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
독오당 71차 정기산행.
일시:2015년 10월 4일 (일요일)
산행자:산나그네, 다우, 엉겅퀴, 에스테야, 귀소본능, 수야 + 산구화, 산유화, 소원, 다래, 수선화 (총 11명)
걸어간 길:윗새재-철모삼거리-청이당터-국골사거리-영랑대-하봉헬기장-
치밭목 대피소-무제치기폭포- 심박골-윗새재.
가을은 전속력으로 달려들듯 지리산을 단풍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연일 올라오는 사진 속의 그 붉은 빛깔을 보며 다급함에 마음만 할딱거렸다.
통신골로 결정된 이번 산행길은 할딱거리는 조급함에 충분히 온당해 보였다.
갈 길이 정해지자 이미 마음은 내 발로 통신골의 상부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에 모여 두 대의 차로 덕산으로 옮겨온
독오당 여섯 명의 사내들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들뜬 마음에 넘기는 아침 막걸리는 밋밋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먼저 나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건너편 식당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이 걷히는 담배 연기 속에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연은 우연히 이루어진다.
지리구구의 다섯 분 누님들이 막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반가움의 인사는 지나가는 차들이 속도를 줄여야 할 만큼 도로를 점령했다.
난데없는 만남에서 시작된 총인원 11명의 대군이 즉석에서 꾸려지기 시작했다.
독오당은 독오당 대로, 누님들은 누님들대로
산행지가 바뀌는 이해 할 수 있는 이해가 양해되기 시작했다.
조개골과 통신골이 잠시 부딪쳤다.
부딪침은 곧이어 합치로 협의가 이뤄지고 차는 윗새재를 향해 질주했다.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윗새재 주차장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사진:귀소본능>
지리구구의 대표여성산꾼들.
산유화님, 수선화님, 소원님, 산구화님, 다래님.
철모 삼거리로 향하는 들머리에 감시카메라는 국립공원 관리법이 어쩌고 하던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조용한 처서가 그나마 합당스러웠다.
대열은 순서를 정하지 않았으나 정해놓은 것처럼 스스로 정렬되었다.
앞서 걷던 산유화 누님이 나를 앞장세웠다.
결코 빠르지 않은 내 걸음 뒤에 바싹 붙은 뒷사람의 숨소리가 재촉으로 들려왔다.
수선화 누님은 독오당은 매번 이런 속도로 다니느냐고 엄살을 피웠다.
철모 삼거리에 철모가 사라진 것은 오래되었다.
산유화 누님은 이제 이곳의 이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철모 삼거리의 명칭을 대신 할 우량계 삼거리도 썩 괜찮을 것 같았다.
계곡의 물가에서 배낭을 내린 휴식을 했다.
다시 뒤돌아 우량계 삼거리에서 청이당길로 갔다.
간절기 때마다 눈에 모래를 뿌린 듯 꺼끌꺼끌하고 쉴 새 없이 터지는 재채기가
절정기를 맞은 듯 대열의 선두에선 날 괴롭혔다.
산유화 누님은 애초 통신골로 갈 계획이었다고 했다.
일행이 있었고 그분들은 통신골에 있다고 했다.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형도에 표기된 동부능선으로 올라붙어
쑥밭재로 가는 길을 다우 형님은 확인하려 했다.
몹쓸 탐구 정신에 산유화 누님이 동조하고, 수선화 누님조차 합세했다.
따라가면 개고생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나
대장님의 지엄한 명령에 나도 갈 수밖에 없었다.
들머리 길에서 약간 방황한 후 온전한 산길을 찾아 올랐다.
다우 형님과 산유화 누님, 수선화 누님과 함께 네 명이 트랙을 따라가고
나머지는 직진으로 청이당으로 진행을 했다.
청이당터에서 만나기로 했다.
능선까지 붙는 길은 흐리지 않은 비교적 형태를 유지한 산길이었다
산죽의 걸림이 몇 번 있었지만 무난했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이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파른 고도에 장딴지가 땅김을 느낄 때쯤 능선에 올라섰다.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의 냄새를 담고 온 바람이 몸에 스며들었다.
한껏 들이마신 산 냄새가 아득히 펴져 몸이 가벼워졌다.
대전에서 왔다는 산악회의 사람들이 스쳐 갔다.
이분들이 걸어온 길에는 원치 않는 만남은 없다고 했다.
