼마나 다정하게 "예 서방~" 하며 불렀든지
모두 사위 볼 연습하느냐고 한 마디씩 합니다.
25년을 함께 산저 조차 부드럽기가 수양버들 보다 더한 낭창한
저런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럴 만합니다.
동행이 있다는 믿음은 힘든 길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큰 의지가 됩니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의지하고 믿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기에 만만치 않아도
견딜만한 삶입니다.
산길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트랙을 따라 오르길 고집하는 저와 떨어져 조금은 쉬워 보이는 능선으로 일행이 갑니다.
혼자 계곡을 건너 석굴 입구에 도착을 해 보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위쪽으로 지나가는 일행의 소리가 들리기에 안심하고 혼자 석굴로 들어갑니다.
입구는 급경사로 미끄러워 네발로 기어올라야 합니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넓고 아늑합니다.
굴 안에서 앉아 밖을 내다보니 어떤 경관보다 좋습니다.
창 넓은 찻집에서 그대 손을 마주 잡고서... 하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몸의 열기를 좀 식히고 다시 마암을 향해 걷습니다.
흘러내린 물이 거대한 고드름을 만들었습니다.
마암 입구에서 일행과 다시 만나 함께 들어갑니다.
제법 빡신 구간을 힘들게 올라온 탓에 모두 힘든 모습이 역력합니다.
자리를 만들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습니다.
세상 제일 맛있는 밥은 배고플 때 먹는 밥이지요.
평소 산행 때 먹는 양 보다 다들 더 먹는 걸 보면 오늘 산행이 오랜만에 좀 산행다웠나 봅니다.
힘들지 않을까 걱정한 노을님 둘째 사위는 젊어서 그런지 회복도 빠르고 잘 걷고 표정도 밝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산을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 성 여사는 예 서방이 착하고 좋아 보인다고 꿀 떨어지는 칭찬이 입에 붙었습니다.
이 정도 급이면 국민 사위는 몰라도 중경 사위 급은 확실합니다.
식후 오르막은 고역입니다.
헐떡이며 숨차게 올라 두류봉에 섰습니다.
청명하게 맑지는 않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금 전 헐떡이든 숨소리는 탄성으로 바뀝니다.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무 쉽게 성내고 흥분합니다. 그걸 저 자신이 너무 잘 압니다.
어느 때라도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습니다.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오른 산에서 느낀 고요와 평온을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산을 내려오면 바로 사라져 버리는 이런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습니다.
성격 불량인 제가 그나마 반품당하지 않고 여태 사람들과 어울려 그럭저럭 잘 살아 낸 것은
인성 불량, 인간 불량은 아닌 까닭이요
소중하고 귀중한 인연 정도는 아는 최소한의 사람다움은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망구 저 혼자 생각입니다.
산을 오르며 안락을 찾지 않습니다.
힘든 과정과 고통을 통해 마음의 자유를 찾으려 산길을 걸었습니다.
그 끝에서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동안 나와 맺고 끊고 지나간 인연을 되짚어 보면
사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맨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걸어 내리다 보니 국골사거리에 도착합니다.
국골사거리에서 청이당 방향으로 하산길은 계속됩니다.
로프 없이는 내려서기가 어려운 지점에서 연하 형님이 배낭에서 로프를 내놓습니다.
덕분에 별안간 나타난 난감하기 짝이 없었든 구간을 무사히 잘 통과 합니다.
철모가 없는 철모 삼거리까지 내려서고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하산길은 더욱더 가벼워 집니다.
뭐라고 반복해서 열심히 설득하고 타이르고 경고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올라갈 때 우회 했든 카메라를 이번에는 보란 듯이 직선으로 통과해 버립니다.
두 점 간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라 배웠습니다.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처음 만날 때 서로의 눈빛이 직선이었듯이
어떤 사안이든 직선이 제일 명쾌한 것으로 알고 저는 그렇게 걸어왔고
걸어갈 것입니다.
<그럴 수 있나>와 <그럴 수 있다>는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뜻은 천지 차이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다 보니 일하는 중간 틈틈이 작성하는 산행기라 어찌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어떤 때는 그래서 올리지 못하는 산행기도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 올리자니 어딘지 어색하고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늦게 올리는 산행기에 대하여
그럴 수 있나 하는 시각으로 보시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겠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시각으로 보시면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런 넓고 바람직한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법 많이 지난 산행기를 조심스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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