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봉
일시:2006년 6월 18일.
산행자:수야.
걸어간 길::청학동매표소-삼신봉-상불재-삼성궁매표소-주차장.
삼신봉(三神峯)은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로서 참다운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악양으로 흘러내린 형제봉 능선과 멀리 남해 바다의 일망무제, 탁트인 전경을 선사해 준다.
특히, 인적 드문 비경의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가운데는 내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의 외삼신봉을 대표해 부른다.
▼청학동 매표소
삼신샘
갓걸이재
삼신봉
삼신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영신봉! 앞 능선을 따라가면 영신봉으로 이어진다
노고단
▼쌍계사 방면으로 아기자기 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송정굴, 내삼신봉, 쇠통바위를 거쳐
상불재에 이르기까지 5km 남짓한 거리에 기암절벽들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대략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신선대라고도 불린다
▼송정굴은 길이 20여m, 폭 10여m, 높이 1.5∼2m의 다소 널찍한 관통굴이다.
송정 하수일선생의 피난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마치 바위 위에 자물쇠가 얹혀 있는 모습을 한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쇠통바위라 부른다.
이 쇠통바위는 청학동 사람들에겐 큰 의미를 가진 바위다.
청학동 사람들은 학동마을에 있는 열쇠처럼 생긴 바위로 이 쇠통바위를 열어야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천국이 열린다고 믿고 있다.
두 개의 큰 바위가 머리를 맞댄 채 그 사이에 열쇠구멍과 같은 구멍을 만들고 있는데
이 구멍을 청학동 사람들은 열쇠구멍으로 보고, 이 구멍에 열쇠를 넣어 잠겨진 쇠통을 풀어야
천국이 열린다는 것이다.
쇠통바위 위에서
상불재 갈림길 삼성궁 방향 으로 하산 한다
삼성궁으로내려 오는 길에서
▼삼성궁
한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품속 깊이 청암면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km 가량 걸으면 해발 8백 50m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
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관광을 하려는 탐방객이 궁 입구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안에서 수행자가 나와 맞이한다.
1년에 한 번 가을 단풍철이 되면 일반인에게 개방해 개천대제라는 행사를 여는데,
이때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닦은 무예를 구경할 수 있다
삼성궁 연못
▼돌탑 3만 개까지 쌓을 예정
삼성궁의 돌탑들. 삼성궁 사람들은 "이 돌탑은 탑이 아니라 솟대로서 이곳이
한민족의 성지인 소도 지역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궁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무수한 돌탑이다.
전북 진안의 명소 마이산의 돌탑과 흡사한 모양의 원추형 돌탑, 맷돌로만 쌓은 맷돌탑,
단지로만 쌓은 단지탑 등이 완경사를 이룬 골짜기 여기저기에 푸른 하늘과 맞물려 솟아 있다.
높이는 한길 정도 되는 것에서 10m 가까운 것도 있다.
삼성궁 수행자들도 "약 1,300개쯤 되는데, 정확한 숫자는 우리도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많고
또 나날이 새로운 탑이 탄생하고 있다.
84년부터 삼성궁 터 닦아
한 풀선사는 본명이 강민주로서 바로 이곳 지리산 묵계골에서 태어났다.
태생은 이렇듯 평범한 산골 아이였지만 6세때 증산도 신도였던 부모에 의해 낙천선사(樂天仙師)라는
도인에게 의탁되며 그는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 '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 공공진인(空空眞人:1807-1910),
한빛선사(1860-1945)에 뒤이어 우리 고유의 선도(仙道) 명맥을 전수받았다'는 낙천선사와 지리산 세석고원 근처에서 기거하며 그는 선가무예인 선무(仙武)를 비롯, 선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스승으로부터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라"는 명을 받고 21세 때인 1984년부터
화전민마저 떠나고 없던 이 묵계골 상류부에서, 처음에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삼성궁 터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풀선사 무예는 30-40단"
한 풀선사는 검술을 비롯한 무술 수준도 대단하다고 한다.
굳이 단 수로 따지면 30--40단은 될 것이라고 수자들은 말한다.
한 풀선사는 일반인 앞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삼성궁 최대의 행사인 개천대제날 제례를 올릴 때 한풀이춤을 보여준다.
뛰어난 무예란 곧 춤과 같다는 말이 있으니,
무술 수련자들이라면 그가 일년에 단 한 번 추는 춤이라는 이 한풀이춤을 통해
그가 지닌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간파할 수 있으리라.
지리산은 예로부터 三神山 중의 하나로 불려왔다.
그 삼신산 중의 하나인 지리산에 삼신봉이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며,
더욱이 지리산에 신을 상징하는 "神"자가 붙여진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그것도
남북으로 삼각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무언가 의미 심장한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내삼신봉, 외삼신봉, 그리고 세석고원 서쪽의 영신봉이 그것이다.
이들 세 개의 봉우리 주변을 중심으로 해 고래로부터 전해져오는 이상향,
즉 청학동의 유래를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는 현재 진정한 청학동임을 자처하며 촌락을 형성하고 있는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이
바로 삼신봉 3km 아래 위치해 있는 사실과 천년여전 이상향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입산 자취가 유난히 이 일대,
쌍계사와 화개동천 등지에서 많이 보이는 사실도 이러한 느낌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상향을 찾아 헤매면서
유독 이 일대를 중심으로 입산, 은거했다는 점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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