태극종주길을 따라 쑥밭재를 향해 왼쪽으로 걸었다.
오른쪽은 독바위와 새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쑥밭재까지 단순한 길은 1,260봉을 넘어 명료했다.
쑥밭재에서 산유화 누님과 수선화 누님은 다시 올라올 길이라며 내려가지 않았다.
청이당으로 내려가 다시 합류하고 함께 쉬었다.
물을 받았다.
춥다고 빨리 올라오라는 유화 누님의 재촉이 청이당 터에 내리박혔다.
국골사거리로 걸어 오르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천왕봉 방향에서 내려오는 태극종주길의 국골사거리는 중요한 지점이며 놓치기 쉬운 길이라는
설명과 실제 있었던 상황들의 이야기가 한동안 있었다.
국골사거리에서 수선화 누님이 건네준 씨 없는 청포도를 껍질째 잘근거리며 단맛을 삼켰다.
씨 없는 포도에서 가을 향이 퍼졌다.
산유화 누님은 에스테야 형님에게 국골과 여러 방향을 진지하게 설명했고
형님은 진지하게 들었다.
나는 유화 누님의 설명이 안타까웠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질문하라는 말에 형님은 질문이 없었다.
나의 안타까움이 비로소 이해되어 가는듯했다.
알아야 질문을 하지....
가을 하늘이 하늘다웠다.
하늘은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가을 하늘 다웠다.
기대했든 단풍은 없었다.
잎은 말라 바스락거렸다.
붉은빛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단풍이 간혹 있기는 했으나 산 전체가 불타는 듯한 활활 거림은
이곳에서는 늦었거나 빨랐다.
하늘은 단지 가을다운 표정을 지니고 있었고, 지리산 능선에서 하늘을 우러른 시선은
붉게 물든 단풍이 없어도 유복했다.
태극종주길 왕등능선의 독바위가 새봉을 뒤에 두고 보였다.
산은 이제야 색깔을 바꾸어 볼 의사가 생기는 듯 미적거리고 있었다.
전망에 빠져 있는 동안 만남이 있었다.
짝꿍님 부부라고 했다.
인사가 오가는 분주함에 좁은 공간은 복잡했다.
지리산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인위적 만남보다 몇 배 더 반가움일 수 밖에 없다.
만나야 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다고 일행 중 누가 그랬다.
그 말을 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리산에서 만나기로 정해져 있었던 인연들이 인연을 맺었다.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사진:귀소본능>
영랑대를 조금 못 미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아감이 거침없던 산나그네 당수님과 엉겅퀴 형님은 앞서 간 거리 만큼 다시 뒤 돌아와야 했다.
짝꿍님 부부와 헤어졌다.
점심상을 펼쳤다.
다우 대장님의 배낭에서 구매한 정품 송이버섯이 나왔고,
귀소본능이 직접 따 온 송이버섯이 더 보태졌다.
송이버섯을 넣은 밥으로 사방에 송이 향기가 진동했다.
미리 챙겨 놓을 것을 주문한 대장님의 물건너 온 술이 내 품으로 오자마자 목이 비틀어졌다.
중국 냄새가 날 것 같았든 술은 예상과 달리 묘하게 향기로웠다.
술은
몸속으로 깔리며 퍼졌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으로 스며드는 물같이 저 스스로 온몸으로 빨려간 술은
낮게 깔리며 깊이 스몄다.
취기는 들뜨지 않았고, 얼굴을 단풍빛깔로 물들여 가을 산에 어울리게 했다.
안주로 입안에 들여놓은 송이 향기는 요동치며 다음 잔을 급박했다.
긴 점심은 창자의 먼 곳에서 부터 차곡히 쌓이고 적시어졌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점심의 허기를 달랠 수 없고
오늘 먹은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으므로
오직 지금의 밥에만 집중한 밥은, 충분히 지금 행복했다.
절벽은 절박했다.
개는 개의 소리를 내고, 닭은 닭의 소리를 낸다.
사람은 사람의 소리를 내야 마땅하다.
산은 여러 형상으로 여러 소리가 나와야 마땅하다.
저 절벽에서도 나오는 절박함의 소리는 무엇을 알려 주려 하는지를 생각했다.
자발머리 없는 나는 산이 생각하는 생각이 생각되지 않았다.
하봉에 도착했다.
독오당이 웃었다.
누님들이 웃었다.
함께 파안대소했다.
함께라서 웃었고, 함께라서 즐거운 이유가 되었다.
상봉이 바라다보이는 조망은 더없이 맑고 깨끗했다.
맑음은 사람과 산과 하늘이 같았다.
웃는 엉겅퀴 형님과 웃지 않는 다래 누님의 대비가 절묘했다.
초암능선을 가운데 두고 칠선계곡과 국골이 한 이랑씩을 파고 내렸다.
바람에 호흡이 막힐 것 같은 풍파의 흔적은
차라리 무질서한 숲 속의 나무보다 아렸다.
견디기 힘든 세월일 것 같지만 견디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는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수긍했다.
상봉은 기꺼이 당당한 위엄으로 위엄이 세워져 있었다.
당당함은 당당해야만 정당한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세상은 무참하다.
자신도 모르게 욕이 새어 나오는 세상은 바르지 못하다.
강한 것이 옮음을 이겨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가르쳤다.
당당함은 당당해야 정당 한것이다.
당당한 사람들이 좋다.
당당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한 달에 한 번의 이 산행은 정당하고 올바른 일이다.
독하게, 오지게, 당당하게.
독오당은 진부하거나, 고루하지 않았다.
지리산을 닮고 싶어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이는 그대로 산의 모습을 지니고 싶다.
보이는 그것이 전부인 숨김이 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절히 담으려, 배우려 했다.
수선화 누님과의 동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번 산정무한 행사 때 독오당과 같이 산행해 보고 싶다던 청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누님의 걸음은 빨랐고, 행동은 조신하고 차분했다.
당수님과 비등하게 앞선 걸음으로 건너편에서 화답했다.
하봉헬기장.
무슨 나무인지 깊이 염탐하는 대장님을 염탐했다.
사태 지역을 건너갔다.
사태는 마치 이곳과 저곳을 분리할 의도를 가진 것 같이 단호하게 쪼개듯이 흘러 내려있었다.
베인 상처가 너무 깊어 치유는 다른 형태로 진행 될 듯이 보였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쉬면서 놀았다.
산유화 누님의 강압(?)에 당수님이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마지막 남은 맥주들이 빈 몸이 되어 발에 밟히며 소임을 마쳤다.
배를 집어 넣으라는 누님들의 성화에 한껏 힘이 들어간 당수님의 포즈를 귀소본능이
카메라로 담았다.
세상의 어떤 사람과도 소통이 이루어 질 것 같은 에스테야 형님이 밝게 웃었다.
무재치기 폭포를 갈망하는 에스테야 형님은 기운이 들끓었다.
새로 장만한 카메라는 그곳을 모조리 담아낼 태세를 갖추었다.
무재치기 폭포 전망대에 섰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탄식했다.
말라가는 잎조차도 고운 한 폭의 그림을 오랫동안 눈으로 주물렀다.
무재치기 폭포의 가을을 기념했다.
저 멀리 아득한 가야산에서 황매산으로 시선을 당겨 가까이 몰았다.
웅석봉에서 더 가까이 장당능선과 치밭목 능선이 아득함에서 선명함으로 출렁거렸다.
천지간에 가득한 포개지고 갈라지는 산새가 눈에 들어찼다.
살아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 찬 것이어야 한다.
저것이 세상인듯 했고, 저것이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가목이 벼랑 끝에서 치명적 유혹을 이끌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없기에 지분덕거리는 사람으로부터 당당한 마가목의 자리는 정당해 보였다.
하산은 길었다.
하산길은 질겼다.
길고 질긴 하산길에서는 언제나 생각들이 가지런해지기 마련이었다.
온종일 씹은 지리산 가을은 포만감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배가 불렀다.
차가운 물이 엄두가 나지 않아 우리는 세수하고 발만 씻었고,
엉겅퀴 형님은 온몸을 물속에 담갔다.
도착한 주차장에서 급히 떠나는 누님들과의 인사는 변변하지 못했다.
하산 완료 후 또 한 번의 만남으로 답지님을 뵙게 되었다.
유유자적 홀로 즐기는 산행의 평온함이 가득한 답지님과의
만남은 짧았어 아쉬웠다.
인사조차도 변변하지 못한 채 또 만남을 기약했다.
가을이 익어가는 지리산을 뒤에 두고
차는 창원을 향해 속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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